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모습에서 나의 사춘기를 만나다

by 예서연

헤이리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는 조수석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 고개가 툭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오기를 반복하는 모습이, 아직은 어린아이 같기도 하고 어른이 되어가는 길목에 선 것 같기도 했다. 운전대를 잡은 손은 앞을 향했지만, 시선은 자꾸 옆자리에 머물렀다.


나는 문득 내 사춘기를 떠올렸다.

초등학교 5학년,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아빠와 성당에 교리 공부를 하러 나갔던 길이 마지막이었다. 뇌졸중이었다. 근처 병원에서는 큰 병원으로 가라 했지만, 큰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엄마의 골든타임은 스쳐갔다.


엄마 없는 집은 금세 달라졌다. 아빠는 재혼했고,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엄마의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아 있다는 게 싫었다.


아빠는 늘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말했다.

"안 돼."

"왜요?"

"하라면 해."


새엄마에게 물어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힘이 없으니 아빠 말대로 해.”


내 사춘기는 점점 격해졌다.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겉으로 터뜨렸지만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허공에 흩어진 내 마음은 공허했다. 결국 나의 마음을 밖을 향하는 문을 걸어 잠 갔다. 나는 점점 말이 없어졌다.


사랑이도 말이 적다. 의견을 물을 때면 “응”, “아니”, “굳이?” 세 단어로 답을 하거나 고갯짓으로 대신했다. “응”이라는 단어는 긍정의 의미가 아니라 더 이상 말 걸지 말라는 신호였다. 무표정한 표정과 담담한 목소리는 비어 있는 눈동자처럼 영혼이 담겨 있지 않았다.


"하고 싶은 거 있어?"

"아니."

"뭐 먹을까?"

"......"

"머리카락 끝이 갈라졌는데 좀 다듬자."

"굳이?"


그때의 나도 그랬다. 아빠가 뭔가 물으면 “네” 하고 대답했지만, 사실은 “그만 좀 물어봐. 귀찮아”라는 뜻이었다. 관심받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거부하고 싶은, 그 모순된 마음. 사랑이의 짧은 대답 속에서 나는 그때의 나를 본다.


중학교 1학년. 나는 내 방 안 무인도에 홀로 갇혀 있었다. 누구도 가둔 적 없었다. 스스로 나를 가뒀다. 그곳엔 피아노와 책, TV가 함께 있었다. 그즈음 TV에서 한 여가수가 수면제를 과다 복용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린 마음에 하나의 깨달음이 있었다.


‘수면제를 많이 먹으면 죽을 수 있구나’


동네 약국을 돌며 몇 알씩 수면제를 사 모았다. 왜 중학생에게 약을 파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잠이 안 온다는 이유만으로 결국 스무 알을 모았다. 어느 날 방을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그 약을 삼켰다.


잠이 쏟아지려던 순간, 아빠가 집에 돌아왔다. 휴지통에 버린 약봉지를 보고는 곧장 나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엄마를 살리지 못했던 바로 그 병원이었다. 내 몸속으로 차가운 물이 끝없이 흘러 들어왔다.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의사의 짜증 섞인 목소리만큼은 선명하게 들렸다.


“뭘 이렇게 많이 먹었어.”


나의 사춘기는 그렇게 격렬했다. 속으로 삭이던 감정은 결국 나를 해쳤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에 죽음이 엄마를 데려갔다.

사랑이는 같은 나이에 아빠가 엄마와의 길을 막아섰다.

다른 이유였지만, 우리 둘 다 그 나이에 엄마가 곁에 없었다.



아무 감정이 없어 보이는 사랑이 마음이 궁금해서 물었다.


"화가 날 땐 어떻게 풀어?"


사랑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금방 잊어서... 안 풀어."


이상했다. 나는 중학생 때 화를 오래 품고 있었다.

혹시 사랑이는 화를 잊는 게 아니라 느끼지 않으려 하는 건 아닐까.


나는 감정을 안으로 삼키고 삼켜 품고 있었지만, 사랑이는 불편한 감정을 마주하지 않으려, 타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애써 외면하는 건 아닐까.


결국 지금 말수가 적은 사랑이를 보며, 나는 그때의 나를 본다.


아이의 마음속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나처럼 한순간에 폭발해 버리는 건 아닐까.

겉으로는 잠잠하지만, 혹시 내 안처럼 감정을 안으로 삼키며 자신을 해치는 건 아닐까.


사랑이가 그때의 나와 닮았다 한들, 그 속마음을 다 알 수는 없다. 다만 그때의 내가 원했던 것은 지시하고 강요하는 부모가 아니라 귀 기울여주는 마음이었다. 나를 믿어주고, 내 말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온전히 들어주는 어른.


내가 바랐던 것처럼 아이도 그걸 바라는 건 아닐까?

내게 원하는 걸 말할 때까지 내 두 귀는 아이의 말에, 내 두 눈은 몸짓 언어에 세심하게 기울이며 기다려야겠다.


자는 아이의 모습에서 무기력했던 그때의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시절과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지금의 나를 떠올린다.


두 얼굴이 겹쳐지는 그 사이에 아이의 웃는 모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차 안을 가득 채운 아이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나는 조용히 속도를 더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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