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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힘들고 싶다

by 휴지기

며칠 전 저녁, 천 원짜리 즉석 복권을 두 장 사들고 오는 길이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물었다.


"좋은 소식 말해줘."


남편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역시, 좋은 소식 따위는 없는 것 같았다.


"나 오늘은 안 다쳤어."


그 전날 남편은 물 묻은 사다리에 오르다가 미끄러져 정강이를 다쳤었다. 남편이 보낸 사진을 보니 정강이에 15센티 정도의 상처가 난 것 같았다. 병원에는 가봤냐고, 약은 발랐냐고 물었더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남편은 그냥 괜찮다고 말하고 말았다.


나는 다시 물었다.


"그거 말구. 다른 좋은 소식 알려줘."


남편은 뜸 들이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겁나 사랑해."


나는 됐어,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남편의 사랑 고백이 달갑지 않았다. 나에게는 좋은 소식이 필요했다. 밀렸던 월급이 나왔다거나 받기로 예정되어 있던 돈이 나왔다거나 하는 소식들. 경제적인 좋은 소식들. 나의 숨통을, 트여 줄 수 있는 소식들 말이다.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시간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믿음으로 숨 막히는 시간들을 참고 있었는데 도무지 지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나의 숨을 막고 있는 손길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가는 느낌이다. 이대로 숨이 막혀서 딱, 죽어버릴 것만 같은, 혹은 죽어버리고만 싶은 순간들이 자주 찾아온다.


나는 더없이, 힘들다.


오늘 아침, 10년이 넘어 성능이 떨어진 텅 빈 냉장고에서, 남편이 지난 주말 만들어 놓고 간 무생채를 꺼내 먹으며 이렇게 꾸준히 또, 힘듦을 버텨내는 게 맞는 것인가 고민했다.


냉장이 제대로 되지 않는 냉장고, 헹굼과 탈수를 할 때면 자주 왼쪽으로 돌아가는 세탁기, 화장실 바닥으로 물이 뚝뚝 새는 세면대, 며칠에 한 번씩 화면이 나오지 않아 암흑으로 보이는 티브이를 언제까지 모른 척 넘겨야 하는 것인가, 이걸 이대로 안고 또 꾸역꾸역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이게 맞는 것인가 잘 모르겠다.


남편이 일주일, 또는 이주일에 한 번씩 와서 만들어놓는 무생채에 기대어, 열무김치나 미역국에 기대어, 사실은 남편의 '조금만 더 참아줘'라는 말에 기대어, 얼마나 더 이 숨 막히는 상황들을 견뎌내야 하는 건지 막막하다.


이혼녀가 되는 것도 두려운 일이지만, 폭싹 망한 이혼녀가 되는 건, 갈 곳 없는 마흔 중반의 빈털터리 이혼녀가 되는 건 아직은 감당할 수 없이 두려운 일이다. 그래서 선뜻 결정을 못 내리고 있는 것 같다. 남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실낱같은 애정과 이혼 후 다가올 감당할 수 없는 후폭풍 때문에 말이다.


나는,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힘들고 싶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 덜 불안하고 싶다.


나의 이 크지 않은 바람은 언제쯤 이루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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