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겨울 방학이라 아이 오후 시간이 비었다. 친하게 지내는 아이 친구 엄마가 함께 도서관에 가자고 해서 시간도 때울 겸 시립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었다. 아이 친구는 조그만 도서관 테이블 의자에 앉아서, 아이는 그 옆에 엎드려서 오밀조밀 책 읽는 모습이 귀여워 보였다. 아이들이 얌전히 책을 읽었던 이유는 책이 재미있어서라기보다 책을 잘 읽으면 매점에서 컵라면을 사주겠다는 엄마들의 유혹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약속된 시간만큼 열심히 책을 읽었고 우리는 각 다섯 권씩의 책을 대출해가기로 했다.
내가 도서관 카드를 가지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같이 간 아이 친구 엄마 카드 두 개로 책을 대출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빌려 가고 싶은 책을 십 분 동안 열심히 골라 데스크로 가 대출을 시도했다. 아이 친구가 먼저 대출하고 아이가 대출하려고 카드를 내밀자 대출 불가 카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작은 도서관에서 쓰던 거라 바로 될 줄 알았는데 시립 도서관에서 대출을 해가려면 카드 주인인 아이 친구 아빠가 직접 와서 등록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아이는 실망했고 나는 아이를 달랬다. ‘집에 도서관에서 빌려놓은 책이 여러 권 있으니 그 책을 읽으면 되겠다, 내일 엄마랑 다시 와서 빌리자’ 같은 말들로 아이를 달랬다. 아이 친구가 두어 권쯤을 다시 반납하고 아이가 원하는 책을 그만큼 빌리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기는 했으나 내 카드가 아니라 그렇게까지 말하기가 미안해서 말하지 않았다.
아이는 아쉬워했지만, 다행히 곧 대출을 포기했고, 컵라면을 먹자면서 2층 매점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계단을 다 올라간 순간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매점 불이 꺼져 있었던 것이다. 매점은 4시까지였고 그때는 이미 5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아이는 또 실망했다. 책도 못 빌렸는데 컵라면도 못 먹는다고 투덜댔다.
우리는 고민 끝에 동네에 있는 분식점에 가서 라면과 김밥을 먹기로 했다. 도서관에서 분식집으로 가는 20여 분 동안 아이는 약간 뾰로통했고 말이 별로 없었다. 세 시간이든 네 시간이든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잠도 안 자고 조잘거리는 아이였기 때문에 아이의 침묵에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받아들이는 수밖에.
아이는 분식점에 거의 다 와서 악몽 이야기를 했다. 아이의 꿈속에서 내가 아이 친구만 기차를 타러 가게 하고 아이는 못 타게 했다는 것이다. 그 악몽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는 서운한 감정을 내비쳤는데 아이의 꿈속에서 한 잘못까지 내가 미안해할 필요가 있나 싶어 그랬어, 하고 말았다.
분식집에 도착해 라면과 김밥을 먹으면서 아이는 계속 기분이 좋지 않은 티를 냈다. 패딩을 벗으라고 해도 춥다고 벗지 않았고 뭐라고 질문해도 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하는 아이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집에 와서 같이 있는 사람들 기분 안 좋게 왜 그렇게 말도 안 하고 있었냐고 아이를 짧게 혼내고 씻으라고 했다.
아이는 삼 일 전부터 혼자 샤워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혼자 씻는 게 미덥지 못해 몸을 헹구고 엄마를 부르라고 해도 아이는 혼자 하고 싶다고 나를 부르지 않는다. 샤워기 소리가 끝나 아이에게 들어가 등에 로션을 발라주려고 했는데 아이가 혼자 한다고 가라고 했다. 나는 순간, 화가 나서 그럼 너 혼자 알아서 하라면서 소리치고 나왔다. 나도 계속 뿌루퉁한 태도로 저녁 식사 분위기를 불편하게 만든 아이에게 난 화가 다 풀리지 않았었던 것 같다.
아이는 혼자 로션을 바르고 옷을 입고 방에 들어갔다. 잘 시간이 돼서 아이는 내가 있는 방으로 넘어왔고 나는, 혼자 알아서 자라고 말했다. 자기 방으로 다시 갔지만 아이가 혼자 자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자기가 혼자 자야 한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무섭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 옆에 누워있다가 잠이 들면 아이 방에서 나오곤 했다.
십 분쯤 뒤 아이가 다시 와서 울면서 무섭다고 했다. 나는 아이를 안고 잠이 들었다. 아이를 안고 잠들기 전에, 아이에게 나쁜 말들을 쏟아냈다. 차마 이곳에 기록하지도 못할 말들을. 그리고 그 말들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했다. 나는 분노했고 서러웠고 원망스러웠는데, 그것은 아이 때문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가 감정 버튼을 눌렀고, 내 옆에 있는 가장 약한 상대인 아이에게 그 감정들을 쏟아낸 것이었다. 나는 비겁하고 나쁜 엄마였다.
팔베개를 해 아이를 옆에 눕혔다. 아이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고 아이의 냄새를 맡았다. 사랑한다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아이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했다. 아이는 할 말이 없다더니 조금 있다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직 8살밖에 안 된 어린애인데, 엄마가 뭘 잘못했는지 설명도 안 해주고 혼내.”
자꾸 까먹는다. 이 아이가 8살이라는 걸. 어린아이라는 걸. 그래서 실수한 게 있으면 차근차근 설명해서 앞으로 그러지 않도록 하면 된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또 자꾸 까먹는다. 내가 어른이라는 걸. 나는 아이 엄마라는 걸. 나는 아이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가르쳐야 한다는 걸 말이다.
아이는 힘들었는지 곧 잠들었다. 아이의 가슴이 깊고 느리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걸 오래 바라봤다. 꿈을 꾸고 있을까, 혹시나 이번에도 악몽을 꾸고 꿈 때문에 나를 원망한다면 이번엔 꼭 사과해주리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