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적으로 자연임신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은 우리에게 임신은 그 자체로 기적이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넘어야 할 산은 많았다.
12주 이전까지는 안정기로 보지 않는다. 4~5명 중 1명꼴로 유산된다고 했다. 실제로 주치의 선생님도 아기 심장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축하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기 집이 잘 자리잡았지만 말이다.
무사히 12주까지 왔지만, 위험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태아와 신생아가 겪을 수 있는 위험을 항목 별로 설명하는 태아보험 컨설턴트 앞에서 나는 표정 관리를 하기 어려웠다. 이제 막 임신을 확인한 예비 엄마 아빠에게 태아보험 설명은 잔인하게까지 느껴졌다. 1, 2차 기형아 검사를 거치며 주치의 선생님의 작은 표정 변화에도 심장이 내려앉았다.
임신 초기를 무사히 넘기더라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아기의 심장이 멈춰버리는 경우가 왕왕 있다. 임신하고 나니 유독 그런 사례들이 눈에 띄었다. 건강하게 태어나는 건 기적이었다.
아이의 성장 하나하나가 경이롭고 놀라웠다. 처음 병원에 갔을 때 우리가 볼 수 있었던 건 1.08cm의 아기집 뿐이었다. 그로부터 3일 뒤 아기집은 1.26cm가 되었고, 4일이 지나니 아기가 생겼다. 아기는 0.59cm였다. 쌀알 만한 세포. 그 작은 세포의 심장이 우렁차게 뛰었다. 그 후 병원에 갈 때마다 아기는 2배 이상씩 자랐고, 기관도 하나씩 생겨났다.
처음 봤을 때는 길쭉한 덩어리였다. 그 덩어리에 머리와 팔 다리가 생겼다. 척추가 생기고, 위와 장이 생겼다. 다리가 허벅지와 종아리, 발목과 발, 발가락으로 나눠졌다. 눈과 코, 입, 인중, 귀, 머리카락이 생겼다.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아졌다. 발가락이 발에 생기는 게 놀라웠고 감사했다. 뇌가 있어야 할 부위에 뇌가 잘 생겨난 것이 대단했다. 임신 전에는 당연한 것들이었다.
나와 남편이 건강하게 태어나서 36년 간 크게 아프지 않고 살아온 것도 기적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이런 과정을 거치고 태어났다고 생각하니,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넌 존재 자체로 소중하단다'라는 상투적인 말이 처음으로 와닿았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소중하고 대단하다. 정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