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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처돌이 May 30. 2021

-36kg을 빼며 얻고 잃은 것: 계획의 붕괴

탄수화물 중독자의 다이어트 이야기



 

나는 어떤 일을 시작할때 계획부터 세우는 사람이다. 여행 계획을 세우는 건 취미에 가깝다. 다른 사람의 여행 계획을 세워주는 것도 좋아한다. 그렇다고 해서 철두철미하게 계획을 지키진 않고, 잘 짜인 계획표를 보며 쾌감을 느끼는 타입이다. 한마디로 헛완벽주의자다.


그런 내가 다이어트를 시작하며 계획표를 세우게 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예쁜 노트 한권을 준비해 식단, 운동량, 체중, 그 날 느낀 점, 반성 내용... ... 드물게 의욕에 차 있었던 나는 2주 정도 즐겁게 다이어트 노트를 썼다. 기분이 좋으면 예쁜 스티커를 붙이기도 했다.


즐거움은 오래 가지 않았다. 식단은 늘 비슷하게 허접했고 운동은 미친듯이 힘들었다. 무엇보다 체중의 변화가 더뎠다. 다이어트 초기에는 하루에 2kg씩 빠진다는 소리를 믿진 않았지만 2주간 변화가 고작 300g이었다. 고작! 이 고생을 2주간 했는데 300g이라니. 들인 노력에 비해 허무하리만치 싱거웠다. 다이어트는 장기전이라는 말을 수 없이 읽었는데도 흔들리는 내 연약한 마음. 1달에 4kg을 빼겠다는 첫 달 계획은 완전히 망가졌다. 헛완벽주의자에 계획대로 움직이면 절대로 살이 빠질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내게는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계속 다이어트를 이어나갔다. 주변 사람들한테 다이어트 한다고 큰소리를 땅땅 쳐놓은 것도 있었고, 끊어놓은 운동짐 회원권과 아직 팔팔한 운동화와 운동복, 잔뜩 쟁겨둔 냉동 닭가슴살들이 내 양심을 아프게 했다. 나를 열렬히 응원한 가족들의 호의도 무시하기 힘들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다이어트는 성공했으니 당시의 고통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사람이란게 원래 그렇다. 아무리 힘들었어도 결과가 좋으면 그때의 고통과 절망, 짜증은 죄다 잊혀지나 보다. 나는 웃기게도 다이어트 기간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루하루 똑같은 일과와 식단으로 보냈으니 그럴만도 하지만 어쩌면 뇌에서 너무 어둡고 우울한 기억을 지워버렸을 수도 있다. 인생의 1년을 애매하고 손에 잡히지 않는 뭔가로 날려보낸 기분은 상쾌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기억하는거라곤 우릿한 근육통과 당시 다이어트와 병행하던 토익공부 정도다.


다이어트 기간중에 배운 교훈 중 하나는 내 마음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단거였다. 멋지고 아름다운 탬플릿에 작성한 계획표는 무용지물이 되었고, 한달에 얼마를 빼겠다는 다짐은 무력해진다. 세상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게 없다지만 내 몸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걸 새삼 실감했다. 운동을 하면서도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내 뻣뻣한 몸과 체력에 실망했고,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과 내 처지는 기록을 보며 절망했다. 기대처럼 빠지지 않는 체중에 눈물을 흘렸다. 완벽한 계획은 붕괴했고 나는 새로운 기쁨을 찾아야 했다. 계획이 마음대로 실행되지 않는다는 좌절감은 다이어트의 중단으로 이어지기 쉽다. 노력 대비 보상받지 못하는 기분은 내 조촐한 월급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만 했다.


결국 내가 선택한 방법은 "목표의 변경" 이었다. 일 단위로 짜놓은 스케쥴과 식단을 수정했다. 하루에 이것만 먹기가 아니라 지나치게 기름진 음식, 튀긴 음식, 맵고 짠 음식 피하기로 바꿨다. 하지 말자! 가 아니라 이것만 빼고 하자! 로 발상의 전환을 했달까, 솔직히 눈가리고 아웅 같은 방식이었지만 이렇게만 해도 식단에 대한 강박이 훨씬 줄어들었다. 융통성 있는 음식 섭취는 사람을 여유롭게 한다.


체중의 목표도 바꿨다. 몇 키로를 뺀다 대신 66사이즈 원피스를 입는다로 변경했다. 인터넷 쇼핑에서 아주 예쁘고 좋아하는 디자인의, 하지만 입을 수 없었던 마음에 쏙 드는 옷을 한 벌 샀다. 처음 입은 날에는 팔뚝부터 끼어서 들어가지도 않았다. 2주나 1달씩 텀을 두며 입어보았다. 다이어트가 끝날 무렵, 여유롭게 맞는 원피스를 입으며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인바디 체크도 적극 활용했다. 내가 다니던 운동짐에는 인바디 측정 기계가 있었다. 마음대로 측정 가능했기에 2주에 한번씩 측정 후 상담을 진행했다. 체중 대신 근육량과 체지방량에 집중했다. 나의 첫 인바디 당시 체지방량은 너무 높아서 트레이너분도 이런 수치는 처음 본다며 놀라셨었다. 지금은 아슬아슬하게 정상 범위를 유지하고 있다.


다이어터를 가장 힘들게 하는건 다름 아닌 정체기다. 누구나 한번쯤 온다는 정체기는 사람에 따라 기간이 다르지만 나는 약 한달 정도였고, 앞자리수가 바뀔때마다 찾아왔다. 정체기는 말 그대로 다이어트 중 체중이 빠지지 않는 기간을 의미하며, 이 기간동안 다이어터들은 그야말로 극심한 자기비판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내가 뭘 잘못했지? 내가 뭘 먹었지? 운동을 더 해야하나? 사실 계획에서 바꿀건 없었다. 여기서 덜 먹거나 더 운동을 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정체기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었고 나같은 사람이 아무리 용을 써도 결국 육체의 흐름에 굴복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다이어트를 '잘 했기 때문에' 정체기가 오는 것임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정체기도 오지 않는다. 정체기는 내 다이어트의 성공을 알리는 단계다. 목표의 상실과 붕괴는 또 다른 목표 세우기로 바꾸면 그만이다. 혹시 다이어트 정체기를 겪고 계신 분이 있다면 꼭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다. 살을 뺐기에 정체기도 오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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