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속이 울렁거렸다. 계속 멀미하는 기분. 멀미와 다른 점이 있다면, 차에서 내린다고 끝나지 않는다는 거다. 속이 비면 증상은 더 심했다. 먹덧이었다. 임산부들이 먹덧이라고 얘기하는 것을, 그냥 많이 먹는 걸 합리화하는 귀여운 표현이라고 생각해왔다. 착각이었다. 먹지 않으면 울렁거려서 견딜 수 없는 거다.
그렇다고 많이 먹을 수도 없었다. 배가 부르면 또 울렁거린다. 속을 겨우 달랠 만한 소량의 무언가를 1~2시간에 한 번씩 입에 넣어주어야 했다. 직장인에게 이건 쉬운 일이 아니다. 계속 회의가 잡히고, 외근을 가는 나에겐 더욱 그렇다. 아무거나 먹히는 것도 아니어서 나는 계속 먹을 수 있는 것을 찾아다녔다. 결국 찾아낸 것은 입덧캔디, 견과류, 식빵 같은 거였다.
가만히 있어도 숨이 찼다. 배가 아직 불러오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원래 걸음이 매우 빠른 편이었는데, 빨리 걸을 수가 없게 됐다. 오르막이나 계단을 오르기도 힘들었다. 원래 10분 만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를, 20분 걸려 걸어가야 했다.
지하철 환승통로가 이렇게 긴지, 계단이 이렇게 높은지 처음 알게 됐다. 처음으로 교통약자용 엘리베이터 앞에 줄을 섰다.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매우 느리다. 평소라면 계단으로 후딱 올라갔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도를 감수하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엘리베이터는 항상 만원이다. 지하철 계단 앞에서 처음으로 막막함을 느낀 뒤, 교통 약자를 위한 시설이 매우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선릉역으로 출퇴근을 하는데, 선릉역에는 엘리베이터가 딱 하나 있다. 다른 역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긴 역사를 걷는 것 역시 쉽지 않다. 임신 전에는 몰랐던 거였다.
지금까지 36년 살면서 한번도 크게 아팠던 적이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체력이 발목잡은 적도 없었다. 그러니,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체력이 안 좋은 사람은 관리를 안 해서, 운동을 안 해서, 의지가 없어서라고 생각했다. 그의 책임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임신을 하면서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다는 것을. 의지나 관리의 문제로 치부하는 건 너무 폭력적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임신은 내게 첫 신체적 좌절이었다. 하지만 이 경험을 통해 나보다 약한, 저마다의 다양한 신체 조건을 가진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가 생기면 더 넓은 세계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가 벌써 내 세계를 넓혀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