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의 결혼 생활은 마치 외줄 타기 묘기를 하는 것처럼

by 휴지기

목요일 저녁이었다. 집 경매 처리를 진행하겠다는 문자가 왔다. 몇 달 전 비슷한 문자가 왔을 때 남편이 잘 처리했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때는 경매 절차 들어갈 거라는 일종의 경고성 문자였고, 이번에는 접수했다는 문자였다. 나는 남편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고 남편은 상황을 알아보고 연락을 준다고 했다.


나는 심장이 떨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일단은 마음을 조금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아이에게 시장에 갔다 온다고 말한 후 모자를 눌러쓰고 집을 나왔다. 시장 쪽으로 무작정 걸었다. 걸으면서 계속 생각했다. 뭐가 잘못되었을까, 나는 이제 아이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나갈 수 있을까.....


깊은 한숨을 내쉬며 걸었다. 온 내장까지 공기가 한번 들어갔다 나오는 그런 한숨들이었다. 결국 나는 또 복권집까지 걸어가 천 원짜리 복권 두 장을 사들고 들어왔다. 복권당첨 같은 기적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걸 알면서도, 절박한 내가 할 수 있는 건, 절박한 나의 마음을 잠시나마 달랠 수 있는 건 고작 그런 것, 나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을 기적을 믿는 것뿐이었다.


집에 돌아와 동전으로 복권을 긁었다. 역시 꽝이었다. 나는, 꽝인 복권을 구겨 쓰레기통에 버린 후 식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했다. 빨래거리를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건조기와 건조대에 있는 빨래를 걷어 갰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두려움과 불안으로 온 마음이 터질 것 같은 상황에서도 하루하루 해야 할 일들을 그 미션들을 해나가야 하는 게 버거웠다.


남편과 또 통화를 했다. 해결하는 중이라고 했다. 해결한 게 아니고 해결하는 중이라니.... 그건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남편은 다음날 오전에 다시 연락을 해보겠다고 했다. 나는 남편에게 이혼하자는 문자를 보냈다. 남편 때문에 더는 울고 싶지 않다는 말도 덧붙여서.


그날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무서운 꿈들을 많이 꾸었고 그래서 자주 깨었다. 어떤 꿈에서는 낯선 사람들 여럿이 들어와 우리 집에서 살게 되었다고 했고, 다른 꿈에서는 또 낯선 남자 둘이 집에 들어와 나를 성폭행하려고 했었다. 나는 아이에게 112로 신고전화를 하라고 소리치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다음날, 그러니까 어제 오전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그쪽에서 기간을 잘못 알고 있었다고, 일단 경매 처리는 보류시켜 놓았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 말은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또, 그 언젠가가 다음주가 될지 다음 달이 될지 다음 해가 될지 모르지만 그런 문자가 올 수 있고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나는 여전히 외줄 타기 하는 사람처럼, 언제 외줄에서 떨어질지 몰라 긴장과 불안, 두려움을 안고 사는 사람처럼, 그렇게 또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했다. 그때 내게 남은 건 한 푼도, 정말 한 푼도 없게 될 텐데 40대의 아줌마가 집도 절도 없이 아이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일을 그만두고 아이와 함께 외국에 나가서 몇 달 있다가 올까, 아니지 갔다가 오면 그때부터는 뭘 먹고살지? 또 아니지 외국에 가서 몇 달을 살려면 돈이 필요한데 그 돈은 어떻게 마련해서 가지? 친정 엄마네 집으로 가서 얹혀살아야 하나? 친정엄마랑은 스무 살부터 떨어져 살아 같이 있으면 서로 스트레스받는데 같이 살 수 있을까? 별별 생각을 다 해봤다.


남편이 어제(금요일) 저녁 9시쯤 전화해서 말했다.


"나와, 이자카야 가자."

"왔어?"

"응. 지금 주차장이야. 빨리 내려와."


남편은 온다는 이야기가 없었다. 와도 토요일 저녁에나 도착할 줄 알았다. 나는 속도 없이 반가웠다. 아이에게 아빠랑 잠시 이자카야에 갔다 온다고 말했다. 아이가 말했다.


"엄마 아빠는 이상하다. 맨날 치고받고 싸우면서 이자카야는 같이 가네"

"엄마 아빠가 언제 치고받고 싸웠어?"

"말로 그랬잖아."

그랬다. 우리는 치고받고 싸웠다. 남편은 아주 여러 가지, 창의적이고 다양한 경제적인 문제들을 일으켜 나를 자주 KO 시켰고, 나는 그런 남편에게 또 아주 상처되는 말만 골라 퍼부으며 남편을 쓰러지도록 했다.


나는 이번에는 꼭 남편과 이혼하고 말리라고 생각했다. 남편이 내려오면 평일에 한 번 시간 내서 내려오라고, 평일에 같이 가정법원에 가서 자녀양육동영상을 시청하고 확인서를 제출해야 협의이혼 접수가 가능하다고 하니 월요일이나 금요일쯤 일 빠지고 내려오라고 그 말을 할 참이었다.


그런데 내 기분, 남편이 서프라이즈로 내려와 같이 이자카야에 가자고 했을 때 내가 느낀 감정, 그 반가움, 그것 때문에 이번 결심도 결국엔 물거품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이 외줄에서 내려오지 않는 건 어쩌면 나의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keyword
이전 21화나는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