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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몰고 온 폭풍우 속에서

by 휴지기

남편이 일 때문에 경기도로 올라간 지 열흘이 지났다. 남편은 출근해서 한 번, 퇴근할 때 한 번 이렇게 하루에 두 번씩 전화를 한다.


우리가 뭐 특별히 애틋한 부부도 아니고 해서, 통화 시간은 보통 일 분을 넘기지 않는다. 밥을 먹었냐, 오늘도 바빴냐 이런 얘기들을 대강 하다가 전화를 마무리하곤 한다. 함께 살았어도 워낙 남편이 집에 있던 시간이 짧아서 그런지 남편의 부재가 별로 불편하지 않다. 다만 남편이 내 차를 가지고 가서, 그게 아쉽고 불편한 뿐이다.


그저께 남편이 사진을 하나 보내왔다. 상처가 난 자기 다리를 찍은 사진이었다. 무릎과 정강이가 조금씩 파인 것 같았다. 나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전화를 받지 않았고, 몇 시간 뒤에야 다시 전화가 왔다.


"뭐야? 다친 거야?"

"응."

"어쩌다가?"

"뭐, 원래 공사판에선 다 다치고 그런 거야."

"병원은? 병원은 갔었어?"

"아니, 그냥 소독하고 밴드 붙였어."

"병원 왜 안 가? 그러다 큰일 나."

"괜찮다. 금방 나을 거야."

"아니 병원도 안 갈 거면서 다친 사진은 뭐 하러 찍어 보냈어?"

"관심 받으려구. 관심받으니까 기분 좋네."

"역시 넌 또라이야."


나는 실소를 터뜨리며 전화를 끊었다. 우리가 언제 그렇게 서로에게 관심을 갈구하는 애절한 사이였다고.


남편이 일하는 곳에서는 하루에도 몇백 톤이 넘는 크레인이 왔다 갔다 한다고 했다. 처음에 일 시작할 때


"무조건 조심해서 해."


라는 내 말에


"빨리해야 돼. 조심해서 하는 것보다."


라고 대꾸했던 게 자꾸만 마음이 걸린다. 남편은 주변에서 열심히 한다고, 잘한다고 칭찬해 주면 온몸 던져 일할 사람이었다. 게다가 요즘엔 아무도 칭찬을 해주지 않아 남편은 칭찬이 매우 고픈 상태였다.


오늘은 또 통화하다가 남편이 말했다.


"나 오늘 손가락 잘릴 뻔했어."

"뭐? 왜 또?"

"물건들 사이에 손가락이 끼었었거든."

"그래서? 멍들었어?"

"아니, 살점이 떨어져 나갔어."


나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남편은 다리를 다쳤을 때처럼 괜찮다고, 노가다판이 다 그런 거라도, 몸 안 사리고 일한다고 다들 좋아한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나는 남편의 그 아무렇지 않음에, 그 대책 없는 가벼움에 동조할 수 없었다.


일하러 올라간 지 열흘이었다. 열흘 동안 두 번의 사고, 나는 그 사고의 간격이 너무 짧은 것 같다. 불안하고 걱정된다.


사업이 망한 후 남편은 여러 번 죽고 싶어 했다. 나도, 남편이 연락 두절 상태로 새벽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은 많은 날들의 밤에 남편의 죽음을 상상하며 불안에 떨었었다. 남편이 자신의 의지로 바다에 빠져 죽거나, 달리는 차에 뛰어들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쌔근쌔근 잠들어 있는 아이 옆에서 그런 상상들을 하며 나는, 이 세상에 딱 나 혼자만 남은 것 같은 외로움과, 모든 것이 나를 버린 것 같은 두려움으로, 또한 모든 걸 망쳐버린 남편에 대한 원망과 억울함으로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시간들을 견뎠었다.


남편의 죽음을 수두룩하게 상상했지만 남편이 실제로 죽기를 바란 건 아니었다. 심지어 일을 하다가, 공사장에서 다치거나 죽기를 바란 건 더더욱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 좋아해. 나는 몸 사리지 않고 일하잖아."


라는 남편의 말이 불안하다. 남편이 또 무슨 폭풍을 몰고 오게 될지, 또 어떤 예상치 못했던 일로 자신과 나를, 그리고 우리 아이를 힘들게 만들지 심히 우려가 된다.



오늘은 아이의 열 번째 생일이다. 10년 전에 내 배속에서 나왔던 3.45kg의 조그만 아기는, 지금은 나와 눈높이가 얼추 맞을 정도로 훌쩍 커버렸다.


10년 동안 아이를 쑥쑥 키우느라 나는 정말, 많은 순간을 버텼다. 한 물 지나간 유행어처럼 '존버'를 했다. 나에게 버텨야 하는 삶을 던져놓은 남편을 수도 없이 원망하면서, 그러면서 버텼다.


오늘 아이와 함께 미역국을 먹으며 속으로 나는, 10년을 버틴 나를 스스로 치하했다.


"고생했어. 그리고 이 정도면, 잘하고 있어. 더는, 더는 잘하지 않아도 돼. 괜찮아."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이제는 부디, 남편이 몰고 오는 것이 거친 폭풍우가 아니라 하늘하늘한 꽃비이기를, 그리하여 우리가 결국엔 꽃비가 내려 만들어진 꽃길을 걸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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