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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ttingham Castle Oct 01. 2022

킹스맨의 거리를 찾아서#3

Savile Row의 전통과 변화

앞서 이야기했듯이 Savile Row는 지난 200년 동안 정치가, 예술가 그리고 비즈니스맨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가끔 여러 가지 어려움에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기도 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다름 아닌 이태리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등장이다.

*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것은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 American Gigolo(1980)에서 리처드 기어 Richard Gere가 유려하게 떨어지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슈트를 입고 등장하면서부터이다. 1)


영국의 수트는 유려하게 떨어지며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이태리 수트와는 달리 다소 경직된 면이 있는데 우열의 문제라기 보다는 스타일과 취향의 영역이다. 수트의 형태에 관해서는 다음에 조금 더 자세히 알아 보도록 하자.


Savile Row의 리처드 제임스 Richard James는 당시 아르마니의 급부상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 Savile Row 고객의 아들들이 아르마니의 맛을 본 이후로 좀처럼 비스포크에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충격적인 일이었죠. 아버지가 장성한 아들에게 그들의 비스포크 테일러를 소개해주는 것이 일종의 관례였는데, 이제는 거꾸로 아들이 아버지에게 아르마니를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2)


리처드 제임스가 언급한 바와 같이 아버지가 아들에게 ‘신사답게 옷 입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일반적인 영국 상류층의 전통이었다. 리처드는 아르마니의 급습으로 그러한 전통이 사라질까 염려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염려와는 달리 여전히 이러한 소중한 전통이 Savile Row에 남아 있다.


Anderson & Sheppard의 수석 재단사와 Huntsman의 수석 고객 매니저의 말을 들어 보자.

우리는 여전히 젊은 고객들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대게 기존 고객의 아들이거나 성공한 개인들이죠(수석 재단사, Anderson & Sheppard)
Huntsman의 20대 후반의 고객들의 경우 대체로 투자은행에서 일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수년 동안 우리 매장에서 구매를 해 왔으며 그들의 조부와 부친 역시 우리의 단골입니다. (수석 고객 매니저, H. Huntsman & Sons)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Savile Row에 영향을 끼친지도 벌써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Anderson & Sheppard와 H. Huntsman & Sons의 관계자가 설명했듯이 Savile Row의 전설적 테일러들은 여전히 살아 있고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80년대 클래식 남성복에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벌써 40년의 세월이 지났고 우리는 여전히 건재합니다.
다른 사람의 우려와는 달리 저는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Savile Row를 방해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보다 넓은 세상에 클래식 남성복을 전파한 디자이너라고 생각합니다.

일례로 고객 중 한 분은 변호사로 업무를 막 시작했을 때는 조르지오 아르마니만 입었다고 해요. 하지만 Savile Row의 뛰어난 품질에 만족한 이후로 우리의 단골 고객이 되었습니다. (수석 재단사, Anderson & Sheppard)


저는 사실 본드 스트리트(Bond Street)에 있는 톰포드(Tom Ford)나 제냐(Zegna), 그리고 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 같은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Savile Row에서 우리가 고객에게 제안할 수 있는 것과 Bond Street에서 그들이 제안할 수 있는 것은 상당히 차이가 있어요. 글로벌 브랜드의 기성복에 대해서 고객들이 만족해 할 수 있지만 매우 다른 상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경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그들과 우리는 전혀 다른 수준의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롤스 로이스가 Rolls Royce가 벤츠 Mercedes Benz를 염려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석 고객 매니저, H. Huntsman & Sons)


많은 테일러들과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Savile Row와 글로벌 브랜드의 기성복을 롤스 로이스와 메르세데스와 비교한 H. Huntsman & Sons의 수석 매니저의 위트는 필자를 지금도 미소 짓게 한다.

메르세데스 벤츠도 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이지만 롤스 로이스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그의 멘트는 노골적이지 않고 품위 있게 그러나 살짝 비꼬는 영국 특유의 “Sarcarsm”의 정수인 것이다.


일부 글로벌 패션 브랜드도 비스포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한번 Savile Row의 뛰어난 품질을 맛본 사람은 Savile Row의 충성고객이 될 수밖에 없다. 흔한 표현으로 Savile Row 비스포크를 안 입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입어 본 사람은 없다고 하면 될까?

그러던 Savile Row에 2006년 무렵 한파(寒波)가 불어 닥쳤다. 이번에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같은 글로벌 패션 브랜드의 공습의 영향만 이라고는 볼 수 없고, 걷잡을 수 없이 오르는 Savile Row의 임대료와 앞서 다룬 패션의 캐주얼화의 영향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이다.

이 시기에 절반 가까이의 테일러 숍이 문을 닫았는데 한창 전성기인 50년 전과 비교하면 40개에서 19개로 줄어들게 되었다. 3)


부동산의 임대료 문제에 대해서 조금만 더 자세히 들어가 보자! Savile Row의 테일러 숍은 대부분 개인이 운영하거나 가족 경영의 형태이다.

일종의 독립 브랜드로 Savile Row에서 테일러 숍을 운영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인건비도 무시 못할 부분이고 끝없이 오르는 임대료 때문에 일부 브랜드는 Savile Row를 떠나기도 했다.

2005년에 올드 버링턴으로 옮긴 Anderson & Sheppard가 대표적인 예이고 알렉산더 맥퀸 Alexander McQueen도 Savile Row 9번지에서 본드 스트리트로 옮겼다. 그런가 하면 Hardy Amies 급기야 매장을 닫고 글로벌 브랜드인 Hackett에 매장을 내주었다. 4)

* 스텔라 맥카트니 Stella McCartney 가 Savile Row에서 수습 기간을 거쳤다고 설명한 글을 기억하시는지? 놀랍게도 몇 해 전 유명을 달리한 영국의 천재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 Alexander McQueen도 Savile Row의 수습 제도 출신이고 자신의 이름을 딴 테일러 숍도 운영하고 있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하면서 Savile Row에서 임대차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을 갖고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임대료는 매우 비싸고 변함없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습니다. 간접비를 포함하여 모든 비용이 기본적인 인플레이션 이상으로 오르기 때문에 무척 힘든 상황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안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합니다. 우리는 한벌에 5200 파운드(한화 약 8백3십만 원)가 넘는 가장 멋지고, 값비싼 의류를 취급하는 곳입니다.

[...] Henry Poole은 이곳 Savile Row에 계속 존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창립자예요, 우리는 초창기 멤버로 이곳 Savile Row에서 비즈니스를 시작했어요. 만약 우리가 떠나게 된다면 무척 안타까운 일이고, 그것은 Savile Row의 종말을 말하는 것일 겁니다 (매니징 디렉터, Henry Poole)


Henry Poole이 일반인에게는 생소할 수 있으나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턱시도 Tuxedo를 최초로 만든 곳이다. 이들도 매장 운영에 따른 비용이 무척 부담스럽지만 단순히 비용의 문제로 쉬운 결정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매장을 재정비하는 등 많은 투자를 했고, 영화 킹스맨 협업에도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Savile Row의 임대료는 주요 이슈이고, 안타깝게도 몇몇의 테일러는 그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고 Savile Row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수석 고객 매니저, H. Huntsman & Sons)

헌츠맨은 영화 킹스맨 시리즈의 촬영 장소이기도 하다.


이쯤에서 글로벌 브랜드의 대표 주자 중 하나인 폴 스미스 Paul Smith의 전직 임원의 말을 들어 보자.

과거와 비교해 볼 때 지금의 Savile Row의 매장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Savile Row는 계속해서 살아남겠지만 정부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Savile Row를 보호하고 동시에 재능 있는 다음 세대를 지속적으로 양성해야 합니다. 알렉산더 맥퀸도 Savile Row에서 트레이닝을 받았잖아요. 대학과 연계하여 보다 창의적인 것을 모색할 수 있다고 봅니다.(전 디렉터, Paul Smith)


Savile Row에서 버티는 것은 실로 많은 희생을 감내해야만 한다. 인터뷰에 참여한 많은 전문가들이 언급했듯이 Savile Row는 비스포크 수트의 본산(本山)이며 고급 남성복 쇼핑의 성지(聖地)이다.


지난 시간에 설명했듯이 그런 성스러운 곳에 미국 캐주얼 브랜드 애버크롬비 Abercrombie의 아동복 매장이 2014년에 문을 연 것이다. 클래식 남성복과 아무 관계도 없는 브랜드라 당시에 거센 저항이 있었다.


“최상급의 빈티지 와인에 오렌지 주스를 붓는 격이다”라는 한 테일러의 설명이 가장 적절한 설명이 될 것 같다. 또한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Savile Row는 이제 특색은 없어지고 어느 도시의 번화가에 가도 볼 수 있는 하나의 명품거리 정도 될 것이라는 염려도 있었다. 창립 멤버 중 하나인 Huntsman 회장은 Abercrombie & Fitch는 단순히 Savile Row의 분위기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안전을 위험하는 수준이라고 평을 했다. 5)


한 차례 홍역을 겪은 후에 시 당국(Westminster City Council)은 Savile Row의 국제적인 비스포크 테일러링 중심 역할을 보호하고 강화하기 위해 특별 보호 정책 지역 (Savile Row Special Policy Area)으로 지정한다. 시 당국에 의하면 새롭게 문을 여는 상점들은 다음과 같은 조건을 충족할 때 승인을 받게 된다. 6)

- 어떤 비스포크 사업도 손실이 없을 것

- 총 영업 면적이 300 제곱미터를 초과하지 않을 것

- 상점은 비스포크 또는 특별하고 한정된 상품을 취급할 것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비스포크 테일러링과 관계가 없는 매장은 더 이상 Savile Row에서 오픈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 Savile Row에 어떤 매장이 들어설 수 있는지 시 당국이 부과한 규칙과 제한은 적절한 조치입니다. 비록 Abercrombie & Fitch가 10여 년 전에 문을 열었지만 이제 더 이상의 시도는 불가능해졌습니다. 이제는 남성복과 관련된 매장만 오픈할 수 있는 것은 환영할 일입니다. (수석 고객 매니저,  H. Huntsman & Sons)


건물주의 이익 관점에서는 본드 스트리트(Bond Street)나 리젠트 스트리트(Regent Street)와 같이 세계적인 브랜드로 세입자를 교체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Savile Row 비스포크 연합과 시 당국은 경제적 이익을 좇는 대신에 영국의 소중한 유산을 지키는 것으로 결정했다.


더욱이 비스포크 산업의 보호는 패션이라는 응용과학에 필요한 기초 과학의 투자라고도 볼 수 있다. 조금만 유명세를 타면 온갖 프랜차이즈가 들어와서 기존의 특색 있는 지역 문화를 훼손하고 천편일률적인 대기업 계열의 브랜드로 바뀌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영국의 이러한 접근이 전통이 되고, 역사가 될 뿐만 아니라 산업의 균형 있는 발전도 가능하며 후손들에게는 존재 자체로도 자원이 되는 셈이다.


1) Solomon, M., 2015. Luxury Lineage: A Brief History of the Armani Suit. Available at: https://www.forbes.com/sites/msolomon/2015/05/06/luxury-lineage-a-brief-history-of-the-armani-suit-armani-40th-anniversary/ [Accessed July 31, 2019].

2), 4) Sherwood, J., 2007. The London cut: Savile Row bespoke tailoring. Milan: Northam: Marsilio; Roundhouse distributor].

3) Norton, K., 2006. Savile Row Never Goes Out of Style. Bloomberg.Com Available at: https://www.bloomberg.com/news/articles/2006-10-31/savile-row-never-goes-out-of-stylebusinessweek-business-news-stock-market-and-financial-advice [Accessed July 31, 2019].

4) Nazir, S., 2019. Hackett flagship to replace Hardy Amies on Savile Row. Available at: https://www.retailgazette.co.uk/blog/2019/06/hackett-flagship-replace-hardy-amies-londons-savile-row/[Accessed August 1, 2019].

5) Holl, T., 2012. Savile Row tailors oppose Abercrombie & Fitch kidswear store. Available at: https://www.drapersonline.com/news/savile-row-tailors-oppose-abercrombie-and-fitch-kidswear-store/5034478.article [Accessed January 23, 2019].

6) City of Westminster, 2015. Special Policy Areas and Policies Map Revision. City of Westminster.

Photo28. https://www.countryandtownhouse.com/brands-guide/savile-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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