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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다채 1호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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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채 Jun 30. 2021

영화 속 인물의 글쓰기 조언 - 2

영화 <트럼보>, <프리덤라이터스>

본 기사는 장윤석 님의 인터뷰에 대한 에디터의 답변입니다. 인터뷰이, 그리고 인터뷰이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Editor |홍이진



언젠가 한 출판사 직원분이 내게 물어보셨던 질문이 떠올랐다.


“나를 반영해서 쓰는 거울 같은 글이 있고, 세상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는 유리창 같은 글이 있다면 어떤 쪽의 글을 써오셨어요?”라는 질문이었다. 그런데 나도 어느 순간부터는 글의 힘을 빌려 내 목소리로 세상에 대한 얘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 만난 영화가 《트럼보》였다.


트럼보 Trumbo, 2015


“블랙리스트는 악마의 시절이었습니다.
미약한 개인들이 감당하기에 너무나 가혹한 시절이었습니다.
허나 그 어둡던 시절을 돌아보면서 영웅이나 악당을 찾을 까닭이 없습니다.
희생자들만 있었을 뿐...
희생자인 이유는 우리 모두가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말이나 행동을 강요받았기 때문입니다.
상처를 주고 상처를 입었지만 우린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PS. “만약 아카데미상을 받게 된다면 딸에게 줄 겁니다. 그리고 말하겠죠. 이젠 짐처럼 지고 있던 비밀을 말해도 된단다.
우리 이름을 되찾았단다.”
(달튼 트럼보의 실제 인터뷰 中)


《트럼보 (Trumbo, 2015)》는 냉전 시대에 ‘할리우드 10’이라는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더 이상 작품 활동을 할 수 없었던 할리우드 최고의 각본가 달튼 트럼보의 실화를 다룬 영화이다. 트럼보는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상황에 굴하지 않고, 본명을 숨긴 채 11개의 가명으로 작품을 써나간 끝에 1953년에는 《로마의 휴일》로, 1956년에는 《더 브레이브 원》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의 각본상을 받는다. 하지만 당시 트로피는 대리 작가에게 주어졌고, 트럼보 사후 17년 후인 1993년에야 오스카상엔 원래 주인의 이름이 새겨진다.


이처럼 트럼보에게 있어 글쓰기란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갈 수 있는 무기로써 투쟁과 자아실현의 수단이었다. 물론 때로는 가족의 생계와 다른 블랙리스트 작가들에게도 일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B급 영화 제작사와 손을 잡고 원하지 않는 글도 써야 했다. 그런 그에게 동료 작가는 “돈만 받으면 끝이다. 이거야?”라며 비판을 했지만, 트럼보는 “대작 하나를 받았으니 줄줄이 받을 수도 있어. 그럼 이런 썩어빠진 현실이 뒤집힐지 모르지. 고용 불가능한 작가들이 전부 일하고 있으니까.”라고 반박하며 때를 기다렸다.


그의 생애를 알게 되자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시대에 살면서도 자꾸만 나 자신을 억압하려는 스스로를 반성하게 됐다. 그리고 이젠 나를 뚫고 나와서 세상에 대한, 세상을 향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때 접한 게 ‘백구글방’이라는 한 블로거분의 글이었고, 이분의 글쓰기 스타일을 통해 ‘펜의 힘이 칼의 힘보다 강하다’는 말의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이분은 우선 화제가 되는 기삿거리를 소개하고 그 화두를 가지고 시를 쓰시는데, 날카로운 사회 참여형의 글쓰기와 시의 매력이 동시에 느껴져서 매번 반하곤 한다. 나 또한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을 증명하듯 표현의 자유와 책임감 사이에서 균형 잡힌 글을 쓰고 싶어 진다.


요즘엔 이렇게 글쓰기의 쓰임을 고민하면서 '요행히 내게 주어진 능력이 글쓰기라면 난 글 속에 어떤 메시지를 담고 싶고 또 담아야 할까? 존재를 밀어내지 않으면서 삶을 담아낸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왜 나는 글에 이렇게 끌리는 걸까?'라는 의문을 키워갔고, 그때 일부러 찾아본 영화는 글쓰기 교육에 관한 영화 《프리덤 라이터스》였다.


프리 라이터스 다이어리 Freedom Writers, 2007


‘선생님께서는 우리 일기를 책으로 엮고 싶어 하셨다.《안네의 일기》처럼...
선생님은 우리가 사람들에게 전해야 할 말이 있다고 하셨다. 우린 더는 평범한 한 반 학생들이 아니었다. 우리 이야기를 우리 목소리로 들려주는 작가들이었다. 설사 아무도 읽지 않는대도 책은 우리가 이 세상에 있었다는 증거로 남을 것이다. 사실을 기록하는 증거로써 그 정도면 충분했다.
서로에게만 중요했다고 해도 우린 절대 잊을 수 없을 거다.’


《프리덤 라이터스 (Freedom Writers, 2007)》는 1994년에 미국에서 출판된 에세이 《프리덤 라이터스의 일기》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초임 교사 에린 그루웰 선생님은 인종 차별과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라온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친다. 언제 총을 맞아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험한 환경에서 자라온 학생들에겐 꿈보다 생존이 우선이었지만, 그녀는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아이들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꿈을 심어준다.


그렇게 아이들은 《호밀밭의 반항아》의 샐린저처럼 글쓰기라는 내적 대화를 통해 자신을 치유해가고, 그루웰 선생님과 학생들은 《파인딩 포레스터》에서처럼 사제지간이 함께 성장해나가며, 《트럼보》가 그랬듯 글이라는 작품을 통해 부조리한 사회를 향해 자신만의 목소리를 낸다. 그리고 학생 중 상당수는 그들의 가족 중 처음으로 대학교에 진학했으며, 함께 ‘프리덤 라이터스’ 재단을 만들어 그루웰 선생님의 가르침을 다른 아이들에게도 전해주고 있다.


처음에 그루웰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빈 공책을 나눠주며 말한다.


다들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지.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는 건 중요해. 스스로에게라도 말이야.
이 공책에 매일 뭔가를 쓰는 거야. 쓰고 싶은 건 뭐든지 써.
과거, 현재, 미래도 돼. 좋든 나쁘든 아무거나. 대신 매일 써야 해.
점수는 매기지 않을 거야.
내가 어떻게 진실한 이야기에 A나 B를 줄 수 있겠어, 안 그래?


그리고 이 대사는 마치 내게 하는 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예전에는 ‘왜 난 설명할 게 많은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떤 분께서 그게 곧 너만의 이야기가 되는 거라고, 그래서인지 스토리텔링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던 게 큰 위로를 줬고 꿈의 실마리가 돼주었다.


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고향을 떠나 서울살이를 시작하면서 그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던 말을 글을 통해 쏟아냈고, 긴 재수 생활을 거치면서 다시는 도돌이표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남긴 글이 천 편이 넘어가자 이제는 글이 가장 친한 친구이자 취미가 돼버렸다. 옷감을 짜듯이 단어를 조합하는 과정도 매력적이고, 쓸모의 여부로 외면받고 버려지는 게 많은 세상에서 일상의 모든 걸 글감이라는 자원으로 재탄생시키는 글은 참 품이 넓다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네 편의 영화 속 글쓰기 스승님들을 통해 글쓰기로 나를 표현하는 것 이전에 내 주관과 신념을 확립하는 것의 중요성을, 글쓰기의 이유와 의미를 나에게서 세상으로 확장해가는 용기를, 글쓰기 이후에 따라오는 피드백에 대처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었다. 이처럼 글을 쓰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글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함과 동시에 자신만의 신념을 세워가고, 타인과 교감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세상을 바꿔나갈 용기를 낸다.


무엇보다도 영화 속 주인공들이 어떤 시련이 와도 글쓰기만큼은 끝까지 버리지 않는 모습이 제일 인상 깊었다. 사실 글을 씀이 쓰지 않음을 넘어섰다는 것은 쓰지 않는 고통이 쓰는 고통보다 더 크다는 것을, 표현의 욕구가 평가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군다나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에 대한 관심이 없으면 말에 담긴 의미도 사라지게 된다는 점에서 글쓰기는 사람과 삶, 세상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은유 작가님은 책 《쓰기의 말들》을 통해 전한다.


작가로서 자의식을 가지세요. 나는 왜 무엇을 쓰고 싶은가, 내가 되고자 하는 모습은 무엇인가, 사람들과 무엇을 나누고 싶은가,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그 물음을 어루만지는 동안 아마 계속 쓰게 될 거예요.


왜 자꾸만 글이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아마도 내가 펼치는 글자들만큼은 빈 공간에서 자유롭게 뛰놀 수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생각은 무겁지만 종이에 글을 써 내려가면 고작 잉크의 무게만큼, 샤프심의 질감만큼 더해질 뿐이다. 무거운 생각이 더해져도 여전히 종이는 가볍기에, 글을 쓰고 나면 내 삶의 무게도 가벼워진 느낌이 든다.


그래서 글을 쓰고, 그래서 글이 참 좋다. 내게 있어 글쓰기라는 행위는 어떤 생산적인 결과는 없는 꾸준함이었지만, 꾸준히 의미를 생산했던 과정이기도 했다. 또한 나를 변명하고 해명하기 위해 시작한 글이 세상을 설명하고 내 존재를 증명하는 글로 바뀌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사실 이거면 충분하다. 글을 쓰며 나를 쓰는 이유로는.


처음으로 글쓰기에 관한 글을 쓰면서 나 자신에게 되묻는다.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있나요? 그 목소리를 내고 있나요? 그리고 세상의 목소리를 듣고 있나요?’라고... 또한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께 묻고 싶어 졌다.


제 목소리가 들리나요? 당신은 세상을 향해 어떤 목소리를 내고 싶나요? 제가 듣고 있을 테니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세요.




다채 1호는 인터뷰이의 지갑을 통해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각자의 크고 작은 다름이 어우러지는 다채로운 사회를 꿈꿉니다.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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