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조차 특별한 40박 41일간의 하와이 여행 중이지만 오늘은 더더욱 특별히 특별한 날이었다.
아이들 없는 오전 시간에는 그동안 너무 겁나서 도전해보지 못했던 (내 기준) 어려운 난이도의 스노클링을 했다.
카할루우 비치만 마흔 번 넘게 와서 바닷속만 들여다봐도 동네 길 속속들이 알 듯이 여기가 어딘지 알고 있는 밥언니가 카할루우 속 파라다이스로 안내해 줬다.
굳이 설명하자면 나는 물이 무섭지만 스노클링은 너무 좋아한다. 하지만 깊은 곳을 바라보며 숨 막히는 경이로움에 감탄하는 것을 좋아하지 불룩 나온 내 뱃살이 산호 사이에 뾰족한 성게 가시에 긁힐까 봐 무서운 건 너무도 싫다. 그래서 그 좋다는 투스텝도 바다로 뛰어들 땐 좋은데 성게밭을 피해 올라와야 하는 난코스 때문에 주저하게 되는 것이고, 이곳 카할루우 또한 수심이 낮은 곳에 포진해 있는 산호와 성게들 때문에 망설이는 것이다. 수영을 잘하고 물을 좀 더 좋아했더라면 산호와 성게를 피하는 것쯤이야 일도 아닐 텐데 나에게는 그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래서 배 타고 오가는 길 오장육부가 들썩이는 멀미를 하더라도 캡틴쿡 크루즈처럼 깊은 바다 가운데 던져주는 것이 더 좋다.
그럼에도 오늘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아이들이 없는 시간, 온전히 내가 남편을 의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에 나는 홀로 바다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내가 겁먹고 허우적거리기라도 하면 남편이 아이 둘을 바다에 버리고 나를 건지러 와야 하는 상황, 굉장히 이성적인 남편은 그것이 얼마나 무모한지 판단을 내릴 것이고, 너는 구명조끼 입었으니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이라는 결론 하에 나를 구하러 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을 전제하니 점점 스노클링 하는 횟수가 줄어들게 되었다는 아주 슬픈 사연.
어쨌든 오늘은 남편이 어떻게든 나를 살려줄 수 있는 상황이라 용기 내 스노클링을 했고 50분 가까이 바닷속 구경을 할 수 있었다.
무지개 물고기, 옐로탱, 각종 열대어뿐 아니라 오징어, 해삼,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성게도 오늘은 마음 편히 감상을 제대로 해주었다.
스노클링을 한바탕 하고 나는 먼저 뭍으로 올라왔고 남편은 내가 겁먹을 좀 더 난코스로 가서 스노클링을 한참 하고 나왔다. 그 사이 베이다의 엄마에게서 오늘 저녁 집에 놀러 오라는 초대 메시지가 왔다. 우리야 뭐, 당연히 오케이!
오늘 돌아가야 하는 밥언니와 오후 1시가 넘어서야 헤어졌다. 언니에게 특별한 선물을 받았는데 남다른 센스가 돋보이는 모자다. 어찌나 예쁜지, 쓰기 아까울 정도다.
언니와 내년에 또 하와이에서 만나자는 새로운 막연한 약속을 했다.
특별히 특별한 날 ep2. 부동산 오픈하우스 구경
남편과 나는(아이들 도시락과 같은) 햄버거를 먹기 위해 어느 비치에든 차를 세우고 먹고 돌아가기로 했다.
저기 오픈하우스네. 들어가 봐?
남편의 발견에 나도 모르게 그럴까? 대답을 해버렸고, 남편은 입력된 대로 출력. 그곳에 들어가 주차를 했다.
한국과 달리 하와이(아마도 미국이겠지) 부동산 매물 중 오픈하우스라는 것이 있는데, 오픈하우스 표시가 되어있는 집은 부동산 직원이 상주하는 날로, 누구든 들어가서 구경할 수 있는 매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바다에서 물기만 막 말린 상태라 안에 있는 직원에게 들어가도 되는지 물었는데 흔쾌히 문을 열어주었다. 누가 봐도 시커멓게 탄 여행객인 우리 부부를 맞이해 준 부동산 직원엑게 고마웠다. 이곳은 기존에 지어진 매물이 아니라 새 집들이 모여있는 주택단지다. 쉽게 말해 분양사무실의 모델하우스 같은 거였다. 콘도나 아파트가 아니라서 커뮤니티 시설은 없고 단지로 드나드는 보안 게이트와 보안 시설만 공유하는 것 같았다.
작년에 릴리언니가 시간 많으니 한 번쯤 구경해 보라던 그 일을 일 년 만에 해보았다.
매우 흥미롭고, 사고 싶었지만 역시나 비쌌다. 오늘부터 1주 1 로또 해야 하나.
특별히 특별한 날 ep3. 베이다네 집
베이다네 집에 초대를 받았다. 뮤지컬 캠프에서 베이다와 아이들을 데리고 바로 가기로 했다.
이미 베이다의 엄마가 지금 메인하우스는 공사 중이고, 지금은 미래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살고 있고, 트리하우스가 있고, 템플(개인 명상장소인 듯)이 있고, 아주 작은 공간에 아이들을 위해 학교라고 이름 붙여 놓았고, 커다란 연못이 있는데 거기에 데크작업중이고 몇 에이커(감 안 오는 단위라 놀라지도 않음) 땅에 과일나무들이 있고...
아주 어린 시절 빼고는 거의 아파트 숲인 신도시에만 살아본 나로서는 하나도 와닿지 않지만 막연히 되게 멋질 것 같은 그런 곳에 살고 있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던 베이다네 집.
공사 중이므로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와달라고 했기에 커스터드 파이와 집시젤라또를 사가기로 했다.
아이들은 공연을 앞두고 오늘 메이크업 시연을 했는지 주제에 걸맞게 으스스한 얼굴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희들 공연, 기대된다!
집시젤라또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고, 엄마 아빠를 위한 아이스크림도 사서 굽이굽이 내비게이션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감탄이 쏟아졌다.
내가 다녔던 가지런한 길들이 아닌 탐험을 가는 듯 한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갔다. 베이다가 뒷좌석에서 집에 가는 길을 알려주었는데 게이트로 막혀있었다.
뭐지?
응. 여기가 우리 집이야.
베이다 덕분에 게이트가 열렸고 또다시 오르막을 달렸다.
멀리서 곰만 한, 아니 늑대만 한, 아니, 어쨌든 집채만 한 검은 개가 마구 달려왔다. 베이다만 반가워했다. 우리는 사실 모두 쫄았다. (하지만 그 거대한 순둥이는 우리를 무장해제하도록 만들었다.나중에는 내 배에 턱을 대고 앉아서 옷에 침이 그득 묻을 정도로 친해졌다.)
아, 맞다. 지난번 만났을 때 이 거대한 집짓기 프로젝트에 대해 베이다 엄마와 이야기 나누면서 단위환산을 하고 1만 평이 넘어서 내가 놀랐었지... 그런데 난 1만 평이 계산이 된 적이 없어서 이런 건 줄 몰랐던 거다.
나는 온갖 형용사 감탄사를 뱉었다, 매우 짧은 영어 실력이 또 아쉬워지는 순간이었다.
아주 거대하고, 놀랍고, 멋지고... 아는 게 없으니 반복되는 휴즈 어메이징 그레이트 원더풀 뷰티풀 등등...
아이들은 이미 언덕을 내려가 전기오토바이와 자전거를 타며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었다.
지금은 게스트하우스 용도로 지은 집에서 임시로 살고 있다며 내년에 메인하우스가 다 지어지면 이곳에 묵으라고 말하는 베이다의 엄마에게 참 고마웠다.
아이들은 뮤지컬 캠프 끝나고 네이처 아트 캠프에 온 듯했다. 물감으로 그리고, 만들어 붙이고, 자연 보고 멍하니 감상하며 주어진 시간을 흠뻑 즐겼다.
우리는 다양하게 차려진 음식을 맛보며 기초회화 정도의 수준이지만 매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 시간을 가졌다.
저녁식사 후, 베이다 엄마가 우리에게 집을 구경하고 싶다면 보여주겠다고 해서 좋다고 했다.
차를 타야했다.
영화에서나 보던 캘리포니아 시골마을의 넓은 농장을 달리는 기분이었다.
우리가 그토록 원하던 라이치나무, 아보카도 나무, 여러 종류의 오렌지 나무 등 여기 있는 과일만 먹어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거대한 메인하우스까지 투어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 잔디밭 한 켠을 가리키며 우리더러 거기에 집을 지으라고 한다. 오 땡큐! 말 한마디 어쩜 그리 예쁘게 하는지. 이러다 진짜 집 지을라!
베이다의 엄마가 말했던 집짓기 프로젝트를 직접 눈으로 보니 체감이 되었다. 정말 대단한 여정을 용감하게 해나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한테 이만한 땅이 있다면 이토록 멋지게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을까? 진심으로 존경스러운 친구들일세.
완성될 미래의 이곳이 참 기대된다.
아이들은 당장 완성될 인생 첫 스모어를 기대하고 있지만...
이렇게 특별히 특별한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며 덧붙이자면, 우리에게 메인하우스가 완성될 때 꼭 오라고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