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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처돌이 May 28. 2021

-36kg을 빼며 얻고 잃은 것: 탈모와 엄마

탄수화물 중독자의 다이어트 이야기





다이어트를 시작하면 필연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크고작은 도움과 호의를 받는다.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살았기에 식사나 생활 패턴에서 상당 부분 에너지를 아낄 수 있었다. 식사는 정말 중요하다. 마트에서 1인가구가 먹기 힘든 양배추 한통이나 각종 채소들을 별 고민 없이 살 수 있었다.


샐러드 뿐만 아니라 일반식을 챙겨먹을때 건강한 반찬을 해주시거나 현미밥으로 주식을 바꾸는 등 엄마의 도움이 아주 컸다. 다이어트는 육체와 마음 에너지를 무진장 소비하기 때문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다소 민망해도 적극적으로 기대는 편이 좋다. 슬픈 이야기지만, 딸내미가 살을 뺀다고 했을때 싫어하는 부모님은 아마 없을 것이다.


내 엄마는 자식들에게 느슨하고 심한 말 못하는 사람이다. 항상 자식이 뭘 하는지 궁금해하고 기웃대신다. 온화하고 마음이 넓어서 나처럼 예민하고 옹졸한 성격을 어디서 물려받았나 고민할때도 있다. 어쨌든 엄마는 내 다이어트 기간 내내 최선을 다해 나를 지원하셨다. 다이어트의 성공에는 알게모르게 엄마의 도움이 컸다.


하지만 넘치는 내리 사랑이 종종 나를 곤란하게 할 때도 있었다. 샐러드에 과한 소스를 추가하거나 살을 빼는걸 응원하면서도 자꾸만 뭘 먹이려 들었다. 나도 안다. 엄마의 마음은 복잡하다. 딸이 뚱뚱한 것이 싫으면서도 막상 그 좋아하던 음식을 모두 끊고 죽상으로 샐러드와 닭가슴살 따위를 먹고 있으니 가슴이 아픈 모양이었다. 몸을 보양해야 한답시고 백숙을 해서 닭가슴살이니 괜찮다는 지론으로 한그릇 이만큼 퍼준 기억이 난다.


그걸 먹었던가? 기억에 없으니 아마 안 먹었겠지 싶다. 지금 생각하면 바보다. 절절끓는 여름에 딸을 생각해서 끓인 삼계탕 조금 먹는다고 해서 내 다이어트가 망가질 일은 없었을 텐데. 그때는 너무 절박하고 힘들었다. 입에 들어가는 모든게 살이고 지방처럼 느껴졌다.


어쨌든 체중이 -20kg를 찍고 슬슬 보람이 느껴질 무렵 심각한 다이어트 탈모와 현기증이 왔다. 다이어트 내내 비오틴과 맥주 효모, 비타민과 마그네슘 등등을 챙겨먹었는데도 매일 머리를 감을때마다 무섭도록 머리가 빠졌다. 정수리가 훤하게 보일 정도였다.


원래도 머리숱이 좀 부실한 나에게 있어서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곁에서 지켜보던 엄마도 덩달아 걱정이 태산이었다. 다이어트 탈모는 개개인 차이가 크다. 운이 좋은 분들은 아무리 절식해도 오지 않지만, 내 경우는 달랐다. 가장 좋은 예방 방법은 다이어트 시작과 동시에 검은콩과 비오틴 등 머리카락에 좋은 음식을 함께 섭취하는 거다.


줄였던 탄수화물을 늘리고 아침에 빵이나 디저트를 먹기 시작하면서 탈모는 차츰 나아지기 시작했다. 스트레스도 탈모의 큰 요인이라는데, 내 경우 무지방 우유를 탄 커피와 작게 자른 빵을 먹기 시작하며 다이어트 스트레스가 훨씬 나아졌으니 어찌보면 빵과 마들렌, 와플과 구움과자들이 내 머리를 살린 셈이다. 빵처돌이다운 해결방식이었다.


너무 나 좋을대로의 생각인가 싶지만 그래도 일부분은 맞다. 탈모의 공포는 너무나 극심해서, 나는 아직도 방송에서 식사량이 적은 여성 아이돌들을 보면 다이어트 탈모부터 걱정하곤 한다. 지금은 꽤 머리가 났다. 정수리 부분에 갓 자라기 시작한 머리카락들이 꼭 신생아마냥 불쑥 튀어나온다. 너그러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나보다 내 탈모를 더 걱정한 사람도 엄마였다. 다이어트 하다가 사람 잡겠다는 말을 여러번 했다. 다이어트를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헷갈렸다. 엄마는 나를 걱정해 검은콩을 많이 넣은 밥을 짓거나 어디서 좋다고 들었다며 별 이상한 것을 먹이려 했다. 입맛 예민한 내가 그걸 받아먹을리가 없다. 그래도 좀 위안이 되었다. 내 몸에 일어나는 일을 자기 일처럼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다는게 기뻤다.


튼살과 운동으로부터 오는 근육통, 끼니의 허접함, 다이어트라는 단어에서 치밀어오르는 짜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무리 무던한 사람이라도 음식의 낙이 없으면 예민해진다. 다이어트를 하던 나는 그야말로 시한폭탄 같았다. 이 짜증을 누가 다 받아주고 이해하겠는가? 결국은 가족과 친구, 가까운 사람들 뿐이다. 힘들면 마음껏 기대자. 가끔은 욕도 하고 근육통에 시달리는 어깨도 주물러 달라고 하자.


다이어트 기간동안 나 자신에 집중하느라 주변사람들이 나를 배려하고 있다는 걸 인지하기 쉽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고마움을 잊지말고 꼭 인사하는거다. 건강한 몸을 뽐내며 함께 기뻐하고 맛있는 것도 먹자. 그러려고 다이어트 한게 아닌가? 좋아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맛있는 걸 먹으며 걱정없이 웃고 싶어서... 금요일 점심이다. 퇴근 후에는 맛있는걸 사들고 집에서 엄마와 영화를 볼거다. 그래도 다이어트 글을 쓰고 있으니 좀 찔린다. 샐러드도 하나 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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