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 앞에서 건너는 사람 유형
스모커
: 전자 담배나 일반 담배를 피우면서 건너는 유형. 견디기 힘든 담배 냄새를 풍긴다.
선구자
: 차량 신호등이 바뀌는 걸 보고 아직 빨간불일 때 건너기 시작하는 사람. 차가 오는지 여부는 신경 안 쓸 때가 잦다. 배짱 두둑하다.
무법자
: 오토바이, 세그웨이, 전동 킥보드 따위를 타고 건너는 사람.
‘다 그런 거 아니겠니’
: ‘유도리 있게’ 빨간불이어도 다니는 차가 없으면 건너는 유형.
인간 각도기
: 예각, 직각, 둔각 등 건너는 각도에 따라 나뉜다. 그 안에서도 직선과 곡선으로 분류할 수 있다. 횡단보도에 도착하기 전에 초록불로 바뀌었을 때 보이는 유형. 정직하게 횡단보도 앞까지 와서 건너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기에 조금 먼 인도에서 출발하여 차도를 거쳐서 횡단보도에 도달한다. 때때로 차 사이를 뚫고 지나가기도 한다.
눈먼 자들의 도보
: 핸드폰에 빠져서 앞을 못(안) 본다. 높은 확률로 무선 이어폰을 끼고 있다.
장벽
: 일행과 함께 나란히 걸어가며 장벽을 형성한다. 우측통행하면 상관없으나, 역주행인 경우 그들을 피해 빙 돌아서 가야 한다. 대개 담소를 나누고 손에 커피를 들고 있다. 걸음은 느긋한 편.
애독가
: 요즘엔 보기 힘들다. 한 손으로 책을 들고 읽으면서 걷는다. 책 장르는 판타지 소설이나 무협지. 내가 중고등학생일 때 종종 목격했다.
FM
: 좌우를 살피며 우측통행으로 건너는 사람
초월자
: 담배를 피우면서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건너는 사람.
12대 중과실 위반이 나를 수호한다
: 그들은 뛰지 않는다.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었어도 느긋이 걷는다. '나는 보행자고 여긴 횡단보도 위이야. 운전자인 네가 뭘 할 수 있지?'라고 말하는 듯하다. 뛰어와서 빨간 불로 바뀐 횡단보도 위를 걸어가는 사람을 볼 때면 황당하다.
주객전도
: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보행자가 건너갈 수 있게 멈추면 고개 숙여 인사한다. 보행자를 위해 멈추는 건 배려가 아니라 의무인데. 인사받을 일이 전혀 아닌데.
#번외
숙련된 운전자
: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 해당한다. 사람들이 건너건 말건 초록불이 한창이건 개의치 않고 제 갈 길을 간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곡예를 부리며 간발의 차이로 지나가기도 한다.
눈치 게임
: 그들은 뒤에 건너는 사람이 남아 있어도 상관치 않는다. 당장 차 앞에 있는 사람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며 슬금슬금 앞으로 간다. 감질나게 찔끔찔끔 그러다가, 건너는 사람들 사이에 틈이 있으면 바로 액셀을 밟는다. 그 때문에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마저 건너는 사람이 생기기도 한다.
문워크
: 횡단보도를 침범한 차량에서 많이 보인다. 건너는 사람을 배려해서 후진한다.
다른 사람 인생 망치지 맙시다
: 왕복 육 차로든 몇 차로든 전혀 개의치 않고 무단 횡단하는 사람들을 보면 ‘죽으려고 환장했구나’ 하는 생각밖에 안 든다. 제발 다른 사람 인생 망치는 일 좀 만들지 맙시다.
적당한 일러스트를 곁들이면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목록에서 크게 더 추가할 게 많진 않을 듯하고, 작성한 내용을 더 다듬으면 될 것 같기도 하구요. 다만 《조금 더 긴 나날들》 원고가 대체로 진지한 편이기에 안 어울려서 뺐습니다. 전체가 이런 톤이면 모르겠지만 이대로면 튈 것 같았거든요.
(94%쯤)은 '완성도가 94%쯤'이라는 뜻입니다.
인스타그램: anda.hun
* 『문장의 B컷』은 격주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