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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처돌이 Jun 04. 2021

-36kg을 빼며 얻고 잃은 것: 자존감(2)

탄수화물 처돌이의 다이어트 이야기


다이어트를 진행하며 가장 기쁜 일은 앞자리 수가 바뀌는 거다. 어차피 빠지는거야 같다지만 체중의 앞자리가 바뀐다는건 정말 기분이 좋다. 내 경험상 앞자리 수가 두번정도 바뀌면 친구들조차 종종 알아보지 못할 때도 있다.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격려와 응원, 실질적 도움속에 다이어트를 진행하며 한결 나아진 우울감은 어느날 친구 모임에 나갔다가 또 다시 깊어졌다.


"그럼 이제 연애하고 남자친구도 사귈 수 있겠네~"


아마 별 생각없이 한 말일테고, 실제로 나도 심각하게 듣지 않았다. 하지만 집에 오면서 계속 생각이 났다. 참 이상한 기분이었다. 내 고통과 슬픔의 결실인 다이어트가 오로지 이성과의 연애를 위해서처럼 여겨지는건 기쁘지 않았다. 사람들 틈에서 멋진 몸매로 튀고 싶어서 다이어트를 한게 아니다. 오히려 나는 안전하게 숨어들고 싶었기에 다이어트를 시작한거다. 어떤 다이어트는 의도와 목적이 어둡고 우울하기도 하다.


내가 참으로 어중간한 체중에서 다이어트를 멈추고 유지하자 주변 사람들이 더 아쉬워 했다. 5kg만 더 빼면 정말 예쁠텐데 같은 아쉬움 섞인 조언과 기왕 이렇게 된거 44 사이즈까지 달려보자는 친구까지. 하지만 한국의 44 사이즈가 애완견 옷 수준으로 작은 것까지 있는걸 알고 있는 나는 단호히 거부했다. 그런 옷을 입고 싶어서 살을 뺀게 아니다. 옷가게에서 기분이 상하는 일을 겪고 싶지 않아서, 더 이상 살 때문에 겪었던 여러 수모와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아서였다.


유지어트를 한지 9개월이 좀 넘었다. 생리 기간이나 주말에 가끔 먹는 거한 한상을 제외하면 식사량과 메뉴는 일정하고 체중 역시 큰 변동은 없다. 금요일 저녁에 퇴근하며 토요일 오전에 커피와 먹을 빵이나 디저트를 사서 돌아가는게 최근의 가장 큰 행복이다.


유지어트는 생각보다 널럴하다. 매일같이 체중계에 올라가 확인하고 500g 이상 늘었을 경우 3일치의 점심과 저녁 식단을 조정하고 운동을 한다. 강박증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며칠에 한번씩 체중을 쟀다가 2~3kg가 불어있으면 그거야말로 큰일이다. 게다가 경험상 몇백그람을 빼는것보다 3kg 빼는게 더 힘들다. 유지어트라고 해봤자 조금 조심하는 정도니 크게 힘들진 않다. 다만 한가지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바로 복근이다.


나는 근육이라곤 없는 물살에 힘도 없어서 늘 쉽게 지쳤다. 게다가 얼마전에는 sns에서 충격적인 글을 읽었는데 아니 글쎄 근육이 없으면 추위를 더 많이 탄다는 거다. 근육이 없는 것도 서러운데 추위까지? 난 추위를 엄청나게 타는 사람인만큼 귀가 팔랑이는 정보였다. 덩치가 큰 사람은 힘도 셀거라는 근거없는 믿음의 반대편에 서 있는 타입이었다. 그러다가 필라테스 강사님의 멋진 복근을 보고 마음이 혹한 것이다. 말랑말랑하다못해  달라붙는 필라테스복을 입으면 수줍게 튀어나오는 내 배를 생각하면 복근이란 존재는 아직도 멀고 먼 이야기다.


하지만 이제 나는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다. 시작할때만 해도 현실성이 없던 다이어트마저 성공했으니 보다 나은 목표를 설정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적어도 복근의 근처... 까지는 갈 수 있으려나. 그래도 좋다. 복근이 아예 없는 것과 근처까지 가는건 엄청난 차이가 있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저녁 필라테스를 예약했다. 브런치에 글을 쓰며 운동 의욕이 솟아 금요일 밤에 필라테스를 간다는 삶 역시 몇년 전의 내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세상일 참 모른다지만 역시 신기하다. 앞으로 점점 더 내가 상상도 못해본 일이 늘어날거다. 어쩌면 수영을 배울지도 모르고 춤이나 암벽 등반에도 흥미가 있다. 기대도 되고 두렵기도 하다. 그래도 해보고 싶다. 나의 삶의 고통과 노력을 더하다 보면 어떻게 변화하는지 나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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