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사와 군인 연금이라는 방파제가 오히려 독?

by 독립단장

김 소령은 불 꺼진 사무실 안을 들어간다. 점심시간의 사무실은 조용하다. 의자를 젖히고 낮잠을 자는 사람, 이어폰을 끼고 모니터를 보는 사람, 독서등을 켜고 책을 읽는 사람, 아직 자리에 돌아오지 않은 사람. 김 소령은 방으로 들어가 잠시 눈을 붙인다. 점심시간 10분의 수면이 주는 힘은 정말 강력하다.


김 소령은 다시 맑은 정신으로 오후를 시작한다. 몇 번의 보고를 받고, 한 번의 보고를 하니 일과시간이 거의 지나갔다.


열심히 보고서를 작성하는 이 대위가 보인다.


부서장이 되어 좋은 점은 말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직접 보고서를 작성하는 게 아니라 더 넓은 시각으로 업무를 바라보고, 부서원들을 리드하고, 부대 내에서 부서원과 부서의 입지를 신경 써야 한다.


“오늘도 모두 고생하셨는데, 커피 한 잔 하실까요?”


사무실에 유일한 병사인 허 병장이 커피 메뉴를 취합하고, 송 중사와 픽업을 다녀온다.




사무실 인원은 단출하다. 이 대위, 강 중위, 남 상사, 송 중사, 전 주무관, 고 주무관, 허 병장 총 7명이다. 모두 각 군에서 내로라하는 에이스들이다. 국방부에서 최초로 시도하는 AI 기술을 접목한 테러 발생 징후 탐지 프로그램을 구축하고 있어, 유능한 인력들을 배정받을 수 있었다.


어느 조직이든 정상적인 사람들과만 일할 수 있는 것도 복이라고 하던데, 그래서인지 다들 만족도가 높다.

“허 병장 이제 전역이 얼마 안 남았네~”


“네 맞습니다. 이제 108일 남았습니다. 바로 복학할 계획인데, 요즘 들어서는 이게 맞나 싶습니다. 빨리 돈을 벌어서, 투자하는 게 답인 것 같기도 합니다. 졸업하고, 취업하는 동안 물가는 더 오를 테니, 결혼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풀려고 하지 마.” “그래, 군생활 잘했고, 대학 생활 잘하고, 주어진 일을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면 되지.” 다들 한 마디씩 조언을 건넨다.


김 소령도 한 마디 한다.


“내가 지금 자네 나이로 돌아가도 우선 몸값을 높이는데 집중할 거야.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하겠지. 전공도 컴퓨터 공학이니, 실력을 키우면 취업도, 연봉도 높일 수 있잖아. 20대에게 가장 좋은 투자는 몸값을 높이는 거지. 그래야 종잣돈을 빠르게 많이 모을 수 있잖아. 투자는 그 이후에 해도 충분해.


투자는 어차피 종잣돈 x 수익률이야. 수익률을 높이는 건 어렵지. 종잣돈은 몸값에 달렸잖아. 고민은 하되,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지금처럼 하면 잘할 테니까.”




“이 대위님 결혼 준비는 잘되고 있으세요?”


누군가 이 대위에게 묻는다. 작년에 진급한 이 대위는 요즘 결혼 준비로 바쁘다. 바쁜 프로젝트를 하느라 잠시 소강상태에 있다가 최근 웨딩 사진도 찍고, 청첩장도 돌리며 어느 정도 결혼식 준비를 끝냈다.


“결혼식 준비는 어느 정도 마무리 되었어요. 신혼집도 관사니 크게 준비할 건 없더라고요. 다만, 저도 집 문제로 고민 중이죠. 여자친구는 직장이 서울이어서 지금은 관사에 있어도 문제없는데, 결국 집을 사야 되잖아요. 그런데 군인 월급으로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이 대위가 멋쩍게 웃는다.


다들 공감한다. 사실 이건 모두의 문제나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관사를 혜택으로 여기며 신혼을 시작했지만 여기에 안주해 버리는 사람이 대다수다. 그러다 보니 돈을 모으지도 못했는데, 물가와 집값은 천정부지로 올라버렸다.


사회에서 전ㆍ월세를 살며 이러한 폭풍을 겪은 친구들은 이를 악물고 내 집마련을 했지만 관사라는 방파제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 절실함이 없었다. 또한 노후도 군인연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막연한 생각이 그들을 더욱 방파제 안으로 밀어 넣었다.


관사와 군인연금은 잦은 이사, 사회와 단절된 군인을 위한 혜택이다. 과거에는 주어진 본분만 잘하면 생계에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급변했다. 군인으로 주어진 임무를 다 함과 동시에 자본주의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더욱 저축을 하고, 자본주의를 공부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관사와 군인연금이라는 방파제를 기반으로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가야지 생존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지 못하면 오히려 군인의 혜택들이 독으로 자신을 찌르게 된다.


아직 방파제 안에 살고 있는 남 상사가 말한다.


“그래도 우리 때는 그런 생각조차 못했어요. 이 대위님은 4년 차에 그렇게 생각하니 분명 잘 되실 거예요. 맞벌이도 하니까요. 너무 걱정 마세요. 그래도 관사 덕분에 주변 친구분들 보다 일찍 결혼하지 않아요?”


사실 남 상사가 방파제 안을 벗어나지 못한 건 그의 잘못이 아니다. 잦은 이사와 육아로 배우자는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의 선배 세대들만 해도 군인공제회, 적금 수익률이 상당했다. 군인 특별공급 청약도 더 많았다. 그렇기에 그도 다른 선배들과 같이 행동한 것이다. 운이 없게도 시대가 급변한 것뿐이다. 자본주의를 따로 교육받지 못했고, 이렇게 돈이 많이 풀리면서 서울 아파트 가격이 급등할지 몰랐던 것이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김 소령이 입을 연다.


“이제 이 대위 자네는 결혼도 하니, 자산에 더 신경을 써보게. 허 병장이 몸값을 올려야 할 때라면 자네는 이제 자산을 축적해야 하는 시기야. 둘의 소득을 합쳐서 종잣돈을 최대한 모아야지. 뻔한 이야기 갖지만 그게 진리야.


신혼이라고 소비하면서 즐기지 말고, 미래를 위해서 돈을 모으는 것. 그렇게 돈을 모으면 분명 기회를 잡을 수 있어. 경제를 공부하다 보면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것을 알 수 있잖아.


아파트도 마찬가지야. 장기적으로 우상향 하는 서울 아파트도 중간중간 하락기를 맞이하지. 주식은 더 그렇고. 그 시기를 대략적으로 볼 수 있고, 종잣돈이 준비된 사람만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어.


우선 통장에 잔고를 쌓아가는 행복을 느껴보게나. 자네도 분명 부자가 될 수 있어.”


김 소령은 말을 마치자마자 너무 꼰대 같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어쩌겠나? 그것이 진리인 것을....


전화가 온다. 허 병장이 전화를 당겨 받는다.


“통신보안 대신 받았습니다. 네 단장님!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김 소령이 방에 들어가 전화를 받고, 티 타임은 자연스럽게 해산된다.


이 대위의 표정이 오묘한 듯 조금 밝다.


‘나에게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처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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