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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처돌이 Jun 15. 2021

-36kg을 빼며 얻고 잃은 것:생일 케이크는 조각으로

탄수화물 중독자의 다이어트 이야기


지난 주말은 내 생일이었다. 닉네임부터 범상치 않은 빵처돌이이자 탄수화물 중독자인 내게 생일은 너무 달콤한 유혹이다. 20대 초반에는 매번 생일 선물을 케이크로 달라는 이야기도 잘 했다. 강한 의지로 혼미해지는 정신을 다잡고, 다이어터로서 제법 노련해진 나는 오랜 친구들에게 '생일 케이크 대신 다른 선물'을 요구하는 뻔뻔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친구들은 곧장 '선물 줄 생각도 안 했는데 무슨 소리'냐고 응수했지만... ... 


생일 당일에는 친구들의 마음이 담긴 카페의 커피며 각종 제품 교환권이 수북하게 쌓였다. 코로나 시대 이전에도 생일 선물을 카카오톡 교환 쿠폰으로 보내는 일은 이미 일상화 되었지만, 코로나 이후부터는 정말 손에서 손으로 선물을 주고 받는 일이 뜸해졌다. 생일파티 후 양 손에 케이크 박스를 달랑달랑 들고 돌아가던 추억이 새삼스럽다. 생일이 초여름인지라 혹시나 크림이 녹을까 노심초사하던 기억만은 선명하다. 케익보다 비싼 선물도 받았지만 케이크만큼 아껴서 들고 가진 않았다. 어린아이 데려가듯 했다.


혹독한 다이어트기를 마치고 유지어터의 길을 걷고 있는 내게 가장 그리운 건 역시 홀케이크다. 자그만 조각 케이크나 디저트가 주는 기쁨도 크지만, 역시 보는 사람을 뿌듯하게 하는 홀케이크는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빵처돌이인 내게 다가오는 쾌감은 상상 그 이상이다. 다이어트 중에는 물론 지금도 홀케이크를 사지 않는다. 분명 한 조각으로 끝내지 못할 나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일부러 디저트를 사서 쟁여놓지 않고 딱 주말 아침에 먹을 만큼만 산다. 맛있는거 먹으려고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버는 건데 하는 서글픔도 들지만 나름대로 지갑경제에 보탬도 되고, 꾹 참았다 먹는 기쁨도 크므로 아직까지는 잘 유지하고 있는 버릇이다.


압구정에서 생일 전 만난 지인에게 조각 케이크 2개를 선물로 받았다. 나도 지인에게 케이크와 구움과자를 사서 들려보내긴 했지만, 어쨌든 내 돈으로 산 케이크가 아니라 간만에 받은 선물에 몹시 들떴다. 어련히 냉매제를 넣어주었겠지 싶으면서도 걱정이 되어 지하철역부터 집까지 뛰다시피 했다. 케이크는 멀쩡했고 다음날 커피와 함께 먹으려고 주말인데도 모닝콜 없이 눈이 9시에 번쩍 떠졌다. 케이크와 구움과자에 대한 내 집착은 육체의 피로를 능가한다. 양치하고 눈곱만 떼고 얼른 식탁에 앉았다. 



압구정 듀아미라는 가게의 케이크다. 때깔도 곱고 맛도 좋았다. 생각해보니 그간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사진을 첨부한 건 처음인데, 그게 케이크 사진이라니 진짜 웃기고 어이없다. 나름 다이어트 에세이를 표방하면서 참 뻔뻔하다 싶지만 나같은 탄수화물 중독자도 살을 뺄 수 있다는 신뢰감을 더한 기분이라 그냥 두기로 한다.


토요일은 딸기 케이크, 일요일은 몽블랑으로 나눠 나름 계획적(?)으로 먹었다. 나는 디저트를 수 없이 먹으면서 예쁘게 사진을 찍은 적이 거의 없다. 사진을 찍기도 전에 정신을 차려보면 이미 포크를 가져다 대기 때문이다. sns에 올라오는 예쁜 사진들을 동경하면서도 이 사진 한장이라도 건진 것에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이 곳의 케이크가 마음에 들어 금요일 저녁에 사서 돌아가려고 한다. 이번엔 여러 개를 사서 엄마와 나눠 먹을 생각이다. 이렇게 맛있는 조각 케이크가 지천이라도 여전히 홀케이크가 주는 충만함은 아쉽기만 하다. 초를 꽂아 후후 부는 행사도 조각 케이크로 하면 어쩐지 허접하고 초라하다. 가격으로 따지면 조각 케이크의 가격이 홀케이크를 훌쩍 넘을 때도 있건만, 여전히 홀케이크가 주는 풍요로움은 대단하다. 


다이어트가 끝나고 나만큼 기뻐했던 사람은 역시 엄마였다. 한국의 엄마들은 자식이 살을 뺐으면 하고 바라면서도 깨작깨작 먹고 있으면 속이 상하기 마련이다. 


'이제 예전처럼 밥 먹을 수 있는거지?'


목표 체중을 달성했다는 내게 엄마가 가장 먼저 했던 말이다.


'아니. 그래도 조심해야지.'

'언제까지?'

'평생?'


엄마는 계속 그렇게 먹어야 하냐며 대경실색 했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라며 엄마를 달랬고, 실제로 식사량도 많이 늘렸다. 아직도 엄마는 내게 밥을 이만큼씩 퍼준다. 다이어트 전 내가 먹었던 양만큼 말이다. 절대 다 못 먹고 덜어낼걸 알면서도 꼭 그렇게 하신다. 내가 밥공기를 보고 너무 많다며 새 숟가락으로 슥 덜어내는건 매일 있는 일이다. 엄마의 표현을 빌자면 병아리 모이, 금붕어 눈물, 새끼쥐만큼 먹는다는 인신공격(?)에도 꿋꿋하게 던다. 대신 반찬을 많이 먹는 편이다. 나는 다이어트 이후로 매운걸 엄청나게 못 먹는 위장이 되어서 좋아하는 반찬도 많이 바뀌었다. 지진 두부나 백김치, 계란찜이나 시큼하게 절인 무 장아찌가 너무 좋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다이어트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푸짐하게 봉긋 솟아오른 밥 한공기를 먹은게 2~3년 전의 일이다. 이제 적응이 되어 힘들진 않지만 TV에서 둥글넙적한 밥공기를 세네그릇씩 비우는 먹성 좋은 장면은 이제 내게 판타지 영화에 가까운 일이 되었다. 먹으라고 해도 못 먹겠는 엄청난 탄수화물! 하지만 저걸 홀케이크로 바꾸면 어떨까? 먹을 수 있을까? 


내심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지독하게 살을 빼고 자기관리를 습관으로 바꿔도 빵과 케이크에 대한 내 욕망은 호시탐탐 내가 방심하는 틈을 노리고 있다. 정신 차려보면 인터넷 쇼핑 카트에 디저트만 5~6만원씩 담는 일도 부지기수다. 장바구니를 속시원하게 비우고 닭가슴살과 오트밀, 과일과 무지방 우유를 담는다. 이삼천원만 더 담으면 무료 배송이라... 이때에는 죄책감 없이 마들렌 하나를 추가한다. 건강한 식재료를 산 내게 주는 알량한 보상인 셈이다. 구움과자의 사악한 가격과 손바닥만한 달콤함은 딱 그 값을 한다. 아침 10분이 즐겁고 행복하다. 괜히 걸음도 성큼성큼 크게 걷는다. 


과거 비만인이었던 성인은 지방세포가 그대로 남아 쉽게 살이 찐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 있다. 그게 진짜라면 나는 앞으로도 평생 조심해야 할 운명이다. 다이어트가 아니라 삶 자체를 바꾸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이만하면 내가 행복할 수 있으리란 선에서 다이어트를 멈췄고, 아직까지 잘 이끌어가고 있으니 두고볼 일이다. 


다이어트를 마친 유지어터들의 삶은 대체와 타협의 시간이다. 이제 홀케이크가 아니라 조각 케이크라도 행복하고 즐겁다는 사실을 받아들어야 하고, 어쩌면 평생 홀 케이크를 먹지 못할수도 있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내가 공들여 쌓은 탑이 무너지기 쉽다는 것을 알고나면 유지어터가 그리 어렵지만도 않다. 무절제하게 먹고 운동하지 않던 과거의 삶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다. 이미 강을 건너버린 유지어터들의 몸은 과거로 회귀하는 순간 급격히 불어난다. 당연히 경험담이다. 


그래서 적당한 행복의 기준을 찾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다이어트 중에 인간 이하의 식사... ... 그러니까 닭가슴살과 방울토마토 몇 개 만으로  아침저녁점심을 때우던 분들이 평생 그 식단을 유지할 수는 없다. 열심히 살을 뺐다면 이제 유지할만한 원동력과 규칙을 만들 차례다. 혹독한 식단과 말도 안되는 운동 스케쥴을 고스란히 가져올 순 없는 노릇이니 이정도라면 내가 평생 할 수 있겠다 싶은 느슨함을 자신에게도 베풀어야만 한다. 하지만 다이어트 기간이 혹독할수록 기준 역시 다소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점차 지쳐가는 몸과 정신력은 사람이 얼마나 본능의 동물인지 느끼게 해 준다. 그러니까 다이어트 중에도 개인의 행복과 존엄을 놓지 말아야 한다. 결국 그 기준을 정하는 일은 다이어터 본인의 몫이다. 나는 아주 많이 행복하진 않지만 이만하면 먹고 살만 하고 가끔 기쁘다. 다이어트를 결심하신, 혹은 하고 계시는, 마치신 분들 모두 행복하게, 맛있게, 가끔은 숨통도 좀 틔우면서 건강한 삶을 되찾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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