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살면서 평생을 남성이라는 주류에서 살아왔는데 그렇다고 해서 주류에 소속된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항상 주류 바깥에 있는 아웃사이더였어요.
대출하신 책 이름 보고 페미니즘에 관심 있으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여성학을 다전공할 생각으로 여성학 수업을 듣고 있는데 이게 수업 과제용 책이에요. 이런 수업을 왜 듣고 이런 책을 왜 읽게 됐냐면, 일단 시작은 군대에 있을 때였어요. 군대의 유일한 소통수단은 페이스북이잖아요.
그때 페이스북을 하다 보면 친구들이 쓴 장문의 글들이 가끔 올라왔어요. 그 친구들이 하고 있던 얘기는 일상적인 폭력에 대한 고발이었어요. 정확히 어떤 사건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불법 촬영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어요. 그 친구들은 제가 봤을 때 굉장히 믿음직스러운 사람들이었어요. 거짓말을 할 사람들이 아닌데, 왜 이렇게 비판을 하고 폭력에 대항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궁금했어요.
가장 먼저 했던 생각은 ‘나도 가해자가 아닌가?’라는 근본 의식이었어요. 그러고 나서 뭔가 잘못되었다고 인식을 했고, 바꾸고 싶었어요. 근데 아무것도 모르고서 바꾸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 문제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처음 읽기 시작한 게《82년생 김지영》이에요. 소설이 굉장히 친절하더라고요. 리얼리즘 소설이기 때문에 조남주 작가가 글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들을 굉장히 많이 적어놨어요.
예를 들면 ‘김지영 씨가 대학에 들어간 2001년에 여성부가 신설되었다.’ 이런 식으로 팩트들을 설명하는 거죠. 또 소설이 보편적이에요. 주인공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 보통의 한국 여성들에 대한 보고서 같은 거죠. 읽고 나서 놀랐어요, 많이. 저는 경험이 없으니까 이해도 못 하죠. 남은 건 공감하려는 노력인데, 생각해보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공감하려는 노력도 안 한 것 같아요.
저는 책을 읽고서 독후감을 간단하게 적는 습관을 들이고 있어서 이 작품에 대한 글도 썼었어요. 많이 길어요. 그렇게 공을 들인 글은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이 글로 말하고자 했던 건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것은 죄이고, 공허한 외침보다는 내가 스스로 읽고 행동하는 것이 훨씬 낫다.’라는 메시지였어요.
근데 사실 제가 많이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책을 읽고 공부하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었죠. 그다음에 마가렛 애트우드의 《눈먼 암살자》.
“《82년생 김지영》을 접하기 전까지는 공감하려는 노력을 안 한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는데, 페미니즘 관련 공부를 더 하신 후 지금은 어떤가요?
일단 《82년생 김지영》을 읽기 전까지 저는 문제에서 비켜나 있었어요. 나는 ‘일부’ 가해자가 아니라고 여기면서, 기계적 중립을 취하면서 뒤로 물러나 있었죠. 그런데 책을 읽고 나서 이런 기계적 중립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버리자고 마음을 먹었어요.
지금도 공감하려고 계속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근데 여기서 마음에 걸리는 게 ‘이해’에 관한 문제예요. 저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개인마다 경험이 다르고, 그 경험을 온전히 공유할 수 없으니까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대신에 공감하려고 노력하지만 뭔가 합치가 안 되는 애매한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말씀하셨다시피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 대해 공감하기가 어려우실 것 같아요.
그런데도 윤석 님은 왜 공감하려고 노력하시나요?
일단 하고 싶은 말은… 좀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부끄러워지고 싶지가 않았어요. 좀 더 거창하게 말하면 역사 앞에서 부끄러워지고 싶지가 않아요. 세상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고, 잘못된 가치를 계속 붙잡고 살 수는 없어요.
장윤석이라는 인간이 실제로 잘못을 하지 않았더라도, 그 인간이 속해있던 집단이 잘못을 저질렀어요. 잘못한 사람들이 아무런 행동도 안 하고 세상이 바뀌기를 기대하는 건 착오예요.
제가 바뀌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바뀌어야지 세상이 변했다고 말을 할 수 있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나요? 그렇게 세상은 바뀌고 역사도 바뀌게 될 것인데,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나는 너무 잘못을 저지른 것 같은 느낌인 거예요. 부끄러웠어요.
그다음에 여기에 도움을 준 건 아무래도 아웃사이더 의식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 살면서 평생을 남성이라는 주류에서 살아왔는데 그렇다고 해서 주류에 소속된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항상 주류 바깥에 있는 아웃사이더였어요. 음… ‘충’을 붙인다는 얘기는 그 행위를 주류나 좋은 가치로 인정을 안 한다는 뜻이잖아요. 진지충, 설명충, 선비충… 모두 저한테 해당이 되는 말이거든요.
그렇다 보니까 제가 잘못되었다고 규정한 주류 문화, 즉 남성 중심적 기득권 문화에서 벗어나는 것도 훨씬 쉬웠던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를 또래 남성 친구들이랑 해본 적 있나요?
있어요. 지금까지 단 한 명 빼고 전부 욕을 들었어요. 지난달에도 그런 일이 있었고, 지난주에는 한 친구랑 이 얘기를 하다가 그 친구가 "너 머리에 총 맞았냐?"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중학교 때 왕따를 당했어요. 그 사건이 지금의 저를 완전히 결정지었고, 그래서 저는 인간관계에 사실 굉장히 집착해요.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제 생존에 도움을 준 친구들한테 굉장히 고마움을 느끼고 보답하려고 해요. 전 그 친구들을 쉽게 놓지 못해요.
근데 그들은 대부분 남자고, 대부분 저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죠. 저는 굉장히 난처한 처지예요. 그냥 이대로 친구들을 놓기에는 너무 망설여지는데…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을 너무 수용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냥 "우리 사이에서 이런 얘기를 하지 말자."하고 덮어두는 편인데, 그게 너무 짜증 나요.
정말 어려운 문제네요.
음…. 힘들어요. 앞으로 싸움을 많이 겪을 수밖에 없는데, 두려워요. 그리고 ‘나도 결국 똑같은 사람이진 않을까?’ 이걸 계속 자문해요.
두려워하면서도 계속 여성학 수업을 듣고, 공부하는 이유가 뭘까요?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게 명백한데 잘못을 고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그냥 이 문제를 놔두기만 하면, 언젠가는 저도 피해자가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다른 사람들, 그니까 제가 아끼는 사람들이 불행한 걸 참을 수가 없어요. 제가 최소한 이렇게 배우려고 노력하는 게 그 사람들에게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남의 불행을 참을 수 없다는 건, 초반에 언급됐던 정의감에서 나온 생각일 수도 있겠네요.
그죠. 내가 일단 불편해도 되니까 다른 사람들한테 일단 해보고 보자 이런 의식이 항상 존재했거든요. 과장일 수도 있겠죠. 저 자신도 좀 헷갈려요. 아니면 이런 것도 될 것 같아요.
제가 고통을 겪어봤던 사람이라, 고통을 외면할 수가 없어요. 저는 인간관계의 고통을 겪어왔고, 맥락은 다르지만 그 사람들도 고통을 겪어왔기 때문에 그 고통을 외면할 수가 없어요.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걸고서 "나는 고통을 받았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걸 외면하면 인간입니까?
다음 화에서 계속.
다채 1호는 인터뷰이의 지갑을 통해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각자의 크고 작은 다름이 어우러지는 다채로운 사회를 꿈꿉니다.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