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 또는 마시멜로 같은 아이는
추석 연휴의 첫날 아침. 지나가던 여름이 다시 돌아온 느낌이다. 한 달을 열대야 때문에 고생하다가 드디어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싶었는데 요 며칠 또 더위 때문에 깊은 잠을 자기가 힘들다. 자다가 더워 일어나 온 창문을 다 닫고 에어컨을 켠다. 두 시간쯤 뒤에 일어나 너무 서늘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전기요금이 걱정되어 에어컨을 끄고 다시 온 집안의 창문을 다 열어둔다. 침대에서 내려와 방바닥의 냉기를 빌려 잠시 또 얕은 잠에 든다. 이런 과정들이 반복되다 보니 요즘은 밤에 잠들어 아침에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오늘도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아침 6시가 조금 넘어서 일어났는데 더이상은 잠이 오지 않았다. 어제 밤 12시 넘어서 잠자리에 들었고 자다깨다를 세네번쯤 반복했으니 실제 잠들어있던 시간은 네시간 남짓이 되지 않을까 싶다. 조금 더 자려고 눈을 감고 누워있다가 더는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 일어나 필사를 시작했다.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테이프를 들으며 중국어를 공부하는 택시 운전기사 용대가 나오는 이야기, 오늘은 용대가 대놓고 자신을 흉보는 형수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 지 몰라 히죽 웃어버렸다는, 그 표정이 형편없어 보였다는 부분을 베껴썼다.
어제 잠자리에 들기 전 열 살 아들과 학교 생활에 관련된 대화를 하다가 요즘은 남자아이들이 아이를 툭툭 때린다는 말을 들었다. 물론 그 아이들이 어떤 악의를 가지고 일부러 괴롭히기 위해 우리 아이를 때리는 건 아니지만, 아이는 맞으면 아프기도 하고 기분이 나쁘기도 하다고 했다. 아이에게 그럴 땐 어떻게 반응하냐고 물었더니 그냥 가만히 있는다고 했다. 왜 그만하라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그러면 상대방 기분이 나빠할 것 같아 그랬다고 대답했다. 아이에게 반복해서 말했다.
"친구가 때리면 처음엔 그만하라고 해. 웃지 말구. 또 때리면 선생님에게 일러. 그래도 또 때리면 너도 한 대는 때려야 해. 네가 기분 나쁘다는 표현을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은 네가 기분이 나쁜 지 알지 못해. 그러니까 말해야 해. 기분 나쁘다고. 꼭."
그러다가 내가 아이였을 때가 생각났다. 나는 아주 내성적이고 얌전한 아이였다. 유치원 때 같은 반(개나리반인가 다람쥐반이었던 것 같다) 남자아이가 운동장에서 내 머리에 박스를 씌운 뒤 괴롭혔고, 머리에 박스가 씌워있어 앞을 보지 못하는 때 하필 또 목에 벌을 쏘였었다. 쉬는 시간이 끝났다는 종이 치고 그 아이는 혼자 유치원 교실로 뛰어 들어갔고, 나도 그냥 내 머리에 씌워져있던 박스를 벗어 던진 후 터덜터덜 교실로 들어갔다. 그게 끝이었다. 그 남자아이에게 가서 왜 그랬냐고 따지지도, 유치원 선생님에게 가서 그 남자아이가 나를 괴롭혔다고 이르지도, 집에 돌아와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지도 않았다. 결국 그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비밀, 뭐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말을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던 것 같다. 그 뒤로도 그 남자아이는 나를 자주 괴롭혔고, 나는 자주 힘들었지만 울거나 이르지 않았다.
또 하나,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그때 우리 학교에(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오랜 전통과 역사를 지닌 면 소재지의 시골 학교였다)한꺼번에 5명인가 6명의 아이들이 전학 왔었다. 성당에서 고아원 같은 곳을 운영하게 되었고, 그 고아원에 소속되게 된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은 모두 우리보다 나이가 많았고, 싸움을 잘했다. 그 아이들이 실제로 싸우는 장면은 보지 못했지만 서울에서 소매치기를 하던 아이들이다, 앵벌이 조직에 포함되어 있던 언니들이다, 이런 소문이 함께 왔던 터라 우리는 모두 그 아이들이 싸움을 잘한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들이 오고 얼마 되지 않아, 나와 다른 친구 한명은 그 아이들의 숙제를 대신 해주게 되었다. 특히 K라는 여자 아이의 숙제를 주로 해주어야 했다. 그림을 잘 그렸던 나는 그림 그리는 숙제를 중심으로, 글씨가 예뻤던 친구는 글씨 쓰는 숙제를 중심으로 해주게 되었다. 그 아이들은 우리들에게 착하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싫다는 말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숙제를 너무 해주기 싫어 그림을 일부러 대충 그려 숙제의 질을 떨어뜨릴지언정 나는 '싫어'라는 말을 한 번도 못했다. 그 덕분에 나는 일년 넘게 학교에 가자마자 남의 숙제를 해야했다. 내가 그때 '싫어'라는 표현을 했더라면 적어도 그 일년은 내가 실제로 보낸 일년보다는 덜 불행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우리 아이가 나와 같은 학창 시절을 보내지 않길 오래 전부터 바라왔었다. 남들 눈치보지 말고 좋고 싫음을 표현할 수 있고, 남들 감정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더 많이 들어다볼 수 있는 아이로 자라나기를 바랐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쉽지 않은가 보다. 그래서 계속,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말해줄 생각이다.
"싫으면 싫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해. 그것도 용기야."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