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처럼 생리는 늦어졌다. 하지만 더는 증상놀이하며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지 않았다.
며칠 뒤 술 약속이 있었다. 당연히 평소처럼 생리가 늦어지는 거겠거니 싶었지만, 마음 편히 술 자리를 즐기기 위해 오랜만에 임신 테스트기를 꺼냈다. 다음날 아침 첫 소변으로 테스트할 계획이었다.
새벽 2시. 요의가 느껴져 잠에서 깼다. 새벽도 첫 소변으로 치는 건지 애매했지만, 비몽사몽한 채로 임신 테스트기의 포장을 벗겼다. 소변 줄기에 테스트기를 갖다댔다. 익숙하게 수평으로 들고 시약선이 오르는 걸 멍하니 쳐다봤다. T와 C 부분에 선명하게 선이 새겨졌다. 어? 두 줄?
어리둥절했다. 아직 잠도 깨지 않은 상태였다. 두 줄이면... 임신? 그제야 포장지의 설명을 유심히 읽었다. 두 줄이면 임신이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혹시 유통기한이 지난 건가? 하지만 테스트기의 유통기한은 1년 이상 남아 있었다. 집에 있던 다른 테스트기를 서둘러 꺼냈다. 더이상 소변이 마렵지 않았지만 다시 한번 짜냈다. 두 번째 테스트기도 선명한 두 줄이었다. 이 정도라면 확실했다.
자는 남편을 깨웠다.
"여보, 나 임신한 것 같아..."
확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남편은 방금까지 곤히 자던 사람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벌떡 일어나 테스트기를 확인했고, 나를 꼭 안았다. 고맙다고 했다. 우리는 잠이 다 달아나 버렸다. 식탁 의자에 마주앉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네이버 예약으로 집 앞 산부인과를 예약하고, 당일 반반차를 썼다. 새벽 다섯 시까지 마주앉아 대화를 나눴다. 잠은 못 잤지만 정신은 명징했다.
회의가 6개나 있는 바쁜 날이었다. 일정을 모두 마치고 부랴부랴 퇴근해 남편과 산부인과 앞에서 만났다. 접수를 하고, 대기실에 초조하게 앉아있다가 진료실에 들어갔다.
임신 5주차였다. 아기 집이 잘 자리잡고 있었다. 예정일은... 올해 11월이었다.
"헉, 아기가 올해 나온다구요?"
임신 소식 만큼 충격적인 건 아기가 올해 나온다는 사실이었다. 10개월의 임신 기간은 길지 않았다.
올해 계획했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회사의 매출 목표, 아파트 대출 상환, 최근 등록했던 요가 수업과 여행 일정까지.
모든 계획이 전면적으로 수정되어야 했다. 한 해를 계획하며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이다. 하지만 갑자기 생겨버린 아기가 그 모든 것을 무용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