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싱어송라이터가 되었으면 좋겠어

by 휴지기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서른 살 때였다. 낮잠을 자고 일어난 토요일 늦은 오후였고, 할 일이 없어 TV를 틀었다. 점점 어두워져 가고 있었지만 일어나서 불을 켜기는 귀찮았다. 눈 버릴 텐데 걱정하면서도 어둑어둑한 방 안에서, 조그만 TV에서 나오는 불빛만 바라보고 있었다.


TV에서는 무한도전 서해안고속도로 가요제가 막 시작하고 있었다. 무한도전 멤버들과 가수들이 팀을 무대에서 자신들이 만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정재형, 싸이, 지드래곤 등의 가수들이 나왔고, 나는 그때도 지금처럼 이적을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적과 유재석 편을 가장 집중해서 시청했다.


유재석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면 그걸 이적이 가사로 바꾸는 식으로 노래가 만들어졌다. 그렇게 함께 만든 ‘압구정 날라리’라는 노래를 이적과 유재석이 화려한 옷을 입고 춤을 추며 부르는 걸 보고 역시 이적이구나, 이 사람은 이렇게 한없이 가벼워질 수도 있는 사람이구나 생각했었다.


모든 팀의 무대가 끝나고 클로징 멘트가 나왔다. 이제 방에 불이나 켜야겠다 생각했던 순간, 갑자기 유재석의 목소리와 피아노 선율이 들려왔다.


나 스무 살 적에 하루를 견디고 불안한 잠자리에 누울 때면 내일 뭐 하지 내일 뭐 하지 걱정을 했지

두 눈을 감아도 통 잠은 안 오고 가슴은 아프도록 답답할 때 난 왜 안 되지 왜 난 안 되지 되뇌었지...


노래를 듣는데, 눈물이 나왔다. 어두운 방 벽에 기대어 노래가 끝날 때까지 울었다.


왜 그랬을까. 울면서도 생각했다. 왜 눈물이 날까, 이렇게 많이. 이렇게 끊임없이. 그때 나는 내일 뭐 할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도, 가슴이 아프도록 답답한 상태도 아니었다. 연인과 막 헤어진 것도 아니었고, 누군가를 혼자서 마음에 두고 있지도 않았다. 난 그냥, 토요일에 할 일이 없어 빈둥거리던, 그래서 조금 심심하고 쓸쓸하던 서른 살 직장인이었을 뿐이었다.


노래는 참 신기하다. 가만히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감정을 움직인다. 나는 이적과 김윤아, 김광석을 즐겨 듣는다. 팝송은 잘 듣지 않는다. 들으려고 노력해봤지만 가사가 들리지 않아 감정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이적의 ‘다행이다’로 결혼생활을 시작했고,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로 결혼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김윤아의 ‘야상곡(夜想曲)’을 듣고 애달파하고, ‘Going Home’을 들으며 위로받는다. 그리고 김광석의 많은 노래들을 들으며, 쓸쓸해진다.


노래를 만든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생각해본다. 다른 사람들이 내 노래를 듣고 위로를 받고 힘을 얻었다고 말한다면, 그걸 듣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나도 노래를 한 번 만들어볼까 생각했지만 나는 다룰 줄 아는 악기가 하나도 없다. 피아노나 기타를 연주할 줄 알아야 간단한 작곡이라도 할 수 있을 텐데, 작곡을 해야 가사도 붙일 수 있을 텐데 아쉽기만 하다. 어렸을 때 피아노 학원을 다니지 않고 주산학원에 다녔던 게 너무나 안타깝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가 싱어송라이터가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이게 얼마나 헛된 바람인지 알고 있다. 부모의 못다 이룬 꿈을 자식에게 요구하는 고루하고 진부하며 불가능한 생각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도, 혹시나 가능하다면, 이 아이가 음악을 좋아하고 감수성이 뛰어나며 글 쓰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노래를 잘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주먹밥을 만들며 ‘야상곡(夜想曲)’을 들었다. 햇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아침에 듣는 야상곡도, 밤에 듣는 것만큼이나 애달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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