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요 등장인물 】
김 소령 : 11년째 군 생활 중. 작년에 대위에서 소령으로 진급. 군 복무 4년 차부터 자본주의에 눈을 떠, 주식, 코인, 부동산에 적극적으로 투자 중. 최근 부동산 2채를 정리하고, 목동 실거주를 선택
안 서기관 : 행정고시 출신 국방부 서기관. 연수원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았으나, 국방 정책 전문가가 되겠다는 소신으로 비인기 부처인 국방부를 선택. 김 소령과 카이스트 AI 대학원 석사 연수를 함께 하면서 친구가 됨
김 소령은 서울에 배치를 받은 후 많은 지인들에게 얼굴 한 번 보자는 연락을 받았다. 새로 맡은 직책에서 수행하는 테러 징후 예측 AI 프로젝트 수행, 목동 아파트 매수 등 정신이 없다가 이제야 여유가 생겨, 약속을 잡기 시작한다.
오늘은 카이스트 AI 대학원 석사 위탁교육 당시 친구를 맺은 국방부 안 서기관과 점심을 먹기로 했다. 김 소령은 국방부 청사 앞에서 삼삼오오 점심 먹으러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안 서기관을 기다린다.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김 소령, 오랜만이야. 서울 오니 가족들이 참 좋아하지? 군인들 참 고생 많아. 아무튼 배고픈데 식당으로 가자.”
삼각지역에서 조금 걸어 용리단길로 간다.
‘트렌디한 곳은 다 길 이름이 붙네. 부동산으로 치면 경리단길이 대장이고, 주변에서 그 효과를 받기 위해 이름을 따라서 하는 것이겠지?!’
김 소령은 길 이름을 보며, 잠시 생각하다 말한다.
“뭐 먹을까? 타코? 태국 음식?”
“타코에 맥주나 한 잔 하자.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는데 그래도 맥주 한 잔 해야지.”
“좋지~”
둘은 식당으로 들어선다. 조금 일찍 나와서 아직 웨이팅이 없다.
“김 소령, 자네는 흑맥주 좋아하지? 흠... 그럼 타코 2인 세트에, 버팔로 윙 그리고 흑맥주 한 잔, 코로나 한 잔이요.”
맥주가 바로 나온다. 정말 오랜만에 맥주잔을 마주친다. 시원한 목 넘김 이후 같이 나온 나쵸를 하나 먹는다. 잠시나마 대학원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이다.
안 서기관은 행정고시 출신 엘리트 공무원이다. 연수원 성적이 좋아서 기재부를 갈 수도 있었지만 본인만의 철학이 있었던 안 서기관은 국방부를 선택했다.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흔히 볼 수 없는 선택이다.
중앙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연수를 받는 시보 사무관들 사이에서 국방부는 사실 인기 부서는 아니다. 전통적으로 기재부는 국가 경제ㆍ재정 정책의 컨트롤 타워이기에 영향력도 강하고, 향후 다양한 국가기관과 국제기구 자리도 많기에 인기가 많다.
비슷한 이유로 산자부, 국무조정실 등을 선호하지만 국방부는 아니다. 정부 부처 고위직은 고시 출신이 많은데 비해 국방부는 1~3급 보직 상당수가 전직 장성 출신이 많다. 장ㆍ차관 정무직도 군 출신들이 대부분이기에 다른 부처에 비해 군대식 문화가 있고, 의사결정 구조도 군인 위주로 형성되어 있다. 군사 정권부터의 관행, 안보기관의 특징, 남북 분단상황 등 대한민국만의 특수성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안 서기관, 요즘 어때? 우리가 배운 AI를 국방 정책에 좀 활용하고 있나?”
김 소령이 장난스럽게 말을 건다.
“나름 노력은 하고 있는데, 뭐 공무원 조직 다 알잖아. 뻔하지 뭐. 그래도 김 소령이 군 최초로 AI 기술을 활용한 프로젝트를 한다면서? 나도 관심 있게 보고 있어. 긴장하고 해 봐~”
둘은 크게 웃는다.
“나는 아직도 자네가 한 말이 똑똑히 기억나. 연수원 성적이 우수한데 국방부를 지원한 이유말이야.
국방부는 작전을 하는 합동참모본부와 달라야 한다. 작전을 잘하는 군인이 국방 정책과 행정까지 잘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처럼 군인이 아닌 국방 정책 전문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개인의 진로에 최적화된 부처는 아니지만 우리 국방ㆍ안보 부처가 이러한 방향성으로 향하는데 기여하고 싶다고 했잖아. 정말 감명받았어.”
안 서기관이 멋쩍게 웃는다.
“사실 이제는 잘 모르겠어. 다만, 초심을 잊지 않고 열심히 하려고 노력해 보려고. 그래도 진급과 자리 때문에 소신을 잃지는 않을 거야.”
자신의 신념과 철학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는 많지 않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생기는 여러 약속 자리에서는 제3자에 대한 이야기, 진급, 성과급, 가십거리 등이 대부분의 주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김 소령은 이러한 식사 자리에 큰 만족감을 느낀다.
“나는 점점 자네처럼 국가 정책과 방향성 같은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만족감에서 멀어지는 것 같아. 큰 뜻보다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최대한 시간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서 쓰고 싶어. 예를 들어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글 쓰고, 책 읽고, 투자하고 말이야.
그래서 사실 직업을 계속하는지도 고민하고 있어. 국가와 사회에 봉사하는 만족감도 분명 있지만 지금 내가 추구하는 삶을 이루기 위해서는 나만의 시간이 더 필요하거든...”
김 소령이 사뭇 진지하게 말한다. 그 사이 버팔로 윙과 타코가 도착한다. 안 소령은 윙을 한 입 베어 물고 대답한다.
“자신이 추구하는 삶이 무엇인지 아는 것 자체만으로 훌륭한 거야. 고위 공무원이 되고, 장군이 되고 이게 인생의 목표는 아니잖아.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냥 내가 어떤 삶을 추구하는지 알지 못한 채 그냥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만 따라 하잖아.”
안 서기관이 맥주를 한 입 마시고, 이어간다.
"사실 나는 지금도 정말 만족해. 내가 추구하던 국방 정책의 전문가로 성장하는 느낌이 들거든. 남들은 부이사관 진급, 대통령실 인맥 같은 이야기를 나한테 하는데, 나는 자리가 목표가 아니니 별로 신경 쓰지 않지. 내가 지금 주어진 위치에서 성장하고 있는데, 어떻게 만족을 안 할 수가 있겠어.
김 소령 자네도 본질적으로는 나와 마찬가지일 것 같아. 삶에서 추구하는 방향은 다를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그게 우리 자신이 원하는 것이잖아."
김 소령은 이런 안 서기관의 철학을 내심 존경한다. 국가 공무원으로서 공익과 이타심이 바탕되어 있지 않다면 불가능한 말이다. 이러한 엘리트 공무원이 국방부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난 자네가 꼭 국방부 장관이 되면 좋겠어. 4성 장군 출신이 아니라 진짜 국방 정책 전문가로서 말이야. 미국처럼 우리도 국방부 장관이 4성 장군 다음 코스가 아니라 국방 정책 전문가를 임명하는 시기가 분명 오겠지.”
김 소령과 안 서기관은 오랜만에 만났지만 서로를 참 멋진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철학적 자아가 있는 삶은 그 어떤 모습이든지 간에 정말 멋있다.
당신은 삶의 철학적 자아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