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요 등장인물 】
김 소령 : 11년째 군 생활 중. 작년에 대위에서 소령으로 진급. 공개정보를 AI로 분석하여 테러 발생 징후를 탐지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프로젝트 진행 중. 해당 프로젝트 입찰을 위해 전직 장군에게 외압을 받았으나, 굴복하지 않음
최 대령 : 김 소령이 8년 전 기무사에 근무할 당시 상사. 능력 있지만 군인보다 글로벌 회사에 어울리는 마인드를 보유.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자아실현을 위해 군 생활 중
김 소령은 공군사관학교 출신이다. 20대부터 국가안보를 위한 생각과 행동을 하면서 지내왔다. 친구들이 대학 생활을 즐길 때, 군복을 입고 훈련을 받았지만 오히려 국가와 사회에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있음에 만족감을 느꼈다.
조국의 하늘을 지킨다는 마음으로 전투기 조종사를 희망했지만 조종 훈련 중 부적합 판정을 받았고, 대신 정보 병과를 선택했다. 늘 군인으로서 모범을 보여준 그는 군 생활 3년 차에 국군기무사령부로 보직을 이동했다.
8년 전 김 소령이 김 대위일 당시, 김 대위는 매일 늦은 밤까지 야근하며 방산 비리 관련 업무를 했다.
“자네가 김 대위군. 반가워. 나 최 대령이야. 내일부터 조사과장으로 부임하는 거 들었지? 자네에 대한 평가가 아주 좋더군. 잘 부탁해”
“충성, 이렇게 늦은 시간에 사무실까지. 필요한 것 말씀하십시오!”
“그냥 이번에 보직이 변경되어서 한 번 들러봤어. 나는 이제 갈 테니 얼른 들어가~”
김 대위는 최 대령의 뒷모습을 보고, 얼른 일을 마무리하고 퇴근한다.
다음날 아침, 새로운 과장을 맞을 준비를 하느라 사무실이 분주하다. 최 대령은 아침 회의를 주재한다.
“반갑습니다. 조사과에서 하는 일이 정말 막중하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여러분들의 능력이 출중하다는 것이겠죠. 과장만 바뀐 것이고, 우리 과의 본질은 변함이 없습니다. 지금처럼 해 온 대로 해주세요. 다만, 몇 가지 당부사항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과원들은 늘 그랬듯이 수첩을 꺼내 필기할 준비를 한다. 아니, 필기하는 척을 한다.
“적을 필요 없어요. 정말로 수첩은 내려놓고 저를 봐주세요. 아침 회의는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정기적인 회의는 없습니다. 바로 저에게 그냥 말해주세요. 저에게 보고할 때, 자료 만드느라 시간 쓰지 마세요. 그냥 메일로 간략히 보내주셔도 무방합니다. 내부용 자료에 힘쓰지 맙시다.”
새롭다. 적어도 기존 군 조직에서는 매일 아침 회의하는 것이 의례적인 것이었다.
“저는 사무실에 오래 앉아있다고 일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의례적으로 해온 일에 의심을 가지고, 쓸데없는 일은 과감히 생략하세요. 그런 의견은 적극적으로 수용하겠습니다. 휴가, 육아시간 필요하면 눈치 보지 말고 사용하세요. 괜히 일도 없는데 눈치 보지 마세요. 아, 저녁 회식은 없습니다. 필요하면 점심, 티타임으로 소통하시죠.”
이런 지휘관은 처음이다. 저녁 회식이 없다니... 술 좋아하는 선임 장교, 부사관들이 놀란 눈으로 서로를 쳐다본다. 일을 더 하라면 하라고 했지, 하던 일 중에 쓸데없는 일을 하지 말라니... 충격이다.
“제 역할은 여러분이 본연의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권위, 불필요한 형식 다 생략합니다. 이상입니다.”
김 대위는 의아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도 아니고, 8년 전이다. 그것도 보수적인 군 조직에서 정말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김 대위에게 최 대령은 궁금한 존재였다.
‘과장님은 업무능력은 정말 뛰어난데, 내가 아는 군인과는 전혀 다르단 말이야. 다른 대령들은 진급을 위해 사령관, 다른 장군들과 주말에는 골프도 치고, 술 약속도 많이 잡는데, 과장님은 진급 생각이 없으신가?’
최 대령이 불필요한 업무와 보고 절차를 없애서 편리한 점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업무량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최 대령의 부드럽지만 송곳 같은 질문을 대비해 본연의 업무량이 줄어든 부분을 대체했다. 본연의 업무에 쏟는 시간은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박 대위가 최 대령과 같이 근무했었으니, 한 번 물어봐야지’
김 대위는 최 대령과 같이 근무했던 동기 박 대위에게 전화를 건다.
“요즘 어때? 나도 힘들어. 저녁이나 한 번 먹자!”
김 대위는 횟집에 들어선다. 곧이어 박 대위가 들어온다.
“김 대위, 무슨 일 있어? 왜 갑자기 저녁이야?”
“나 요즘 잘 지내. 최 대령님 오셨잖아. 완전 파격적이더라. 나 요즘 대령한테 직접 전화 걸어서 물어보고 그래. 엄청나지 않냐?”
“최 대령님 스타일이야. 웨스트포인트 알지? 그분이 생도 때 미국 육사 교환프로그램도 참여하고, 워싱턴 DC에서 무관으로도 근무했었어.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정서랑 조금 달라.”
상사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역시 동기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는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박 대위가 말을 이어간다.
“그렇다고 너 편하게 막 하면 안 된다. 그분이 일하기 편한 조건은 만들어 주는데, 업무 성과는 엄청나. 준비 잘 못하면 부드럽지만 날카로운 질문에 만신창이가 되어 버려. 잘해 그러니까. 우리 군 생활하면서 만나기 힘든 분이야. 그것도 너 복이다 복.”
술잔이 깊어질수록 둘은 늘 그랬듯 생도 때 이야기를 꺼낸다.
“야 너 나랑 룸메이트할 때, 조종 부적합 통보받고 몰래 울었잖아. 기억나냐? 그리고 한 달 뒤인가? 나도 부적합 통보받았잖아.”
“알지. 너 탑건 보고 전투기 조종사 되고 싶다고 공사 지원한 거였는데, 못해서 너는 동기들 앞에서 펑펑 울었잖아.”
“그러게 다 추억이다 추억. 그때는 그게 세상 무너지는 건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아 정말.”
“맞아. 조종사가 되었으면 이렇게 기무사에서 하는 의미 있는 일이 존재하는 것조차 모르고, 조종만 했겠지.”
“너 어쨌든 최 대령님이랑 대화 많이 해봐. 뭔가 달라. 깨어있다고 해야 하나?”
일상적인 하루하루가 지나고, 몇 달이 지났다. 김 소령은 최 대령과 경상남도 사천을 방문하는 출장이 잡혔다.
8년이 지났지만 출장 내용은 희미해졌어도 그날의 대화는 똑똑히 기억한다. 그만큼 김 소령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