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기엔 좋은 생각만 하라고 한다.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고 한다. 나도 되도록이면 그러려고 한다. 하지만 높은 확률로 분노가 치미는 상황이 있다. 바로 대중교통 안이다.
33주까지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했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갈아탄다. 임신을 확인하고 보건소에서 받은 물건 중 가장 좋았던 건 임산부 뱃지였다. 지하철에서 앉아서 갈 수 있는 프리패스권. 출퇴근이 조금은 수월해지겠다고 생각했다.
지하철에는 임산부석 표시가 있는 칸이 있다. 원래는 환승이 편리한 칸에 타지만, 임산부가 되고 나서는 임산부석 칸이 우선이다. 그런데, 지하철에 타고도 임산부석 앞으로 가는 게 고난이었다. 출퇴근 길엔 사람이 워낙 많다. 임산부석은 가장자리에 있지만, 거기까지 가기 힘들 때도 많다. 사람에 치여 가방에 단 임산부 뱃지는 보이지도 않는다.
겨우 사람들을 뚫고 지나가 임산부석 앞에 도달하더라도 목표 달성은 어렵다. 70% 이상의 확률로 누군가가 앉아있다. 그리고 그는 90% 이상의 확률로 임산부가 아니다. 임산부일리 없는 남성이거나, 중년이 훌쩍 지나보이는 여성이거나. 내 또래의 여성이어도 뱃지는 보이지 않는다.
수치를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직접 세어보았기 때문이다. 직접 세어본 40회 중 비어있거나 임산부가 앉아있는 경우는 겨우 11번이었다. 나머지는 임산부가 아닌 사람이 앉아 있었다. 임신 초기, 지하철에서 시야가 갑자기 어두워져 쓰러질 뻔한 다음부터 무조건 자리를 사수해야 했다. 임산부 뱃지를 눈 앞에 달랑거리고 있어도 자리를 비켜주는 사람은 12명 뿐이었다. 나머지는 보고도 모르는 척 하거나, 눈을 감고 있거나, 핸드폰을 하느라 정신 팔려 나를 보지도 못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참지 못할 때에는 앉아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걸기도 했다.
"저, 혹시 임신하셨어요?"
말을 걸면 깜짝 놀라며 일어나는 사람도 있었고, 왜 묻냐는 표정으로 앉아서 버티던 사람도 있었다. 오히려 그 옆 일반석에 앉아있던 분이 자리를 비켜주기도 했다. "여기 임산부 배려석이라, 양보해주실 수 있을까요?" 묻자 나를 째려보며 일어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황당하고 화가 났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얼마나 사건 사고가 많은 세상인가. 해꼬지 당할까 겁나 보통은 화를 누르며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곤 했다.
횟수를 세어본 것은, 내가 부정적인 감정에 잠식되어 실제 현상을 왜곡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자아검열에서였다. 하지만 실제로 임산부 배려석에 앉기 힘든 게 맞았다. 배가 나오기 전에도,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임신 전에는 나 역시, 임산부가 없을 때는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서 가도 된다고 생각했다. 임산부가 타면 비켜주면 되겠다는 가벼운 생각이었다. 대부분 그런 생각으로 임산부 배려석에 앉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리에 앉아서 미어캣처럼 임산부가 오나 안 오나 살피지 않을 거라면 비워두어야 한다. 잠에 들 수도 있고, 핸드폰에 정신이 팔릴 수도 있다. 내가 가볍게 생각했던 그 순간에, 진짜 앉아야 하는 임산부는 무거운 몸을 버티며 힘겹게 서 있을 수도 있다. 나처럼 끓어오르는 화를 참으면서 말이다.
임산부가 되기 전에는 임신한 신체가 이렇게 힘든지 몰랐다. 걷는 것보다 서 있는 게 힘들다. 자궁이 무거워지니 밑이 빠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배가 나오지 않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기운도 없고, 속도 울렁거린다.
지하철에서 제일 고마웠던 분들은 일반석에서 기꺼이 자리를 양보해준 분들, 내 옆에 똑같이 서 있으면서도 임산부 석에 앉은 일반인에게 여기 임산부가 있으니 자리를 비켜달라고 대신 말해준 분들이다. 출산하고 나면 나도 그런 사람이 되리라 다짐한다. 겪어보니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