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의 눈이 뭔가 이상했다. 살짝살짝 눈을 찡그렸다. 졸린 건가, 아픈 건가?
“사랑아, 눈이 아파?”
“아니.”
“그럼 졸려?”
“아니.”
나의 걱정스러운 표정과는 상관없다는 듯 사랑이의 대답은 담담했다.
“그래? 엄마는 사랑이 눈이 좀 이상해 보이는걸?”
“시력이 0.2라 그런가?”
의아한 듯 대답하는 사랑이의 말투는 여전히 담담했고, 내 마음에는 물음표가 떴다.
“0.2면 앞이 잘 안 보일 텐데 안경은 왜 안 썼어?”
“아빠가 얼굴형이 바뀐다고 안 맞춰줬어.”
내가 아이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은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안경을 쓰면 얼굴형이 바뀐다는 건 알고 있지만, 앞이 보이지 않아 겪어야 할 불편함과 위험보다 더 중요한 건 아니었다. 내게는 그랬다.
“엄마 때는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칠판에 글씨를 많이 썼는데, 요즘은 안 써?”
“써.”
“판서가 보여?"
"앞에서 세 번째 자리까지는 보여. 그 뒤에 앉으면 안 보여.”
“아빠한테 네가 잘 안 보이는 거 말했어??”
“응.”
“말했는데도 안 맞춰주셨어?”
“응.”
공부 잘하는 아이를 원하면서, 앞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수업에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이미 오래전에 이해하는 건 포기했지만, 이번엔 받아들여지지도 않았다.
“그럼 공부는 어떻게 해?”
“들어.”
“들어서 공부가 돼?”
“응.”
외우는 게 귀찮아서 1학기 기말고사 영어와 과학을 3점, 5점 맞았다는 아이의 말이 스쳤다.
"길 다닐 땐 위험할 수도 있는데, 불편하지 않아?"
“엄마, 계속 이렇게 다니면 익숙해져.”
익숙해진다고?
‘어쩔 수 없다’는 체념에 가까운 아이의 말투에 가슴 한편이 뻐근하게 아파왔다. 황당하고, 어이없고, 마음 아팠다.
자기 힘으로 바꿀 수 없으니, 아예 기대도 하지 않는 모습은 불편을 감내한다기보다, 무력감에 적응해 버린 것 같았다.
공부하라고 학원 뺑뺑이를 돌렸으면서, 정작 눈이 안 보여도 안경은 안 맞춰줬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불편에 익숙해진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건 왜 모른 척한 걸까.
“언제부터 눈이 나빠졌어?”
“초등학교 때부터.”
나도, 아이 아빠도 눈이 나쁘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안경을 썼다. 유전도 있고, 요즘 아이들은 휴대폰을 많이 보니까 나빠질 수밖에 없다는 건 안다. 어쩔 수 없다 쳐도, 안 보이는 아이에게 안경을 안 사준다는 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부터 쭉 안 보였던 거야?”
“아니. 초등학교 5학년 때 드림렌즈 껴봤어.”
“지금은 왜 안 껴?”
“렌즈 세척하다가 잃어버리기로 했고, 시간도 많이 걸려서 안 꼈어.”
그때는 0.5였는데, 관리가 안 된 채 방치돼 지금은 0.2까지 떨어진 거였다. 활동적인 아이라 안경을 쓰는 것보다 드림렌즈를 맞춰준 건 좋은 선택이었지만, 초등학생이 혼자 렌즈를 관리하기엔 무리였다. 아직은 챙김이 필요한 시기인데, 방임이었던 것 같다.
“사랑아, 엄마 얼굴이 이상해 보여?"
“아니.”
“엄마도 눈이 나빠서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안경을 썼어. 20살이 된 후에 렌즈를 끼면서 안경은 집에서만 썼거든. 안경을 쓴다고 해서 얼굴형이 이상해지지 않아. 안경 써볼래?”
“응.”
마치 기다렸다는 듯 사랑이의 대답은 단호하고 빨랐다.
아이 아빠에게 연락해 안경을 사주자고 하자 “알아서 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이를 데리고 안경점으로 갔다. 가볍고 잘 부러지지 않는 프레임을 추천해 달라고 안경사에게 부탁했다. 여러 종류의 프레임이 우리 앞에 놓였다.
“사랑아, 골라봐. 어떤 게 좋아?”
“다 괜찮아.”
“진짜 다 괜찮아?”
“응”
사랑이의 행동에서 그동안 무언가를 선택해 본 경험이 부족했다는 게 느껴졌다. 늘 아빠가 사주는 대로, 하라는 대로 따라왔던 아이였다.
“다 괜찮다고 하면 가장 싼 걸로 골라줄 거야. 괜찮겠어?”
“.....”
“사랑아, 엄마는 안경을 오래 썼으니까 그 경험으로 가볍고 잘 부러지지 않고, 얼굴형과 잘 어울리는 걸로 추천해 줄 수 있어. 하지만 선택은 네가 해야 해. 네가 쓸 거니까 네 마음에 드는 걸로 선택해야지.”
사랑이는 잠시 고민하더니, 그중에 연한 핑크색의 동그란 안경태를 골랐다.
“오~ 우리 딸, 엄마랑 마음이 똑같네. 엄마도 그게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
나는 아이가 고른 안경테를 안경사에게 내민 후 두 번째로 비싼 얇은 안경알을 골랐다. 알이 두꺼우면 눈이 작아 보여서 늘 신경이 쓰였던 사춘기의 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를 위해서는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안경값을 결제하면서 뒤돌아선 사랑이를 보며 다시 마음이 아파왔다.
시력이 0.2인 아이가 바라보던 세상은 어땠을까?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에서, 흐릿한 세상이 오히려 더 편했을까?
아이의 어깨를 감싸 안고 안경점을 나오면서 나는 결심 헸다.
'사랑아, 말하지 않아도 알아챌 수 있는 센스만점 엄마가 될게. 혹시 알아차리지 못했을 땐 어떤 말이든 할 수 있는 엄마가 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