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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다채 1호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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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채 Jun 17. 2021

받아들여지지 못할까 봐, 스스로 브레이크를 걸어요

장윤석 님의 지갑 인터뷰 - 3

주변에 차도 없고,
브레이크를 걸 필요도 없고,
그냥 달리면 돼요.
그런데도 항상 브레이크를
스스로 거는 거죠.
체화됐다고 해야 하나요?



스스로 아웃사이더라고 하셨는데, 어떤 점이 남들과 달랐나요?


제가 가장 주목했던 건 제 외양이랑 취향이었어요. 먼저 지금 이 모습은 군대에 갔다 오면서 굉장히 많이 변한 모습인데, 군대에 가기 전까진 아주 뚱뚱했었어요. 그거 때문에 굉장히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고요.


뚱뚱하다는 것을 굉장히 제 매력을 깎아 먹는 요인이라고 생각을 했었고, 그래서 뭔가 다른 사람한테 다가가기가 어려웠어요. “이 사람이 나를 뚱뚱하다고 생각해서 나를 이상하게 보면 어떡하지.” 왕따를 당한 요인도 뚱뚱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어요.


사실 원인은 저도 잘 모르거든요. 몰라요. 왜 당했는지. 그리고 키도 친구들보다 작아요. 이건 동일집단에 대한 열등의식이에요. 키가 작다는 것은 동일 집단 내에서 열등하다는 것으로 취급이 됐죠. 저는 그거를 못 견뎠나 봐요.


따돌림에 이유가 어딨겠어요. (한숨) 키도 크시고.


아무튼… 외양은 이렇게 정리를 하고, 취향은 특히 음악 취향에서 많은 문제가 있었어요. 일단 제 음악 취향은 못해도 한 10년 전 영어권 록음악이에요.


스펙트럼은 다양한데 옛날 음악을 좋아해요. 근데 이런 사람들이 얼마 없어요. 제 또래는 주로 우리나라 음악, 힙합 음악을 들었고요. 그게 주류였어요. 저는 말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제 취향을 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게 없었어요.


취향을 들어주고 함께 공유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힘드셨던 건가요?


들어줄 사람이 없는 게 힘든 게 아니고, 제가 말을 했을 때의 두려움이 힘든 거예요. 저는 "이걸 좋아한다."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어요. 근데 냉대를 받을 것 같은 그런 두려움이 있어요.


상대방이 싫어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과 중학교 때 인간관계로 인한 어려움과도 연관이 있을까요?


연관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제가 다른 사람한테 받아들여지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잖아요. 한 개인이 집단에 편입되는 문제인 거죠.


중학교 때 들었던 "나는 너와 섞이기를 거부한다."라는 그 말이, 저한테는 그렇게 충격으로 다가올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두려워하고 주저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조심스러운 질문인데… 그 말을 들으셨을 때 어떤 심정이셨나요.


쓰레기 같았죠. 그니까... 이런 일화가 있어요. 중학교 1학년 때 왕따를 당했는데, 수학여행을 갔었어요. 애들이 저를 가지고 제가 어느 방에 들어갈지 그걸 돈으로 거래를 했어요. 그니까 제가 팔린 거죠. 몰라요. 푼돈이었어요. 한 3,000원이었나.


저는 제가 팔린다는 사실이 너무 억울해서 그냥 방에 들어가기를 거부했어요. 근데 어쨌든 밖에서 잘 수는 없잖아요. 그냥 아무 방에 들어가서 잤죠.


지금 뭐하나 싶고 내가 여기까지 와가지고 이런 대접을 받고 살아야 하나 싶고. 문제는 그걸 말을 못 했어요. 굉장히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말을 했어요.


말하는 그 순간에도 굉장히 기분이 이상했고 쓰레기 같았어요. 근데 참 웃긴 게 뭐냐면 저는 그다음에 가해자가 됐어요.


가해자가 됐다는 게 어떤 뜻이죠?


그게 1학기 때였거든요? 그때 다른 사람들한테 편입을 거부당하니까, 2학기 때는 완전히 저를 잘 보이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빵셔틀이었어요. 그니까 그 사람들이 원하는 걸 다 해줬어요.


저는 소속되고 싶다는 욕구가 너무 강했던 거예요. 저는 2학기가 되면 그 상황에서 바로 벗어나고 싶었어요. 그래서 친구를 사귀려고 미친 듯이 정말 별짓 다 해서 몇 명을 사귀었는데,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죠. 나중엔 누구 한 명을 따돌리기도 했어요.


말도 안 되는 일이죠. 너무 잘못된 행동이었어요. 제가 왕따를 당했던 입장인데… 근데 그렇다고 해서 제가 “따돌리면 안 돼.”라고 말하는 게 너무 겁이 났어요.


그럼 저도 다시 그런 처지로 돌아가는 게 뻔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그 점이 제 행동을 없었던 일로 만들 수는 없어요. 아직까지 사과하지 못했어요. 그게 너무 미안해요.


윤석 님은 주류에 소속되기 위해 윤석 님의 고유한 특성을 포기하셨나요? 아니면 끝까지 지키셨나요?


전 포기했어요. 음… 일단 남이 시킨 역할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어요. 예를 들어서, 광대가 되라고 하면 광대가 됐죠. 그다음에 혐오 발언을 정말 많이 했어요. 제가 같은 주류 집단에 살았다고 생각했을 때. 자세히 얘기하고 싶진 않아요.


그때 일들이 저한테 한 가지 영향을 미친 게 있는데, 자신을 미화하기를 굉장히 꺼려요. 나를 굉장히 좋게 내세우거나, 나를 자랑하는 걸 원하면서도 꺼려요.


자동차의 브레이크에 비유하면 될 것 같아요. 저는 원래 제 특성을 드러내는 성향이 있어요.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는 거죠. 근데 브레이크를 걸어요. 주변에 차도 없고, 브레이크를 걸 필요도 없고, 그냥 달리면 돼요. 그런데도 항상 브레이크를 스스로 거는 거죠. 


체화됐다고 해야 하나요? ‘내가 미화되거나, 너희들보다 낫다고 생각되는 순간 너희들은 나를 공격할지도 몰라.’ 이런 생각 때문인 것 같아요.


특별해지는 게 무서우신 거네요.


네. 그런 일들을 겪고 나서 스스로 굉장히 많이 고찰했었고, 행동 양식을 바꾸고 그게 고정이 됐어요. 생각해보면 저는 초등학교 땐 굉장히 활달한 사람이었어요. 관심받는 걸 좋아했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했어요.


근데 중학교 때 그렇게 공격을 받고서, 어쨌든 살아남고 싶었으니까 바로 행동 방식을 완전히 바꿔버리고 그거에 고착화가 된 거예요. 그리고 지금 와서 그걸 다시 바꾸고 싶은데 너무 늦은 것 같고요.


하지만 지금까지도 연극이나 음악 같은 취향을 굳건하게 지켜오시고, 사회적 문제들에 공감하려고 노력하시는 걸 보면 윤석 님의 특성을 다 포기하신 것 같지 않아요.


다행이네요. 옛날엔 이런 생각도 했었어요. 일종의 전체주의적인 생각인데, 항상 모든 사람이 내 의견에 동의했으면 좋겠고, 모든 사람이 내 취향과 비슷한 걸 찾아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 친구도 많았으면 좋겠다.


근데 이게 욕심이 너무 한가? 분명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너무 전체주의적인 생각은 아닌가? 그래서 한창 이런 것들을 일기에 쓰고 그랬어요. 뭐 지금은 조금 줄어들었죠.

다시 돌아가 보면, 어떻게 해서 따돌림에서 벗어나게 됐나요?


3학년 때 친구들이 괜찮았죠. 그때는 되게 행복했어요. 뭔가 목표 같은 것도 찾았고.


목표요?


그때 뮤지컬 활동을 했어요. 그 집단이 정말… 뭐라 해야 되지… 그냥 행복했어요. 뭔가 즐거워하는 걸 한다는 것도.


언젠가 사회에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으세요?


'엘렌 드제너러스 쇼'라는 미국 토크쇼에서 MC가 쇼가 끝날 때마다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Be kind to one another.” 저도 제 목소리를 낼 기회가 있다면 이런 말을 하고 싶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세요.” 저는 이게 많은 뜻을 내포한다고 생각해요. "친절하세요."라는 말은 그 사람이 나와 다르더라도 최소한 그거를 인정하고 예의를 갖추라는 거잖아요.


외양이나, 취향이나, 정치적 의견이 나와 다르더라도 그걸 무조건 공격할 수는 없어요. 최소한 그 사람에게 예의는 차려야 해요. 근데 우리는 그게 부족해요.


되게 비슷한데 다른 말이네요. "다른 사람을 이해하세요."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세요." 이해는 못 할지라도 예의는 차려라….



인터뷰 소감을 듣고 싶어요.


후련해요. 이런 정말 깊은 얘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한 적이 없어요. 굉장히 치부를 드러내는 거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말하고 싶었는데도 스스로 못했던 얘기들이 너무 많았는데, 다 얘기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후련해요. 이걸 그냥 녹음해서 기록하고 싶어요.


이 인터뷰가 브레이크를 덜 걸어도 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아,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제가 연극을 좋아하는 이유는 생각을 해보니까 감정을 토하기 위함이었어요.


감정을 토하기 위함이요?


만약에 제가 화가 났어요. 근데 이런 공공장소에서 화를 낸다면 다른 사람들은 저를 이해하지 못해요. 뭐 물론 이해를 바라고 하진 않죠.


근데 만약에 무대 위에서 화를 낸다면 사람들은 저를 이해하려고 해요. 이해하려고 온 사람들이고, 준비된 사람들이니까. 저는 그런 게 하고 싶었나 봐요. 그래서 연극이나 연기를 굉장히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오늘 알게 된 사실은 굳이 제가 무대 위에서 말을 하지 않아도 이렇게 말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게 너무 기뻐요. 울고 싶어요. 진짜로. 진심으로.

마지막으로 릴레이 질문이란 걸 해볼 거예요. 윤석 님이 누군지 모를 다음 인터뷰이한테 질문을 남겨주시면 다음 인터뷰이가 그 질문에 답을 해주실 거예요. 아무 질문이나 괜찮아요.


이런 질문을 하고 싶은데요.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나요?” 저는 저를 많이 싫어했었어요. 사실 지금도 그렇게 많이 좋아한다고 느끼지는 않고요. 그냥 물어보고 싶어요. 다른 사람들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다채 1호는 인터뷰이의 지갑을 통해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각자의 크고 작은 다름이 어우러지는 다채로운 사회를 꿈꿉니다.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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