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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순공주 이애숙

팩션 역사소설

by 작은별송이

1. 봄의 풍경


단칼에 두 쪽을 내고 싶을 만큼 보름달이 탐스러웠다. 나의 슬픔 따윈 아랑곳없이 뜰 안에 내려앉는 환한 달빛이 밉고 야속했다. 나는 목검을 꼭 부여잡고 머리 위로 쳐들었다. 그때 검은 그림자가 바람처럼 담장을 넘어왔다.

“웬 놈이냐?”

침입자는 검은 복면을 쓰고 있었다.

“도적이냐, 자객이냐?”

침입자는 대답없이 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칼끝을 침입자를 향해 겨눴다. 다섯 걸음 거리까지 다가온 침입자는 우뚝 걸음을 멈췄다. 바람이 내 치맛자락을 사뿐 흩날렸다. 침입자의 왼쪽 겨드랑이에서 가냘프게 흔들리는 칼날이 언뜻 눈에 띄었다.

‘조선인?’

찰끈으로 칼을 묶고 칼손잡이가 뒤로 가도록 왼쪽 겨드랑이 밑에 차는 것은 조선의 패용 방식이다. 임금의 호위 무사인 운검은 등 뒤로 칼을 매지만, 대부분의 관료와 무신은 겨드랑이 밑에 칼을 찬다.

침입자가 조선인일 가능성에 여러 감정이 오고갔다. 비릿한 슬픔, 정체를 알 수 없는 분노가 뒤섞인 감정이었다. 침입자는 검은 복면을 쓱 치켜올리고 칼을 꺼내 들었다. 뜻밖에도 목검이었다.

‘목검이라니! 대체 무슨 꿍꿍이인가?’

침입자는 두 손으로 칼자루를 잡더니 칼날을 왼쪽 어깨에 의지한 채 나와 마주섰다. 순간 그가 조선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의 자세는 지검대적세(持劍對賊勢), 신라에서 기원한 ‘본국검(本國劍)’이란 검술의 기본 자세였다.

“이 집에 재물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내 목을 노리는 거라면 어서 들어오너라.”

내 말이 끝나자마자 침입자는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목검과 목검이 부딪쳤다. 청명한 나무 소리가 어둠을 흔들었다. 침입자의 칼솜씨가 예사롭지 않다는 직감이 온몸에 흘렀다.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침입자는 검무(劍舞)를 추듯 칼을 놀렸다. 찌르고, 베고, 치는 동작이 여울처럼 빠르면서도 부드러웠다. 격검이 이어질수록 이기기 버겁다는 느낌이 짙어졌다.

‘남은 방법은 필살기뿐이다.’

나는 작전상 서너 걸음 빠르게 후퇴했다. 의외의 동작에 침입자가 멈칫했다. 그 틈을 노려 칼을 갈지자로 휘저으며 상대의 시선을 교란시켰다. 곧바로 칼을 수평으로 세우고 허리춤까지 칼손잡이를 뺐다. 상대는 이 순간을 기회라고 느꼈는지 칼과 오른발을 들어올렸다. 이 동작은 오히려 나에게 찾아온 기회였다. 나는 온 힘을 끌어모아 침입자의 복부를 힘차게 찔렀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나는 허수아비가 되고 말았다. 내 목검이 한낱 막대기처럼 발밑에 팽개쳐진 때문이다. 침입자의 칼이 눈부신 속도와 폭발적인 힘으로 내 칼을 내리친 것이다. 손목이 웅 울리며 시려왔지만 나는 이 악물고 통증을 참았다. 침입자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어서 쳐라. 찌르든 베든 마음대로 하거라.”

나는 위엄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악을 썼다. 그런데 침입자는 뜻밖의 행동을 했다. 몇 걸음 물러서더니 목검을 정돈해 겨드랑이에 패용한 것이다.

“왜 칼을 거두느냐? 아녀자라고 봐주는 것이냐? 이건 오히려 날 능멸하는 것이다. 내가 누군 줄 아느냐?”

침입자가 검은 복면을 살짝 매만진 뒤 입을 열었다.

“잘 알고 있습니다, 공주 마마.”

목소리가……. 예상과 달리 침입자는 소년의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눈동자에서도 설핏 어린 티가 나는 듯했다.

“네가 조선인이라는 건 진즉에 눈치 채고 있었다. 안주인만 남은 집에 도적처럼 찾아와 이 무슨 행패냐?”

갑자기 침입자가 풀썩 무릎을 꿇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공주 마마. 소인, 방자하게도 공주 마마께서 옥체를 강건하게 보전하고 계신지 몸소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대관절 너는 누구길래 그런 소릴 하느냐? 복면을 벗고 얼굴을 보여라!”

침입자는 내 호통에 아랑곳없이 동문서답했다.

“확인을 했으니, 소인 마음이 놓입니다. 앞으로도 부디 굳건함을 잃지 마시옵소서. 도르곤 전하의 영령이 마마를 지켜주리라는 기대는 거두시길 간청드립니다.”

“무엄하다! 감히 전하를 입에 올리다니! 어서 얼굴을 보이지 못할까?”

“비록 칼을 놓치셨으나 마마의 천둔검법*은 가히 일품이었습니다. 부디 무탈하시옵소서.”

침입자가 벌떡 일어섰다. 이어서 담장으로 잽싸게 달려가더니 단숨에 담장을 넘어버렸다. 불러 세울 틈도 없을 만큼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어안이 벙벙했다. 발소리가 멀어지고 난 뒤에야 나는 정신이 들었다.

‘누굴까? 이 청국(淸國) 땅에 저런 조선 청년이 살고 있었던가?’

보름달은 태연하게 빛을 자랑하고 있었다. 달 한가운데 남편의 얼굴이 둥실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지금껏 지나온 발자취들이 밤하늘에 환하게 펼쳐졌다.


*천둔검법: 하늘로부터 스스로를 감춘다는 뜻의 검법. 매월당 김시습이 이 검법을 익혔다고 하나 구체적인 검법은 알려진 바 없다


**


나비 한 마리가 뒤뜰로 날아들었다. 담장 아래 진달래꽃에 살포시 내려앉은 녀석은 나를 향해 있었다. 꼭 내가 검술을 연마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나비야, 아직 내 칼솜씨는 누구에게 보여 줄 만큼 빼어나지가 않은데, 어쩌니? 게다가 이건 목검이라 구경하기엔 좀 시시할 거야.”

나비는 미동도 없었다. 아무 상관없으니 어서 하라고 무언의 재촉을 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 뭐. 그렇다면 한번 볼래? 난 천둔검법(天遁劍法)을 익히고 있어. 근데 비밀로 해야 된다. 아녀자가 검술을 닦는 건 손가락질 당할 일이거든.”

나비에게 생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역시 나비는 꼼짝도 안 했지만, 나는 내 말을 잘 알아들었을 거라 믿었다.

“잘 보렴.”

나는 격검의 기본자세를 취한 뒤 나비가 앉아 있는 곳 옆자리의 진달래꽃에 집중했다. 합, 우렁찬 기합을 토해내며 꽃송이 바로 위를 아슬아슬하게 베었다. 칼날이 일으킨 바람에 꽃송이가 가냘프게 흔들렸다. 그때 얌전히 있던 나비가 포르르 날아올랐다.

“어머나! 놀랐니? 널 베려던 건 아니야, 다시 앉으렴.”

하지만 나비는 담장 밖으로 팔랑팔랑 날아가 버렸다.

“너 잘 보이라고 배려하려다 너무 가까운 곳을 벴구나.”

조그만 한숨이 폭 새어나왔다. 나는 나비가 넘어간 담장 너머로 아쉬운 눈길을 보냈다.

“내가 여기 있을 줄 알았어.”

익숙한 목소리, 동생 애련이였다. 나는 담장에서 눈길을 거두고 애련이를 향해 돌아섰다.

“언니, 지금 한가하게 검술 연마할 때가 아니야.”

“요 녀석, 내가 한가해서 이러는 줄 아니? 언니 마음 잘 알면서 그런 소릴 해?”

“언니 마음 잘 아니까 그만 좀 했으면 해. 써먹을 데도 없잖아.”

“아이구, 점점! 찾아온 용무나 말해, 얼른.”

“맞다, 헤헤헤. 아버지한테 가 봐. 치맛자락 휘날리게 서둘러서.”

“무슨 일로?”

“긴히 하실 말씀이 있으시대.”

긴히 하실 말씀이란 무엇일까? 특별히 잘못을 저지른 일도 없고, 집안에 변고도 없는데. 불쑥 긴장이 돼서 손수건으로 괜히 이마를 한번 닦았다.



“부르셨어요, 아버지.”

“앉거라.”

아버지의 눈빛이 흔들렸다. 봄날 아지랑이를 오래 바라본 탓에 잘못 본 걸까? 아버지는 한 번도 흐트러진 눈빛을 보인 적이 없었다.

“또 목검 연마에 열중하고 있었느냐?”

“네? 어찌 그걸…….”

“네 앞머리 한 가닥이 풀어졌구나. 그래서 알아보았다.”

역시 아버지는 눈썰미가 대단하다. 급히 오느라 머리 매무새까지 신경 쓰지 못한 건 내 실수다.

“저를 나무라진 않으실 거죠? 호호호.”

나는 부러 크게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예상대로 아버지는 그저 부드럽게 미소만 지었다. 어쩌면 아버지는 조선에서 유일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비록 목검이지만 딸자식이 칼을 다루는 것을 허락해 주는.

아버지가 미소 끝에 인자한 말투로 물었다.

“네가 올해 열여섯이지?”

“예, 아버지.”

“곱구나. 참 잘 자랐어.”

아버지가 흠 헛기침을 뱉었다. 기침소리가 귓속말처럼 작고 가냘팠다. 어쩐지 기침소리 뒤에 하고 싶은 말씀을 숨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

“부모님께서 금이야 옥이야 키워 주신 덕이지요.”

“어머니야 그랬지만, 나는 아니다. 아비로서 해준 게 없어.”

“별말씀을요.”

아버지가 다시 한 번 흠 헛기침을 뱉었다. 나는 살며시 가슴이 떨렸다. 아버지가 가슴 시린 이야기를 꺼낼 것만 같았다.

“애숙아.”

“예, 말씀하세요.”

“너도 혼기가 되었는데……. 혹시 혼사를 염두에 둔 적은 있느냐?”

“새해를 맞이하던 날, 마음의 준비를 해 두었어요. 올해는 부모님께서 혼사 이야기를 꺼내실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죠.”

“그렇다면 이제 봄이 되었으니, 그 마음이 더 단단해졌겠구나.”

“부모님 뜻에 따를 뿐입니다.”

“음…….”

아버지가 수염을 한 번 쓰다듬고는 다시 말했다.

“네 지아비가 청국 사람이어도 괜찮겠느냐?”

가슴속으로 찬바람이 휭 불고 지나갔다. 청나라는 창칼의 힘으로 조선을 신하의 나라로 무릎 꿇린 강국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의와 도리를 모르는 오랑캐 무리일 뿐이다. 오랑캐를 지아비로 섬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아버지도 이를 모를 리 없었다. 아버지는 이 나라의 종실 아닌가.

“아버지, 어찌 그런 말씀을…….”

“지금 청에서는 섭정왕 도르곤이 황제보다 더 큰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어린 황제 순치제는 허수아비일 따름이야. 그런데 도르곤이 얼마 전에 아내를 잃고, 조선 사대부의 처녀와 혼인할 뜻을 밝혔구나. 만약 도르곤의 요구를 거절한다면 병자년의 전란(병자호란)과 같은 비극이 또다시 일어날지도 모른다. 청의 관리와 조선 사대부 처녀의 혼인은 청이 전란 때 조선에 요구한 항복 조건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나지막이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어제 청의 칙사가 도르곤의 명령을 전했다. 사흘 뒤에 왕비 간택을 할 테니, 처녀들을 선뵈라고 하더구나. 청에서 이렇게까지 서두르는 이유를 모르겠다. 아마도 조선의 충성심을 시험해 보려는 모양이다.”

나도 도르곤을 모르지 않았다. 섭정왕이 되기 전 도르곤은 청나라에서 손꼽히는 장수였다. 1636년 병자년 전란 때 그의 창칼 앞에 온 조선이 벌벌 떨었다. 섭정왕에 오르자 그의 용맹은 더욱 불타올랐다. 1644년 섭정왕 도르곤의 눈부신 활약으로 청은 명나라의 도성 연경*을 빼앗고 명나라를 무너뜨렸다.

‘아버지가 왜 도르곤 이야기를 꺼내시지? 설마 그의 아내가 되라는 말씀을……?’

도르곤은 청에게는 용감한 영웅이지만, 조선에게는 무서운 적일 뿐이다. 나는 적의 아내, 무서운 사람의 아내가 되고픈 마음은 꿈에도 없다.

“내 딸, 애숙아!”

나를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바윗돌처럼 무거웠다.

“예, 아버지.”

“이 아비가 전하께 너를 도르곤의 아내로 추천했다. 물론 네가 아닌 다른 처녀가 간택이 될 수도 있어. 허나 네가 된다면, 이 나라를 위해 청의 여인으로 살아갈 수 있겠느냐?”

예라고도, 아니요라고도 대답할 수 없었다. 청의 여인이 되겠다는 마음은 털끝만큼도 가져본 적이 없기에 예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만약 간택이 된다면? 그땐 내가 싫다고 해도 내 뜻이 받아들여질 리가 없었다. 그래서 아니요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아버지는 천장만 바라보았다. 그러다 다시 고개를 푹 숙인 채 말했다.

“간택은 사흘 뒤다. 모든 것은 하늘에 맡기고, 마음의 준비를 해 두거라.”

“아, 아버지…….”

싫다는 말을 뱉고 싶었지만 목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미안하구나.”

아버지의 한숨에 방 안 공기가 무거워졌다. 어쩐지 아버지가 몹시 작아 보였다.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왜 아버지는 하필 어머니가 없을 때 이런 자리를 마련했을까? 딸의 혼사라는 중대한 일을 논하는 자리에……. 어머니는 몸져누운 외할머니를 돌보기 위해 어제 친정에 갔다. 못 본 지 하루밖에 안 되었는데, 꼭 한 달은 된 것 같았다.

아버지의 사랑방을 나오니, 햇빛이 마당으로 한 아름 내려앉아 있었다. 빛살을 받은 진달래꽃이 윤슬처럼 반짝였다. 언뜻 이 그림 같은 풍경을 다시 못 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당으로 내려가 꽃밭으로 다가갔다. 송이송이 꽃송이들을 차례차례 살펴보다가 향기를 맡았다. 그윽한 향기가 가슴속으로 스며들었다. 무심코 사랑방 쪽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방문은 아버지의 강직한 품새처럼 굳게 닫혀 있었다.

“이 나라를 위해 청의 여인으로 살아갈 수 있겠느냐?”

아버지의 말이 귓가를 어지럽게 맴돌았다.

‘청국 사람의 아내가 되는 것도 큰일인데, 더구나 섭정왕의 아내라니…….’

아무리 나라를 위한 일이라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봄날의 화사함이 원망스러웠다.

‘아버지, 왜 하필 저예요? 다른 종실들은 딸이 없다며 전하께 거짓말을 했다면서요. 조정 대신들도 비밀리에 딸들을 혼인시키려고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닌다면서요. 아버지는 왜 그렇게 못 하세요? 아버지가 아니면 조선을 구할 사람이 없나요?’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말을 하늘에 띄워 보냈다. 하늘은 무심하게 파란 빛만 뽐내고 있었다.

“제발 간택에서 떨어지게 해 주세요!”

아무라도 들으라는 바람으로 소리 내어 기도했다. 하지만 풀벌레들마저 귀를 막은 듯 사방은 고요하기만 했다.


*연경: 오늘날 중국의 수도인 북경의 옛이름



오늘따라 수탉이 길게 울었다. 밤새 뜬눈으로 지새웠다. 퉁퉁 부운 얼굴로 아버지에게 아침 문안을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좀처럼 엉덩이가 방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한숨만 폭폭 쉬고 있는데, 방문이 드르륵 열렸다. 동생 애련이였다.

“언니, 안 자고 있었네?”

애련이가 문지방을 폴짝 넘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 모습이 귀여워 나도 모르게 픽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와 두 살 터울인 애련이는 또래답지 않게 아기 같은 구석이 있다.

“아버지께 문안 가자. 얼른 준비해.”

“그래. 내가 게으름 피웠네.”

“언니, 근데 얼굴이 왜 이래? 한숨도 못 잔 사람처럼.”

“내 얼굴이 어때서? 예쁘니까 샘나니?”

“누가 예쁘대!”

애련이가 내 왼뺨을 살짝 꼬집었다. 그 순간 울컥 울음이 차올랐다. 청나라로 시집가게 된다면 동생의 짓궂은 손장난도 그리워질 것 같았다. 나는 울음을 삼키려고 거짓으로 툭 웃음을 뱉었다.

“언니 웃었어? 내가 장난치면 맨날 당돌하다고 꾸짖더니.”

“내가 널 언제 꾸짖었다고 그래.”

“뭐?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데, 감히 거짓말을 해?”

“언니는 태어나서 한 번도 거짓말 안 해 봤어, 호호.”

동생에게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 동생에게 웃음을 주고 싶어서.

“애련아, 이쪽 뺨도 꼬집어 줄래?”

나는 웃음을 입에 문 채 오른뺨을 애련이의 코앞에 바싹 들이댔다.

“언니, 오늘 좀 이상하다. 무슨 일 있어?”

내 행동이 너무 어색했을까? 애련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평소에 너한테 못해 준 게 찔려서. 어젯밤에 깊이 반성하느라 잠을 설쳤어. 이렇게 ‘착한 언니’로 돌아온 언니가 대견하지?”

“왜 갑자기 찔렸을까? 음…… 뭔가 꺼림칙하긴 한데, 언니 말 믿어 줄게.”

애련이 눈가에 웃음이 돋았다. 날 깊이 의심하지는 않는 듯했다. 문득 애련이에게 지금도 언니 같은 여자가 되고 싶냐고 묻고 싶었다. 네가 여섯 살 때 “난 언니 같은 여자가 될래.” 하며 팔짱을 꼈던 일을 기억하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또 의심을 살 것 같아서 꾹 참았다. 벌써 8년 전 일이다. 동생은 아버지에게 전란의 아픔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 내게 그런 말을 했었다.

조선은 대대로 명나라를 섬겨 왔다. 오랑캐인 여진족이 세운 청이 중국 대륙을 다스리던 명과 어깨를 겨룰 때도 조선은 명만을 나라로 인정했다. 이는 조선의 실수였다. 조선에 무시당한 청은 이미 조선이 무시할 수 없을 만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청은 그 힘을 과시하려고 1627년 정묘년에 조선 땅으로 쳐들어왔다. 그리고 조선을 ‘아우의 나라’로 만들었다.

청의 힘은 나날이 커져갔다. 명의 도성인 연경을 위협할 정도였다. 1636년 병자년, 더욱 힘이 세진 청은 조선에게 아우의 나라에서 ‘신하의 나라’가 되라고 요구했다. 청을 더 높이고, 조선을 더 낮추려는 의도였다. 조선은 이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당시 조선의 왕이었던 인조 임금과 조정 대신들은 군사를 일으켜 청을 칠 마음까지 먹었다. 그러나 조선의 계획을 눈치 챈 청나라가 먼저 조선을 쳤다. 청의 황제 태종은 그해 12월 1일 몸소 12만의 군사를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조선 땅으로 넘어왔다.

막상 청군이 들이닥치자 조선 조정은 우왕좌왕대기만 할 뿐 뾰족한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보름도 채 안 되어 청군은 한양의 코앞까지 닥쳐왔다. 인조 임금은 우선 세자빈 강씨와 둘째아들 봉림대군 등 일부 왕족을 강도(강화도)로 피신시켰다. 그리고 14일 밤, 본인도 세자와 함께 어둠을 틈타 강도로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청군에 의해 강도로 가는 길이 막히는 바람에 포기해야만 했다. 마음이 바빠진 임금은 허겁지겁 남한산성으로 옮겨 갔다.

15일 새벽, 임금은 남한산성을 나와 강도로 떠나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엔 온 세상을 하얗게 덮은 눈이 길을 가로막았다. 임금의 행차는 얼마 가지 못하고 다시 남한산성으로 돌아와야 했다. 임금이 남한산성에 주저앉게 되자 한양에 남아 있던 관리들도 남한산성으로 모여들었다. 우리 가족도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그때 나는 두 살배기 아기였고, 애련이는 엄마 배 속에 있었다.

사실 우리 가족은 남한산성으로 갈 필요가 없었다. 임금은 봉림대군 일행을 강도로 피신시킬 때 종실들도 함께 보냈는데, 그때 우리도 따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임금의 배려를 물리쳤다. 임금 곁에 남아 임금을 지키겠다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었다.

병자년의 난리는 이듬해 1월 30일 막을 내렸다. 청이 이기고, 조선이 졌다. 인조 임금은 한강 동쪽인 삼전도 나루에서 황제에게 삼배구고두를 하며 항복을 선언했다. 삼배구고두란 청의 관습으로, 신하가 황제에게 예를 올리는 의식이다. 한 번 무릎 꿇은 채 머리가 땅에 닿도록 세 번씩 절하기, 이를 세 번 되풀이해야 한다.

나는 병자년 전란에 관한 이야기를 여섯 살 때 아버지에게 들었다. 우리 임금이 부끄러운 항복 의식을 치렀다는 사실에도 놀랐지만, 수많은 백성이 목숨을 잃고 또 청나라에 노비로 끌려갔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여자들마저 강제로 끌려가 청의 궁녀나 관리들의 아내가 되었다는 말에는 펑펑 울고 말았다. 내가 아기였을 때 그렇게 끔찍한 일이 있었다니…….

겨우 한 달 남짓했던 병자년 전란은 조선에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치욕을 안겼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이 상처와 치욕을 기억하라고 했다. 언젠가 꼭 되갚아 주라고 했다. 그래서 오라버니들에게는 학문을 갈고닦아 나라의 큰 재목이 되라고 가르쳤다. 언니와 나에게는 여자라서 관직에 나아갈 수 없지만, 나라를 위해 무엇이든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갖추라고 일렀다. 애련이도 나처럼 여섯 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에게 똑같은 가르침을 받았다.

아버지는 내가 자라는 동안 틈틈이 그 ‘마음가짐’에 대해 확인하고 기억시켰다. 언니와 애련이보다 나에게 더 자주 그랬다. 선왕(先王)인 인조 임금과 나와의 인연 때문이다.

역시 내가 여섯 살 때 들은 이야기다.

1636년 12월 16일, 청군은 남한산성에 다다랐다. 전날 눈 때문에 강도로 피신하지 못한 임금은 하늘을 향해 탄식을 내뱉었고, 조정 대신들은 땅을 향해 고개를 떨구었다. 그런데 청군은 남한산성을 곧바로 공격하지 않았다. 성 안의 식량이 떨어지고 조선군이 지치기를 기다렸다. 이따금 작은 전투만 일으킬 뿐 큰 싸움은 벌이지 않았다.

이듬해 1월 1일, 황제는 군사를 20만으로 늘려 남한산성을 에워쌌다. 조선군은 성 안에서 시간만 보낼 뿐 공격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성 안의 식량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전투에 쓸 말들이 굶어죽고, 사람들은 그 말들을 삶아먹었다. 겨울 추위는 조선군에게 제2의 적군이었다. 칼바람에 동상 환자는 물론 얼어 죽는 병사들이 늘어갔다.

곳곳에서 지방의 관리와 장수들이 성에 갇힌 임금을 도우려고 남한산성으로 달려왔다. 그러나 청군의 규모와 기세에 눌려 싸움은 하지도 못한 채 남한산성 주위만 빙빙 맴돌았다. 남한산성은 외로운 섬과도 같았다.

상황이 점점 나빠지자 청과 화의를 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대신들은 싸우자는 쪽, 화의하자는 쪽으로 편이 갈려 날마다 다툼을 벌였다. 그 사이 항복하기를 바라는 목소리도 조심스레 흘러나왔다.

1월 중순 무렵, 오랜만에 찬바람이 잦아든 날이었다. 인조 임금은 아침 수라를 간단히 마친 뒤 산성의 서쪽 지휘소인 서장대로 향했다. 산성을 지키는 군사들을 몸소 위로하려는 목적이었다. 임금은 행궁 뒷길을 따라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바람이 수그러들었다 해도 길을 덮은 얼음은 여전히 단단했다. 자칫 미끄러질 수 있어서 임금을 모시는 수행원들은 바짝 가슴을 졸였다.

서장대에서 파수를 보는 초병들의 모습이 임금의 눈에 들어왔다. 군관이나 병졸이나 모두 추워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들은 추위와 싸우느라 임금이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전하!”

임금의 등장에 깜짝 놀란 군사들이 허둥지둥 큰절을 올렸다. 꽁꽁 언 군사들의 몸이 덜덜 떨렸다. 손바닥은 그대로 땅에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 임금은 먼 곳으로 슬며시 눈길을 돌렸다. 떨리는 몸을 멈추려고 애쓰는 군사들이 자못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수고가 많다. 이 나라가 그대들의 어깨에 달려 있음을 명심하라.”

“황공하옵나이다, 전하.”

임금은 서둘러 뒤돌아섰다. 대신들을 보낼 것을, 공연히 발걸음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사들을 위로하기는커녕 더 지치게 만든 것만 같았다. 임금은 남장대까지 돌아보려던 마음을 접었다. 그러고는 수행원들에게 힘없이 말했다.

“행궁으로 돌아가겠다.”

행궁 앞뜰에서 여자아이 둘이 쪼그려 앉은 채 놀고 있었다. 임금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아이들을 지켜보았다. 큰 아이는 예닐곱 살쯤, 작은 아이는 두세 살쯤 먹어 보였다. 두 아이는 꼭꼭 뭉친 눈을 냠냠 뜯어먹었다. 서로 먹여 주기도 했다. 맛있는 감자라도 먹는지 얼굴엔 웃음꽃이 한 다발 피어났다. 찬바람에 새빨개진 얼굴은 갓 피어난 동백꽃처럼 예뻤다.

임금이 수행원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자매로 보이는 저 아이들은 누구의 딸인가?”

“제가 아비이옵니다.”

금림군 이개윤이 수줍은 듯 한 발짝 나서며 대답했다.

“참으로 예쁜 딸들을 두었구나, 허허.”

작은 아이의 귀에 임금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임금을 본 작은 아이는 얼른 눈덩이 하나를 뭉쳤다. 그런데 아버지의 모습도 보이자 얼른 한 개를 더 뭉쳤다. 그러고는 임금에게 강아지처럼 쪼르르 달려갔다.

작은 아이가 임금에게 눈덩이를 불쑥 내밀었다.

“임금님 할아버지, 이거 드세요. ‘눈떡’이에요.”

“눈떡? 이게 떡이란 말이냐?”

“예. 내가 만들었어요.”

“옳거니. 눈으로 만들어서 눈떡이구나!”

작은 아이가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고맙구나, 허허허. 맛있게 잘 먹겠다.”

임금은 작은 아이에게서 눈떡을 건네받았다. 그러고는 아삭, 한입 깨물었다. 수행원들은 혹시나 임금의 몸에 탈이 날까 봐 조바심을 쳤다. 하지만 임금은 아랑곳하지 않고 맛있게 눈떡을 먹었다.

“맛있구나. 근데 나머지 한 개는 누구 거냐? 그것도 내게 주려고?”

“아니요. 이건 우리 아버지 줄 거예요.”

작은 아이는 눈을 한 번 찡긋하고는 아버지에게 달려가 안겼다. 임금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과인은 저 사랑스러운 아이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때 임금에게 눈떡을 준 그 작은 아이는 갓 세 살이 된 나였다. 큰 아이는 일곱 살 먹은 우리 언니였고. 금림군 이개윤은 나의 아버지다.

인조 임금이 나에게 눈떡을 받아먹고 며칠 뒤 강도가 청군에게 넘어갔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봉림대군을 비롯한 왕족들의 생명은 이제 청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마침내 임금은 항복을 결심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나의 아버지를 행궁으로 불러서 자신의 결심을 전했다. 아버지는 혀를 깨물며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았다.

훗날 아버지는 나에게 말했다. 임금이 항복의 뜻을 전하면서 내 이야기를 꺼냈다고. 임금은 나에게 눈떡을 받아먹었을 때 아이들만은 꼭 지켜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나처럼 착한 아이를 지키려면 청에 항복을 하는 수밖에 없다며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이 모든 이야기를 동생 애련이도 자라서 듣게 되었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애련이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에게 말했다.

“난 언니 같은 여자가 될래. 임금님이 착하다고 칭찬했으면 언니가 조선에서 최고로 착한 거잖아. 그러면 조선에서 제일가는 여자잖아.”



“언니,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응? 아, 아니.”

옛 기억을 더듬다가 나도 모르게 애련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나 보다.

“내 얼굴이 꽃처럼 예뻐서 그래?”

애련이는 두 손으로 꽃받침을 만들어 얼굴을 받쳤다.

“아니. 네가 꽃보다 더 예뻐.”

“정말?”

애련이는 칭찬을 들어 좋은지 아기처럼 까르르 웃었다. 나도 애써 소리 내어 호호호 웃었다.

“언니, 아버지 기다리시겠다. 얼른 문안 가자.”

“맞다, 내 정신 좀 봐.”

나는 서둘러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급히 발을 뗐다. 그러다 애련이의 치맛자락을 밟아 찍 미끄러졌다.

“아이쿠!”

쿵, 엉덩방아를 찧으며 자빠지고 말았다. 엉덩이가 얼얼했다.

“언니, 괜찮아?”

애련이는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걱정은 잠깐, 이내 깔깔깔 배꼽을 쥐고 웃어댔다.

“그렇게 촐랑대면 어떡해? 안 깨졌어?”

“심하진 않아.”

나는 엉덩이를 어루만지며 대꾸했다.

“아니, 언니 엉덩이 말고, 방바닥.”

“뭐? 이게 언니를 놀려?”

나는 꿀밤을 먹이려 종주먹을 들이댔다.

“때리면 아빠한테 이른다!”

애련이는 또 까르르 웃으며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갔다. 나는 어이가 없어 풋 헛웃음을 터뜨렸다. 순간 가슴 한켠이 아련했다.

‘이렇게 웃을 수 있는 날도 이틀밖에 안 남았네. 다시 이런 날을 맞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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