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수화물 중독자의 다이어트 이야기
모두가 그렇진 않겠지만, 과거 고도 비만인이었던 나는 자신의 몸을 혐오했다. 겉으로 티를 내진 않았다. 어쩐지 티를 내면 지는거라고 생각했다. 비만을 창피하게 여겼던 사춘기와 무던한 대학생 시절을 지나고 나서야 나는 살을 뺐다. 돌이켜보면 옷을 고르고 사는 쇼핑의 즐거움을 거의 느낀 적 없다. 오프라인에서 맞는 옷이 있으면 감지덕지였고 길거리 매대에서 싸게 파는 티셔츠는 꿈도 꾼 적 없다. 여성 의류 프리사이즈는 44~55 가 대부분이다. 77부터는 아예 추가 가격을 붙이기 시작한다. 솔직히 좀 치사하다고 생각한적이 많다.
빅사이즈 전문 옷 판매 사이트에서도 모델들은 죄다 마르고 예뻤다. (최근에는 추세가 바뀌어 빅사이즈 모델들이 활약하는 사이트가 많이 늘었다.) 게다가 옷이 예쁘지 않다. 착용샷과 달리 도착한 옷은 추레하기까지 했다. 한국에서 비만 여성으로 산다는 건 가뜩이나 비싼 옷을 살때조차 플러스를 지불해야 한다.
사회인이 되고 이럭저럭 보낼 무렵 갑작스레 가벼운 우울증 증세가 찾아왔다. 사람과 대화하는걸 좋아하고 유머러스하던 내가 점차 소심해졌다. 아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데도 갑자기 울컥하며 눈물이 흘러나오는걸 참느라 힘들었다. 잠시 생각에 빠지면 눈시울이 붉어지고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눈물을 흘리는 때는 대중 없었다. 집이나 가족, 엄마를 생각하며 하염없이 울다 사무실로 돌아간 적도 있다.
내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슬픈 일도 없었고 누가 나에게 함부로 대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모든게 암울했고 내 인생이 이대로 끝나버릴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는 내게 좋은 일이 찾아오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뭔갈 시작해야겠다는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그게 운동이었다. 내 다이어트의 시작은 아주 거대한 우울로부터 비롯되었다. 다이어트에 성공한 아직까지도 내게 남은 우울과 슬픔은 쉽게 떠나지 않고 있다.
그래도 조금은 견딜 힘이 생겼다. 예전보다는 자기 자신을 아끼게 되었다. 모르던 기쁨을 알게 되었다. 아무 옷이나 맞는거라면 걸치던 나는 없다. 내일 아침 입을 옷을 고르며 낯선 즐거움을 느낀다. 터진 스타킹이나 허벅지 사이가 닳은 바지를 버리는 일도 없다. 예전에 입던 원피스들은 푸대자루 같아서 도저히 입을 엄두가 안 나서 전부 버렸다. 개중 아끼던 원피스 한벌은 추억삼아 놔두었다. 내가 이 옷을 입었구나 하고 떠올려본다.
사실 살을 빼고 나서도 나는 썩 기쁘지 않다. 누구나 놀랄만한 체중을 감량했음에도 인생이 바뀌었다느니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 고도 비만인으로 살았을때 들었던 가시박힌 말들이 살을 뺐는데도 그대로 남아있다. 무신경한 사람들은 내 과거 모습을 떠올리며 혀를 찬다.
'쯧쯧. 진작 좀 이렇게 빼지. 뭐하느라고 좋은 시절 다 보냈어?'
넘기려해도 가끔은 화가 치민다. 과거의 내 모습을 싫어하게 만드는 발언들이 쏟아졌다. 더 슬픈 것은 누구보다 나를 아끼는 엄마마저 가끔 '어린 시절 다이어트를 했으면 훨씬 더 좋았을텐데' 같은 말을 하는 것이다. 나도 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 무심한 말이 들린다.
그걸 넘기는 건 전적으로 내 정신력과 사회인이 되며 습득한 비즈니스 미소다. 다이어트를 하면 흔히 몸만 힘들다고 하지만, 정신적으로도 코너에 몰리는 경우가 많다. 살이 쪘다고 해서 내 몸을 너무 싫어하지 않았으면 한다. 운동과 식이를 거치며 줄어든 내 몸은 단순히 지방이 빠졌을 뿐, 어떤 가치의 변화도 없다. 다만 외모가 주는 가치가 아직도 이 사회에 남아있음을 인정하며 다른 분들은 너무 상처받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오늘 밤은 다이어트를 시작하시거나 마음 먹은 분들께 꼭 이 말씀을 드리고 싶다.
'내일 하루도 잘 먹고 잘 움직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