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소설 - 엄마 없는 밤
모든 내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고 소설의 모양새를 한 에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에세이 소설이라는 명칭은 없기에 정식 명칭은 소설입니다. 지명과 인물의 이름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은주는 며칠에 걸쳐 순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녹음을 마쳤다. 순자의 모든 날은 슬펐고 오래된 이야기지만 때때로 목이 메어 힘겹게 말을 이어가기도 했다. 70년의 삶을 누군가에게 모조리 털어놓은 것은 처음이었다. 타인의 상처를 돌볼 줄 몰랐던 것처럼 자신의 상처도 돌볼 줄 몰랐던 순자였다. 나이 들어 많은 것을 잊었고 기억의 오류도 많았다. 잘해 준 것들과 자신의 상처 위주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정작 자신으로 인해 상처받은 은주의 장면들은 기억하지 못했고, 공감하지도 못했다. 그저 자신을 원망하는 말들이 서운할 뿐이다.
이야기를 마친 순자에게 은주가 말했다.
"엄마... 엄마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제 잘 알 것 같아요. 엄마가 우리를 사랑하니까 힘들어도 버텼을 테고, 아빠 돌아가시고 나서 그렇게 고생하면서도 끝까지 책임지려고 애썼겠죠. 나는 엄마 마음을 잘 몰랐네! 엄마가 진짜 나를 사랑하는지 의심할 때도 많았는데 엄마는 엄마의 방식으로 표현한 거라는 걸 이제는 알 것 같아요. 엄마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엄마! 자식 입장에서는 책임져 준다고 해서 사랑받았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사랑하는 마음은 '사랑한다' '귀하다'라고 말해 줬으면 좋겠어요.
민철이 한테도 너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느라 죽겠다고 말하지 말고... 너를 아끼고 사랑해서 엄마가 이렇게 힘든데 견딘다고 말해줬으면 좋겠어요.
자꾸 너희들 때문에 죽지도 못하고 도망가지도 못하고 이 고생하면서 산다고 말하니까! 우리는 엄마한테 짐이고 엄마를 힘들게 하는 존재가 되는 거니까. 살아 있는 게 미안하고 힘들고 아파요.
엄마! 사랑은 사랑이라고 표현해 줬으면 좋겠어요. 엄마~ 사랑해요!"
"그려... 엄마두 사랑헌다."
"엄마... 내가 우리 애들한테는 수없이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엄마한테는 사랑한다고 말한 게 이번이 두 번째인 거 알아요?"
"언제 혔었니?"
"예전에 대학교 1학년 때 내가 술 많이 마시고 엄마한테 전화해서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있네!"
"그려? 니가 술 마시구 전화 혔었니?"
"어! 엄마도 사랑한다고 말하던데? 나 그때 엄마한테서 사랑한다는 말 처음 들어 봤네!"
"그렸니? 미안허다... 엄마가 표현을 잘 뭇 하여서 그려"
"어... 그래서 나도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게 되게 어색해."
"그려... 엄마가 그런 걸 잘 뭇혀..."
은주는 미안하다고 말은 하지만 은주의 상처를 다 받아들이지 않는 순자가 야속했었다. 스스로를 안아 줄 수 있게 된 것과 아픔을 고백할 수 있게 된 것에 만족해야 했었다.
은주는 글을 쓰며 이야기 속의 순자를 관찰하며 장면 안으로 들어가 순자와 마주 섰다.
네 살에 삼촌 등에 업혀 안면도로 들어가던 순간.
열세 살에 친구에게 맞고 코피가 터져 집으로 가던 순간.
운동회 때 병어찜을 맛있게 먹고 소풍 가서 십 리 사탕 하나로 하루 종일 행복했던 순간.
고이도에서 혼자 젓갈을 담으며 눈물을 훔치던 순간.
영안실에서 넋을 잃고 영식의 손을 잡고 울던 순간.
많은 순간을 공감해 보려 애썼다.
은주는 그동안 순자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겼다.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놓지 않으니 모르는 것은 당연했지만 순자의 마음을 들여다보려 노력하지 않은 것이 미안했다.
은주는 순자가 될 수는 없었다. 유일하게 바라던 사람에게서 받아야 할 것들을 받지 못한 상처는 순자의 마음과 동화되는 것에 걸림돌이 되었다.
하지만 이해의 자리로 몇 발짝 더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힘들고 아팠을 어린 순자를 안아주고 싶었고, 지금의 은주보다 더 어린 나이에 남편을 잃은 순자를 어른의 눈으로 바라보니 애잔하기 그지없었다.
은주는 이제 화해와 이해의 사이 그 어디쯤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