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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롤라 Jun 21. 2023

타인의 결혼식

마흔이 넘어가면서 남의 결혼식만 가면 주책맞게 눈물이 난다. 정작 내 결혼식 때는 감동은커녕 웨딩드레스 차림이 어색하고 불편해서 곤혹스럽기만 했다.

 스물아홉 살에 결혼식 날짜를 잡고 나서 아이가 생겼다. 임신한 사실을 알고 나서 웨딩샵에 가 웨딩드레스를 고를 때 난 최대한 편안한 디자인을 보여달라고 했다. 보통은 가장 날씬해 보이는 웨딩드레스를 고른다며, 직원분이 말하길 이런 주문을 하는 신부님은 처음 본다고 했다.


내가 숨쉬기 편한 정도여야 뱃속 아기가 불편하지 않을 게 아닌가. 웨딩드레스를 고르는 시점으로부터 결혼식은 석 달 후였다. 그때는 지금보다 배가 더 나왔을지 몰랐다. 가장 품이 넉넉한 웨딩드레스를 골라보려 했건만, 드레스마다 하나같이 허리를 잔뜩 조이는 심이 굵은 코르셋이 들어 있었다. 그래도 한 벌 고르긴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추천해주는 드레스를 껴입었다.


거울을 보자마자 예상치 못한 모습에 깜짝 놀랐다. 거울 속에 있는 평소와 다른 차림의 여인은 내가 아니었다. 피팅 룸 중앙에 있는 동그란 단상 위에는 조명이 쏟아지고 있어서일까. 드레스에 수없이 많이 박힌 큐빅들이 알알이 빛나 눈이 부셨다.


여자로 태어나서 웨딩드레스 한 번은 입어봐야 한다는 말이 이런 뜻이었구나. 웨딩드레스를 입은 내 모습에 대한 로망이나 기대 따윈 전혀 가져본 적이 없었는데, 이래서 때로는 남들이 하는 말을 귀담아들을 필요도 있구나 싶었다.


결혼식 당일에는 긴장하고 걱정이 가득해서였는지 내 결혼식은 과정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새신랑 꾸밈발을 잘 받은 남편이 평소보다 예뻐 보여 흐뭇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신부는 대체로 화려하고 비슷비슷하게 꾸미기 마련이라, 의외로 결혼식의 성공 포인트는 신랑 외모라 했다.


깨알만큼 작은 거품이 앞을 다투어 장난치듯 한 줄로 솟아오르는 황금빛 샴페인이 찰랑이는 잔을 나와 마주 든 새신랑의 앳된 얼굴. 그 얼굴은 죄어드는 옷이 불편하고 마음이 혼란스러웠던 그날 내가 유일하게 시선을 둘 수 있는 곳이었다.

 

결혼식 기억은 그 한 장면으로 내게 남아 있다. 이마를 반듯하게 들고 자랑스러움으로 빛나던, 어딘지 뿌듯해 보이는 그 얼굴 하나면 난 충분하다고. 그때는 아마도 그렇게 여겼을 거다. 결혼식을 마치고 웨딩드레스의 속박에서 벗어나 폐백을 하려고 통이 넓은 한복으로 갈아입고 나서야 큰일을 다 치러낸 듯 안심이 되었다.


결혼식은 세상 모든 이들에게 나의 1순위가 누군지 선언하는 의식이라고 한다. 그래서 식을 올린 사람이 매사에 배우자를 우선시할 때, 결혼식에 참석한 주변 사람들은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렇게 남편은 나의 사적이자 공적인 1순위가 되었다. 나 또한 남편에게 1순위인 사람이 되었다. 우리는 차디찬 세상 속에서 서로가 안심하고 머물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된 셈이다.


그래서 남의 결혼식을 보면 그렇게 눈물이 나나 보다. 눈물이 터지는 타이밍은 결혼 서약을 할 때다. 신부가 주례에게 “네.”라고 대답하는 순간 말이다. 남편에게 대답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대답한다는 점이 특별하다. 둘만의 서약이 아닌 제3자에게 공적인 선언을 하는 셈이다.


세상에 마음 붙일 유일한 그 장소는 아늑하고 따듯하기도 하지만 가끔 숨이 막히기도 하고, 박차고 뛰쳐나가고 싶을 때도 있다. 화가 나서 포악한 기분이 들 때면 흉폭하게 다 부셔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혼자서는 겪지 않을 다채로운 감정을 올라오게 하고 한편으로는 오롯이 감당해주기도 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 결혼을 통해 그런 이가 내 삶 속에 들어온다는 것은 한 인간에게 참으로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 결혼식은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그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엄청난 사건으로 다가온다. 그런 중하고 귀한 존재를 내 삶에 받아들이겠다는 각오로서의 결혼이라는 의식이 담고 있는 무거움 때문에 나는 번번이 그렇게 아득해지나 보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아직 아무것도 모른 채, 오직 긍정으로 상대를 받아들이는 무모한 어떤 용기 앞에서 나는 항상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그때 눈 안쪽에서 자꾸 차오르는 무엇 속에는 한두 가지 감정만 담겨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내가 결혼생활에서 만나고 느꼈던 수많은 감정의 격랑들이 솟구치는 그때 겉으로는 물론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손가락은 슬쩍 더듬거리며 손가방 속에 든 손수건을 바쁘게 찾는다. 가볍게 눈 밑을 정돈하는 척하면 될 일이다. 남의 결혼식에서 주인공보다 감동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건 실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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