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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처돌이 Jun 22. 2021

-36kg을 빼며 얻고 잃은 것: 끝이 아닌 끝

탄수화물 중독자의 다이어트 이야기


처음 브런치를 하기로 마음 먹은 이유는 아이러니 하게도 '귀찮음' 때문이다. 30kg를 넘게 뺀 사람이 눈 앞에 있으니 다들 얼마나 신기했을지 이해는 간다. 다들 각종 비법과 살을 최대한 빠르게 빼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아우성 쳤다. 모두 특별한 비밀이나 운동 방식으로 살을 뺐다고 철썩같이 믿었다. 하지만 매번 똑같은 질문에 대답하자니 참으로 고역이었다. 게다가 코로나 시대라 메신저로 대답하기 위해서는 전부 타이핑을 해야하니 그것도 은근히 스트레스였다. 블로그나 어딘가에 정리해두고 지인들에게 주소만 보내줄까? 하는 꿍꿍잇속으로 시작하게 된게 브런치다. 브런치는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이 한다는 편견이 있지만 나처럼 게으르고 사악한 마음을 품고 쓰는 사람도 있다.


처음 이 이야기를 쓸때만 해도 간단한 정보와 자주 해먹었던 요리나 좀 올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쓰다보니 말이 길어졌고, 이윽고 내가 친한 친구들에게도 숨겨왔던 우울증 증세나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까지 죄다 올렸다. 적당한 익명성과 예의가 보장되는 플랫폼의 마성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결국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쓴 다이어트 에세이건만 아마도 이 브런치를 자의로 알려줄 날은 오지 않을듯 하다.


내 다이어트는 끝났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도시락을 싸서 다니고, 간식의 칼로리를 주의깊게 살핀다. 단 음료는 먹지 않고 거하게 먹은 날은 되도록 다른 끼니를 덜어내 균형을 잡으려 한다. 이것도 다이어트라면 다이어트지만, 이미 내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은 습관에 가깝다. 지난 수십년간 무너진 식습관을 다잡고 살아갈 날들을 다독일 새로운 기반을 닦고 있다. 나는 다시는 살이 찌고 싶지 않다. 살을 뺀 삶이 너무 편하고 조용해서 이전의 불편함과 무례를 다시 견뎌낼 자신이 없다. 무절제하게 먹고 운동하지 않은 과거의 내가 너무 순진해서 때로 떠올리면 웃기기까지 하다. 건강에 크게 탈이 나지 않은 이유는 오로지 나이가 어려서였을 것이다.


의료가 발달하며 인간 수명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죽음에 초연해질수 없는게 사람이니 내가 늙을즈음에는 백이십살까지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진 이 몸을 내가 살아온 시간보다 배는 더 끌어안고 가야한다는 뜻이다. 핸드폰도 새로 사면 액정 필름이니 케이스니 철마다 갈아주면서 왜 나의 몸은 외면했는지 모를 일이다. 얼마전 나는 꽤 오랫동안 이유를 알 수 없는 소화불량과 타는듯한 가슴고통에 앓았는데,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건강이 최고라는 말이 현실로 와닿는 순간이었다. 체력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내가 누리는 일상이 건강하지 않으면 전부 사라진다는 것... 이전에는 몰랐던 감각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살을 빼고나서 나는 조금 더 자주 아프다. 만만치 않은 무게를 뺀다는 것은 몸에도 꽤 부담이 가는 일인가보다.


브런치를 쓰면서 나 자신도 다이어트와 유지어트를 한번 되돌아 보았다. 예전에 썼던 식단 일기도 훑었다. 거기에는 내가 요만큼 먹은 간식에 대한 죄책감과 더불어 75kg만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소원이 쓰여있었다. 끝나지 않을것 같던 다이어트가 끝나고 나는 지금 그보다 훨씬 낮은 체중을 갖고 있다. 다이어트는 이미 경로가 알려진 험한 길이다. 더 무서운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거다.


그리고 다이어트의 끝에 다다른 나는 이제 다시 유지와 건강 관리라는 새로운 길을 걸어야 한다. 나는 다이어트를 하며 삶은 끝이 없고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달았다.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깨우치기 어려웠다. 동시에 무서운 진실이다. 내가 하지 않으면 내 몸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점점 더 나빠질수는 있어도 절대 좋아지진 않는다는 냉엄함. 멋진 몸매와 예쁜 옷을 입겠다는 목표는 훌륭하다. 하지만 앞으로 오랜 시간 나의 정신을 담을 그릇인 몸을 갈고닦는다고 생각하면 완벽주의와 조급함을 버릴 수 있다. 날씨가 본격적으로 더워지는 시기다. 모두 건강한 몸과 정신으로 무더위와 일상을 이겨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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