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만남, 이어지는 이야기
서연은 화분 속 허브를 새 흙으로 옮겨 심은 그날 이후, 매일 아침 가게에 도착하면 뒷마당에 들러 새로 심은 화분들을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소녀가 떠난 뒤로도 그녀는 그 허브의 상태를 주의 깊게 살피며, 혹시라도 잘못될까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허브의 잎사귀가 점차 짙은 초록빛을 되찾아갔다.
“정말 잘 살아나고 있구나.”
서연은 손가락으로 살짝 허브의 잎을 만지며 혼잣말했다. 작은 생명의 회복이 그녀에게 주는 감동은 예상보다 컸다. 이 과정은 마치 자신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날 오후, 가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서연이 문을 열자, 지난번 소녀가 아닌 또 다른 손님이 서 있었다. 그는 중년의 남성이었고, 손에 든 종이 봉투를 소중히 안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곳에서 식물 상담을 받을 수 있다고 들어서 왔습니다.”
서연은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들어오세요. 어떤 문제인가요?”
남성은 봉투를 열어 작고 시든 다육식물을 꺼냈다.
“이 식물은 제 딸이 남기고 간 건데, 돌보는 방법을 몰라서 점점 상태가 나빠지더군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서...”
서연은 식물을 조심스럽게 받아들고 상태를 살폈다. 다육식물은 비교적 관리가 쉬운 편이지만, 과도한 물이나 지나치게 어두운 환경에서는 금방 약해질 수 있었다. 남성의 눈에는 깊은 미안함이 담겨 있었다.
“괜찮아요. 이 식물도 다시 건강해질 수 있어요. 우리가 조금만 신경 쓰면 됩니다.”
그녀는 남성을 뒷마당으로 안내해 식물을 적절히 다듬고 새 화분으로 옮겨 심는 과정을 설명했다. 남성은 그녀의 세심한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따라 했다. 두 사람은 함께 식물을 돌보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사실 이 식물은 딸이 집을 떠나기 전에 제게 맡기고 간 거예요. 제가 잘 키워달라고 부탁하더군요. 그런데 제가 서툴러서...”
남성의 말투에는 딸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 있었다. 서연은 그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 식물은 분명히 아버님의 마음을 알고 있을 거예요. 이렇게 다시 살아날 기회를 주셨으니까요. 앞으로는 잘 키우실 수 있을 거예요.”
남성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떠나기 전, 그녀에게 진심 어린 감사의 말을 전했다.
남성이 떠난 뒤, 서연은 가게의 창가에 앉아 한참 동안 그와 나눈 대화를 되새겼다. 씨앗을 심는다는 것이 단지 식물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야기와 마음을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날 저녁, 그녀는 뒷마당에 있는 작은 테이블에 앉아 씨앗 병을 꺼냈다. 병 속에 남아 있는 씨앗들을 보며 그녀는 작은 메모지를 꺼내 한 문장을 적었다.
“이 씨앗은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을 담고 있다.”
그녀는 메모지를 씨앗 병 옆에 두고, 자신이 만난 소녀와 남성을 떠올리며 다시 붓을 들었다. 이번에는 서로 다른 씨앗들이 함께 자라나는 모습을 그렸다. 캔버스 위에는 다양한 색깔과 형태의 식물들이 어우러져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사람들의 손이 모여 하나의 큰 나무를 떠받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림을 완성한 서연은 자신이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점점 더 확신이 생겼다. 그녀는 단순히 식물을 가꾸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키워가는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씨앗들이 자라면서 나도, 그리고 우리 모두도 함께 자라는 거야.”
그녀의 여정은 이제 막 진정한 첫걸음을 내딛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