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기다리며

by 휴지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매일 등하교를 함께 하고 있다. 학교가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횡단보도마다 시니어 클럽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교통지도를 해주시지만, 이제 갓 여덟 살이 된 어린아이가 혼자 학교까지 걸어가는 게 아직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나 말고도 많은 부모, 대부분은 엄마들이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또 데리고 온다.

오늘도 아이와 함께 하교를 하기 위해 학교 정문 앞에 도착했다.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서 5분 거리도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항상 15분 전에는 집을 나선다. 그래서 학교 정문에서 꽤 오랜 시간을 기다린다. 혹시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겨 다른 날보다 일찍 학교에서 나온 아이가 어른들 사이에 엄마가 없어 당황하고 불안해할까 봐 유난을 떠는 것이다. 또한 아이 입학을 핑계로 휴직까지 했으니 나도 내가 할 일을 최선을 다해 완벽하게 해야 했다. 그래야 남편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떳떳할 것 같았다.

엄마들은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한다. 몇 반 담임 선생님은 벌써 학급 밴드를 만들었다더라, 어느 반 담임은 병가를 쓰고 출근을 안 하고 있는데 아마 코로나에 걸린 것 같다더라, 피아노 학원은 아파트 건너편 어디가 잘 가르친다더라 등 대화 소재는 대부분 아이들의 학교생활과 사교육에 관련된 것들이다. 엄마들의 모임은 주로 유치원에서부터 이어져 온 것이고 나는 작년까지는 워킹맘이었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간혹 아는 사람이 있으면 반갑게 인사를 나누기도 하지만 주로 휴대폰으로 알아도 되고 몰라도 되는 연예계 가십거리를 읽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12시 50분이 조금 넘어 작은 술렁거림의 기운이 느껴진다. 아이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학교 건물이 정문보다 낮은 지대에 위치해 있어 아이들이 정문까지 오려면 기역 자로 구부러진 계단을 올라와야 한다. 자기 키만 한 가방을 어깨에 메고 큼지막한 실내화 주머니와 우산을 든 아이들이 올라오고 있다. 비는 내리지 않지만 오늘 비예보가 있었어서 아침에 우산을 챙겨간 아이들이 제법 있었다.

어떤 남자아이는 우산을 펼쳐 쓰고 있었는데, 우산살을 끝까지 펴지 못해 반쯤 접혀 있는 걸 그대로 쓴 채 올라오고 있었다. 아이들은 계단을 올라오면서 자신을 맞아줄 엄마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그러면 엄마들은 보고 있다가 ‘누구야, 여기!’라며 소리쳐 부르기도 한다. 3월 첫째 주에는 학교에 다녀오는 아이가 신기한지 사진을 찍어 기념하는 엄마들도 많았는데 이제는 이게 일상이 되어버려 사진까지 찍는 사람은 없다.

우리 아이는 또래 친구들보다 키가 크다. 우리 아이가 학교 가방을 메고 실내화 주머니를 들고 있어도 이렇게 조그만 것이 너무 큰 가방을 짊어지고 있구나 싶어 안쓰러운데 다른 아이들의 엄마들은 더할 것 같다. 지금은 입학 초기라 교과서를 받기 전이어서 가방에 든 것이 물통과 안내문, 그날 읽을 책이 전부인데도 가방은 무겁게 느껴진다. 교과서를 받고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하면 아이의 책가방은 더 무거워질 것이다.

계단을 뛰어 올라오며 두리번거려 엄마를 찾는 아이들은 이제 세상에 나온 지 6년, 많아야 7년이 된다. 이 어린아이들은 벌써 책가방을 짊어지고 학교에 가서 오늘 해야 할 일을 해냈을 것이다. 지금은 새롭고 긴장되는 학교생활을 마치고 계단을 뛰어 올라오면 엄마가 환하게 웃으며 기다리고 있지만 엄마가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기다려줄 리 만무하다. 며칠, 혹은 몇 달이 지나면 혼자서 학교에 가고 혼자서 학교에서 돌아올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고 계단을 올라와도 엄마가 기다리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점차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성장해 갈 것이다. 가끔은 학교에서 있었던 힘든 일들을, 아픈 마음들을 안고 혼자서 위로하며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없는 슬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결혼을 하고서도 아이를 갖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생겨났고, 두려웠다.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내 뱃속에 또 다른 생명이 있다니, 믿기지도 않았고 자신도 없었다. 살면서 종종 그런 마음도 가졌었다. 없어졌으면 좋겠다. 처음부터 ‘나’라는 존재가 없었던 것처럼 아무에게도 상처 주지 않고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않고 그냥 이대로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

물론 사는 것이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매번 할 만큼 고통의 연속일 리 없지만, 잠깐 행복하고 오래 버텨야 하며 고통은 끊이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런데 아이가 더 이상 아기가 아니고 학생이 되었으니 자신이 혼자서 감내하며 걸어가야 하는 순간이 많아졌다.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계단을 올라와도 이제 혼자서 다음 시간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누구나 그렇게 살아간다. 우리 아이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이 앞에 놓인, 버티며 걸어가야 할 많은 시간 때문에 미안하고 안쓰럽다.

엄마를 찾는 아이들의 미소가 순하다. 크게 상처받지 않은 순하고 맑은 웃음들이다. 부디 저 웃음이 오래오래 가기를, 엄마를 찾아 뛰어오는 아이의 몸을 엄마가 자주 안아줄 수 있기를,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오직 버텨내야 하는 순간에도 엄마를 보며 위안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가끔 아이가 스스로를 누구보다도 초라하고 남루하다고 느낄 때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다고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하루하루 살아갈 때, 내가 아이에게 한순간이라도 위로가 될 수 있는 사람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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