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임신 소식을 알려야 하는 건 회사였다. 우리 회사는 150명 규모의 중소기업이다. 연초, 매출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하는 중요한 시기였다.
본부장 님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작은 회의실에 본부장 님과 내가 마주 앉았다.
"부르셨습니까."
본부장 님이 내 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렸다. 이상하게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했다.
"저 임신했어요."
목소리가 떨렸다. 임신했다는 말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기혼 여성인 내게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잘못한 것도 아닌데 긴장이 됐다. 본부장님을 마주보기 어려워 책상으로 시선을 떨궜다.
본부장 님은 조금 놀라시곤 축하한다고 하셨다. 4살 아들의 아빠이기도 한 그는, 이제부터 내 인생의 많은 것이 바뀔 거라고 했다. 일은 중요하지 않고 아기만 생각하라고 했다. 어느정도 예상한 반응이었다. 그를 존경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는 어느 순간에도 무엇이 중요한지 잘 알았고, 직원 개개인이 회사의 일원이기 전에 각자의 삶을 꾸려가는 하나의 인간이라는 걸 존중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면담을 신청하며 구체적으로 고민하진 않았지만, 내 입에서는 오래 생각한 것처럼 답변이 흘러나왔다.
"아기 낳기 전까지 일하고, 출산휴가 3개월과 육아휴직 1년을 쓸 생각이에요. 그리고 복직할게요."
피임을 그만두는 순간부터 막연하게 이 순간을 상상해왔다. 회사에 임신을 알리는 순간. 우리 회사는 창업 7년차의 중소기업인데도 누군가 임신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직원들의 연령대가 대체로 낮고 기혼자가 적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임신한다면 내가 첫 임산부가 될 거라 생각했다.
나는 입사 순서로 회사에서 가장 오래된 직원이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첫 번째 임산부가 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입사한지 얼마 안 된 직원보다는 회사에 이것저것 요구하기 쉬울 거라 계산했다. 선례를 잘 만들고 싶다는 책임감도 있었다.
출산 전까지 성실하게 일하고, 육아휴직을 마치고 돌아오는 좋은 사례를 만들고 싶었다. 앞으로 누군가 또 임신하더라도 눈치 보지 않고 동료들의 축하를 받을 수 있도록. 그러려면 첫 임산부인 내 역할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