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한 첫 해외여행

- 무릎에 물이 찬 남편과, 오사카 -

by 휴지기

신혼여행 이후 한 번도 해외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다. 돈이 없고 시간이 없었으며, 그래서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그러다가 아이가 아홉 살이 되고, 주변 친구들이 대부분 해외에 나갔다 왔다는 것을 안 이후로 아이가 해외여행을 가자고 졸랐다. 항상 일이 먼저인 남편도 아이의 간절한 바람을 저버릴 수는 없었는지 항공권을 예약하자고 했다.


남편이 시간을 오래 뺄 수 없어 짧은 시간에 갔다 올 수 있는 곳을 생각해 보니 일본밖에 없었다. 놀이동산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있는 오사카에 가기로 했다. 여행의 모든 준비는 내가 했다. 남편은 여행 출발 일주일 전까지도 우리가 일본 어느 지역에 가는지 알지 못했다.


예약한 호텔을 막판에 바꾸고 유니버설 스튜디오 익스프레스 티켓이 거의 다 매진되어 예약하는 데 애를 먹기는 했지만 여행 준비는 비교적 순조로웠다. MBTI ISFP인 내가 여행 준비를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으나 아이와 함께하는 첫 해외여행 준비는 설레고 기쁜 일이었다.


여행 출발 4일 전쯤에 남편이 무릎이 아프다면서 절뚝거리며 들어왔다. 몸을 휙 돌릴 때 왼쪽 무릎에서 뚝 소리가 났고 그 이후로 통증이 심해 걷기가 힘들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근육 문제겠거니 하고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찜질을 해달라고 해서 찜질팩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올려준 게 다였다.


다음날도 남편의 무릎 통증은 나아지지 않았다. 유명하다는 부산의 뼈전문 한의원에 갔더니 무릎인대가 끊어졌을 거라고 했다고 했다. 그 다음날 다시 정형외과에 갔더니 무릎에 물이 찼다면서 MRI를 찍어봐야 한다고 했다고 했다. 다음날이 출국일이었다. 남편은 MRI를 찍지 못하고 오사카행 비행기에 올랐다.


나는, 솔직히 말하자면, 남편의 무릎도 걱정이었지만, 혹시 무릎 때문에 남편이 일본에 가지 못할까 봐 그게 더 걱정이었다. 항공권과 호텔, 유니버설 스튜디오 입장권, 익스프레스 티켓, 시내행 열차권까지 미리 다 구매해 두었는데 남편이 가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아이와 둘이 가야 하는 것인가, 이 여행 자체를 아예 취소해야 하는 것일까 별별 걱정이 다 들었다. 그래서 아픈 무릎을 이끌고 비행기에 오르는 남편을 보고 다행스러움과 고마움, 미안함, 원망과 같은 복잡한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 도착해서 길고 긴 입국절차를 마치니 저녁때가 되어 있었다. 첫째 날은 간단히 저녁을 먹고 호텔에 들어가 쉬었다.


이튿날,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가는 날이었다. 비가 내렸다. 호텔에서 유니버설 스튜디오까지 차로 한 시간 거리이니 그곳에는 비가 안 올 수도 있다는 희망으로 리무진을 타고 이동했다. 헛된 희망이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에도 비가 내렸다. 심지어 추웠다. 오사카는 한국보다 따뜻하다고 알고 있어서 옷을 가볍게 입고 갔는데 청바지를 입을 다리에 찬바람이 슝슝 들어왔다.


우산이 하나밖에 없었다. 나랑 아이는 우산을 쓰고 앞서 나갔고 남편은 비를 맞으며 뒤에 따라왔다. 나는 너무 사람이 많고 공간이 넓어서 시간 안에 미리 예약한 놀이기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무릎이 아픈 남편을 신경 쓰지 못했다.


사람들에 휩쓸려 놀이기구를 찾아가다가, 여기로 가는 게 맞나 싶어 잠시 멈춰 선 순간, 비를 맞으며 뒤따라오던 남편이 자기는 더는 못 가겠다고, 이제 허리까지도 너무 아프다고 했다. 자기는 혼자 어디 들어가서 쉬고 있을 테니 놀이기구는 아이와 둘이 타고 오라고. 남편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서운했다. 하지만 거기서 싸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이와 단둘이 가서 놀이기구를 탔다.


놀이기구를 타고 나오면서 남편에게 같이 점심을 먹자고 전화했는데 남편이 거절했다. 남편은 입국 때부터 줄곧 내가 자기를 버려두고 아이와 먼저 가버려 자신이 짐짝처럼 느껴졌다며 화를 냈고 나는 여행 와서 따로 밥을 먹는 게 말이 되냐며 화를 냈다. 결국 우리는 따로 밥을 먹었다.


남편은 먼저 호텔로 돌아가겠다고 했다가 리무진 타는 곳을 모르겠다며 다시 돌아와 우리를 기다렸다. 사람이 너무 많아 들어가 앉아있을 곳이 없어 남편은 길바닥에 앉아 기다렸다. 결국 우리는 익스프레스권을 끊어놓은 놀이기구 네 개밖에 타지 못했다. 호텔로 돌아갈 때쯤 비가 그쳤다. 남편의 기분도 나아진 것 같았다. 기념품 가게에서 아이 닌텐도 월드가 적힌 아이 티셔츠도 사고 인형들도 몇 개나 샀다. 사진 찍는 걸 그렇게 싫어하는 사람이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며 셀카를 마구 찍어대기 시작했다.


저녁으로 회를 먹고 싶었지만 근처에 갈 만한 곳이 없었다. 결국 우리는 호텔에 있는 중국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일본에 여행 와서, 참이슬을 시켜놓고 중국 음식을 먹는 상황이 웃기다면서 우리는 크게 웃었다. 아이는 좋아하는 콜라를 맘껏 마시면서 더 좋아하는 게임을 실컷 했고, 우리는 참이슬을 각 한 병씩 비우며 중국 음식이 맛있다며 칭찬했다. 남편은 사천식 국수를 먹더니 사천식 매운 요리가 딱 자기 입맛에 맞다며 좋아했다.


다음날은 오사카 시내에 가서 유명하다는 곳에 가 사진을 찍고 아이가 먹고 싶다는 오코노미야키를 먹고 예쁜 카페에 들어가 아기자기한 딸기 케이크를 먹고 돌아왔다. 특별할 것 없는 일정이었는데도 아이가 아주 좋아했다. 집으로 돌아가기 싫다고 여러 번 말해 조만간 또 다른 나라에도 가보자고 약속했다.


여행을 끝내고 집 근처 차돌박이 집에서 소주를 마시며 남편이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갔던 날에 대해 말했다. 그날, 비를 맞으면서 혼자 있는 몇 시간 동안 업무와 관련된 전화가 수도 없이 들어왔다고 했다. 전화 통화를 하다가 혼자 있다가 하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했었고, 자신이 많은 것을 놓치고 있다고 느꼈다고. 아주 열심히 살았지만, (우리 남편은 내가 평생 보아온 사람 중에 가장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 덕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일부 얻기도 했지만 다른 무언가는 너무 많이 놓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이 몸은 많이 고됐지만 자신에게는 큰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생각해 보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여행이었다. 남편이 여행 내내 아팠고 유니버설 스튜디오까지 가서 놀이기구를 네 개밖에 타지 못했으며 리무진을 놓쳐 16만 원이 넘는 돈을 지불하고 택시를 타야 했다. 아이는 호텔에서 내내 게임을 했고 남편이 그렇게 먹고 싶어 한 회를 먹지 못했으며 사람에 휩쓸려 다니느라 오사카를 잘 느끼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여행이 끝나는 것을 아주 아쉬워했다. 아이는 연신 여행 첫날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고, 남편은 오래간만에 푹 잤다고, 마음 편한 시간들이었다고 했다. 나는, 가족들과 새로운 공간에 가서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것이 즐거웠다. 무엇보다도 아이에게 오래 남을 만한 기억을 만들어준 것 같아 기쁘다.

keyword
이전 16화나는 오늘 나쁜 엄마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