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까만별 Oct 26. 2022

25화. 환경이 바뀌면 사람도 바뀐다

낡은 습관 뜯어내기

 우울감과 알코올이 만나면 (부정적인 쪽으로) 얼마나 큰 시너지 효과가 생기는지 온몸으로 경험했다. 영원히 만신창이 '키친 드링커'로 살지, 정신 온전한 '아내, 엄마, 나'로 살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었다.




 집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에 머물면 기존의 나와는 조금 달리 생활해 보고픈 마음, 적당한 긴장감을 가지고 하루를 성실히 살고픈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수년 전 아이와 함께 제주도에서 한 달을 살았을 때, 일 년에 한두 번 지방에 있는 외가댁에 일주일씩 머물 때가 그렇다.


 묵은 껍질을 떨쳐내고 낯선 장소로 거처를 옮겼을 때의 기분 좋은 흥분을 느끼기 위해서 이사를 감행할 수는 없으니 벽지를 바꾸기로 했다.

 낙서 하나, 얼룩 한 점 없는 새하얀 벽지를 뜯어내고 아이 방은 연한 노란색으로, 서재는 청록색으로 교체했다. 에너지가 소진되면 노란 배경의 아이 방으로 가서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며 활력을 얻고, 마음의 안정이 필요한 순간에는 톤 다운된 서재로 들어가 책장에서 법정 스님의 <좋은 말씀>을 꺼내 읽으며 고요함을 만끽했다.


 정리 컨설턴트 윤선현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순간 정리를 시작했다>에서 ‘오랫동안 물건이 한 자리에 있게 되면 그것 자체가 관성이 되어 존재가치를 잃어버린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한 자리에 있으면 삶의 반경이 줄고, 제 스스로 변하지 않는 배경처럼 생명력을 잃어가게 된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익숙함에서 벗어났을 때 본연의 가치를 되찾거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벽지를 교체하고, 가구를 새롭게 배치하고, 쿰쿰한 먼지 냄새가 앉은 물건들을 망설임 없이 내다 버리는 행위는 내 피부에 딱딱하게 말라 붙은 낡은 습관을 떨쳐내는 것과 같았다.


 혼자 술을 퍼마시던 식탁에 앉아 간결해진 공간을 빙 둘러보며 또 다른 도전 목록들을 그리는 나 자신이 낯설면서도 대견했다.


 변화는, 지금부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