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호 May 27. 2024

나의 다리에게

Day 55


안녕 다리야? 반갑다. 늘 나와 함께 하는 너인데 새삼스레 편지 비슷한걸 쓰려니 어색하구나.


아니! 사실 하나도 어색하지 않아.

나 너에게 불만이 있어. 너는 왜 요가 55일 차에 뜬금없이 또 탈탈 흔들리는 거야?

왜 한 번도 운동이란 걸 해본 적 없는 신체기관처럼 하찮고 볼품없이 흔들거리는거냐구.

더 많은 운동이 필요한 거야? 아니면 내가 많이 먹지 않아서야? 너희 두 다리를 위해 하루 세끼 꽉꽉 채워 먹고, 중간에 시간마다 고열량의 간식을 섭취하고, 머리를 쓰는 활동을 멈추고 멍 때리고 앉아 있는다면 너희 두 다리에 살이 붙을까? 붙기는 붙는 거니? 붙는다는 보장만 있다면 그렇게 해볼게. 일정한 시간마다 무언가를 챙겨야 하는 게 내겐 고역과도 같은 일이지만 튼튼하게 살이 붙어간다면야 그렇게 한 번 해볼게. 대신. 너는. 그 이후로 빠져선 안돼.


태어나서 마른 내 몸을 스스로가 싫어했던 적은 잘 없어. 있긴 있는데 잘 없어. 그런데 계란 한 판을 꽉 채우고 그 위로도 몇 알씩 조심스레 얹고 얹는 날이 되어가니까 마른 몸이 점점 스트레스로 다가와. 확실히 몸에 살이 적절히 있는 분들보다 허약하고 체력적으로 금방 후달리는게 느껴져. 그러기만 하면 다행이게? 체력이 달리고 잔병치레도 잦으니 늘 약간은 병약한 이미지이고 스스로도 몸이 힘들면 얕게 얕게 짜증이 올라오며 예민해지니 성격까지 나빠지는 기분이야. 사실 성격은 원래 썩 좋진 않지만 더 나빠서 좋을 건 없잖아?


아무튼 그리하야 이런 이유를 포함해서 시작한 게 요가인데, 다리 네가 이렇게 나오니 조금 힘이 빠진다. 하지만 나는 한계를 넘어서야겠지.


그런데 이런 생각은 들긴 해.

다리가 후들거리고 떨리는 것과 근력이 생겼다 없어졌다 하는 건 내 몸 컨디션 따라 다른 일이고 그 컨디션을 좌우하는 요소 중 ‘음주’가 한몫할 것이란 것 말야.


나는 술을 즐겨 먹는 편은 아니지만 맥주와 와인 정도는 좋아해서 매주 주말 밤이면 한 캔씩 청량하게 먹곤 해.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겨우 토요일, 일요일 합쳐 큰 캔맥주 두 캔 정도를 먹었을 뿐인데 그다음 날이 숙취 비슷하게 올라오며 며칠씩 피로감을 느끼곤 했지. 물론 맥주를 마시며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본다고 새벽 두 시에 잠들기도 했어. 남편과 함께 말야. 우린 오타쿠는 아니지만 세미 오타쿠 정도는 되는 것 같아. 아무튼 그렇게 신나게 애니를 보다가 늦게 잠들면 그다음 날은 둘 다 피로에 너무 절어있어. 내 남편은 짠기를 잔뜩 머금은 오이지 같고 나는 잔뜩 부어 눈도 못 뜨는 호박 같지. 호박도 예쁘다, 물텀벙이 더 비슷하겠네.


물텀벙과 오이지는 아침에 일어나 서로 얼굴을 보며 까르르 웃긴 하지만 그날 하루종일 피로에 지쳐 제대로 놀지를 못해. 그리고 어린 날들과는 다르게 그 여파는 주중의 활동에도 적잖이 영향을 미치곤 하지. 아주 간헐적으로 그랬던 것들이 최근엔 자주, 종종 일어나고 있어. 그래 맞아. 두 다리가 떨림에는 이러한 영향도 크다는 걸 이제 알겠어.


술을 먹으면 또 근육 형성에 방해가 된다며? 어디서 들은 건 있어가지고… 아무래도 이제 주말의 낙 중에 하나인 맥주 섭취는 건강과 근력을 위해 당분간은 하지 말아야 하겠어.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본다고 새벽까지 히히거리는 건 제아무리 삶의 행복이라 하더라도 건강을 해치는 일이니 자제해야겠지.


내가 잘못해 놓고 편지 초입에 너에게만 나무란 것 같아 미안하네.


금주야.

금주.


당분간은 금주야. 최소 6개월.


혼자 다이어리에 쓰면 왜인지 모르게 흐지부지 될 것 같으니 이렇게 요가 기록장에 남겨보겠어.


다음 주 이 시간에 다시 한번 보자.

내 몸이 어떨지.


아무튼 오늘 빈야사라 엄청 힘든 와중에도, 벌벌 떨어가며 끝까지 함께 해줘서 고맙고 내일 또 움직이러 가자!


우리.

좀 튼튼해져 보자!



화이팅!!





매거진의 이전글 학교에 가듯이 요가를 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