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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만별 Oct 26. 2022

26화. 중독에서 나를 건져 올린 두 가지

글쓰기, 그리고 산책

 나는 남는 시간에 집에서 술이나 마시려고 소중한 직장을 떠난 것이 아니다. 엄마가 가장 필요한 시기에 내 아이를 잘 키워 보겠다고 가정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랬던 내가 정작 집에 머물며 아이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최악의 모습(키친 드링커)'으로 허송세월하고 있었다.


 사사키 후미오의 <나는 습관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본인에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사람의 하루는 습관으로 채워져 있다. 때문에 새로운 습관을 추가하기 위해서는 오래된 습관을 퇴장시켜야 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을 일'을 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자녀가 배우지 않았으면 하는 일, 끝난 후에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고 후회하는 일, 돌이켜봤을 때 커다란 배움을 얻었다고 느낄 수 없는 일 등.


 나의 경우, 위의 '하지 않을 일'의 세 가지 예에 딱 들어맞는 것이 바로 '음주'였다.


 폴 윌리엄스와 트레이시 잭슨이 쓴 <습관의 감옥>에는 알코올 중독자의 뼈를 때리는 무시무시한 구절이 나온다.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끊고 절제를 맹세하면 꾸준히 반복되던 매일의 일과에 갑자기 커다란 빈 공간이 생긴다. 그에게 평온함과 안정감을 선사하던 술병이 사라져 버렸다.
스스로 행하던 투약 의식이 사라진 자리에 다른 것을 대체해 넣지 않으면 예전의 습관이 다시 살아날 것이다.


 

 당장 알코올 투약 의식을 대체할 행동을 찾지 않으면 나는 계속해서 찬장을 뒤져 요리용 청주를 입에 털어 넣거나, 남편이 아이를 씻기는 동안 세탁실에 숨어서 소주를 홀짝홀짝 삼키며 살아야 한다!


 나는 전날 마신 술 때문에 시체처럼 누워만 있던 오전과 술을 들이켜던 오후에 새로운 활동을 심기로 했다.


 

 10am. 글쓰기

 아이를 등원시키자마자 동네 커피숍에 자리를 잡고 앉아 노트북을 켠다. 백지 위에서 깜빡이며 명령을 기다리던 작은 커서(cursor)는 서너 시간 동안 쉬지 않고 까만 글자를 토해낸다. 눅눅한 감정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저장하고 나면 허기가 밀려온다.



 2pm. 산책

 집에 돌아와 점심을 든든히 챙겨 먹고 집 앞 하천으로 향한다. 오감을 열고 한 발 한 발걸음을 내디디면 식곤증으로 나른해졌던 의식이 기지개를 켠다. 걸으면서 매일의 온도와 습도를 피부로 측정한다. 축축한 날엔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걷다가 풀 냄새가 훅 끼치는 곳에서 잠시 머문다. 맑은 날엔 세로토닌이 퐁퐁 샘솟아 빠른 속도로 오랫동안 걷는다(햇빛을 충분히 쬐는 건 우울감 완화에 도움이 된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보폭을 맞춰 걷는 것만으로도 혼자가 아니라는 기분이 든다. 어느 순간 나는 같은 방향을 향해 걸으며 서로의 행보에 힘을 주고받는 산책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술을 찾던 내가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방식(글쓰기와 산책)으로 스트레스를 조절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후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우리 집에서 무전취식을 일삼던 '키친 드링커'는 보따리를 싸서 집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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