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빵처돌이 Jun 03. 2021

-36kg을 빼며 얻고 잃은 것: 자존감 (1)

탄수화물 중독자의 다이어트 이야기


쓸까 말까 상당히 고민했던 이야기다. 왜냐하면 다이어트를 결심하기까지 느꼈던 세상의 편견과 그로인해 비롯된 내 아울감을 공개된 공간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 썩 밝고 아름다운 내용은 아닌데다, 무엇보다 내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기에 거부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이어트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계기는 대부분 타인의 시선과 날서고 모진 말들에 의해서다. 때로는 아직도 아프고 쓰리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하며 훌훌 털어버리고 싶다.


나는 철이 들때부터 늘 뚱뚱했던 사람이다. 소아비만을 거쳐 중고등학교, 대학생, 사회인이 되기까지 줄곧 그랬다. 36kg를 뺐지만 나는 마네킹같은 몸매가 아니라 적당히 출퇴근길에 섞이고 무난히 튀지 않는 평범과 통통 중간이다. 옷으로 따지면 좀 끼는 55, 살짝 여유로운 66 정도일까? 참으로 애매한 몸이지만 그럭저럭 만족한다.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살을 빼며 주변 사람들에게 참 많은 말을 들었다. 친구나 가족의 따뜻한 격려도 있었지만 이제와서 왜 살을 빼냐, 시집갈 때가 되니까 너도 급해졌구나, 20살때나 그렇게 좀 열심히 해보지 같은 비아냥도 꽤 들었다. 술자리에 나갔다가 친하다고 생각했던 남사친들의 뒷담화를 엿들은 날은 충격에 어정쩡하게 자리를 지키다가 황급히 귀가했다. 대강 순화하자면 "그 통통한 아이도 뜨거운 연애 한번 해보고 싶나 보구나" 정도다. 신뢰하던 사람들의 차가운 배신은 낯설고 서러웠다.


한국에서 여성의 외모와 몸매는 때로 갖추고 있는 능력 그 이상의 어필이 된다. 무한경쟁과 외모지상주의가 대놓고 만연한 나라에서 뚱뚱한 여자로 살기란 꽤 서럽다. 네가 관리를 안해서 살이 쪄놓고 무슨 소리냐? 같은 말도 인터넷에서 심심찮게 발견한다. 내 몸을 책임지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는 점에선 냉정하지만 옳은 말이다. 하지만 몸매에 들일 수 있는 시간과 식사에 사용 가능한 금전적 여유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일률적으로 이러한 비판을 적용하는건 너무 차갑다. 게다가 타인의 몸에 이러쿵 저러쿵 말을 얹는 것 자체가 무례한 행동인데,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이해받지 못하는 미덕같다. 끈끈한 정으로 포장되는 무례함이 만연한 나라다.


이정도까지 했으니까 44사이즈 한 번 입어보게 좀 더 빼라, 기왕 하는거 프로필 사진이라도 찍어라,  튼살 제거 수술을 해라, 처진 가슴 어쩌고 저쩌고... ... 온갖 오지랖과 관심이 난무했다. 코로나 시대이기에 만남이 잦지 않아 다행이었다.


말했다시피 내 다이어트 목표는 어디까지나 튀지 않고 이 사회에 섞여드는 몸이었다. 지하철의 자리에 앉을때 눈치 보고 싶지 않았고 길거리에서 저렴한 옷을 골라서 사고 싶었다. 내 몸으로 인한 비난을 더는 받기 싫었다. 그래서 콜라병이나 연예인 몸매는 애초부터 내 목표에 없었다. 그런걸 막연하게 상상하기엔 내 현실과 이상이 지나치게 동떨어져 있다고 느꼈다. 평범한 사람은 목표를 잡을때 현실성 없는 꿈을 세우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나는 성공하겠다, 라는 꿈을 가질때 나는 세계 최고의 재벌이 되겠다는 목표를 설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은가. (나만 이러나?) 나 역시 그랬다. 그런 이상적인 몸을 상상조차 못 할 정도로 나는 지쳐있었다.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지고 우울함이 심각해진것도 아마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가족이나 엄마에게 이런 내색을 하긴 힘들었다. 딸이 잘났으면 딸 덕분,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뭐든지 내탓이오 하는 엄마한테 우울해서 눈물이 나고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는건 큰 용기가 필요했다.


다이어트는 내게 도피처였고 내 정신적 고통을 다른 곳으로 돌릴만한 샌드백이었다. 힘들어도 이건 다이어트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괜찮았다. 당연한거다. 이상하게도 "다이어트는 힘든거니까 내가 이렇게 슬퍼해도 된다" 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운동을 시작하고 삶이 단순해졌다.


우울뿐이던 내 인생에 식단과 근육통이 끼어들었다. 웃기게도 그것들이 자존감을 회복시키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조금씩 줄어가는 체지방과 건강한 식단을 위해 요리하는 시간이 나를 위로했다. 온전히 나를 위해 식재료를 사고 나를 먹이기 위해 들이는 수고는 참으로 오래간만이었다. 때로는 고통에서 얻는 행복도 있는 법이라는 말을 그제서야 이해했다.


이전 13화 -36kg을 빼며 얻고 잃은 것: 탈모와 엄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