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w the truth
인생 5년 차의 아이가 느낀 세상과 25년 차의 청년이 느낀 세상은 너무나도 달랐다. 청년이 아이였을 때, 누군가는 얘기를 해주었어야 했다. 사람이 태어나면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고. 그러므로 '돈 벌기'는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반드시 해야만 하는 평생의 과제라고. 어릴 때부터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공포의 쓴맛을 보게 된다고.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주변에서도 왜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았던 걸까? 아니 어쩌면, 세상은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고 있었지만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매일 당연한 듯이 느꼈던 안락함과 겉으로 보이는 평화로움에 교묘히 가려진 그 '신호'를.
모든 인간은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 아니, 성인이 되고 난 후에도 그 신호에 노출된다. 누군가는 10대의 어린 나이에도 그것을 알아채지만, 누군가는 30대가 넘어서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지만 일찍 알아챈다고 해서 다행이라고 말할 순 없다. 아직 불편한 진실을 감내할 준비가 안 된 이들은 멘탈이 터져버릴 수 있으니까.
청년이 바로 그랬다. 나이를 먹고 보니 우리네 인생에 돈이 정말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더욱더 뼈저리게 느꼈다. 밖을 나가면 돈(교통비), 밥을 먹을 때 돈(식비), 샤워를 할 때 돈(수도요금), TV를 보면 돈(수신료), 휴대폰을 쓰면 돈(통신료), 추운 겨울에 보일러를 틀면 돈(가스요금), 더운 여름에 냉방기를 틀면 돈(전기요금), 학교를 다니면 돈(학비), 집에서 살고 있으면 돈(관리비), 생활하면 돈(생활비)이 나간다. 모든 것이 돈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돈을 빼면 생각할 수 있는 선택지가 거의 없었다. 심지어 꿈을 선택할 때조차 대다수가 돈을 기준으로 가치를 판단하고 현실에 적용했다.
청년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돈에 '구속된' 삶을 살고 있었다. 친구들, 부모님, 이모, 삼촌, 고모, 사촌 그리고 사돈에 팔촌까지 그 누구도 돈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라고. 인간 세상은 원래 그랬고, 그런 곳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하지만 청년은 그 당연한 사실을 몰랐다. 물론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으나, 솔직히 이 정도까지 일 줄은 정말 몰랐다. 그래서 이런 말이 나올 수밖에.
아니, 진짜 세상이 왜 이래?
청년의 생각과 상관없이 세상은 그런 곳이었다. 세상은 돈을 가진 자들을 '부자', '상류층', '성공한 사람'이라 불렀다. 반대로 돈을 가지지 못한 자들을 '서민', '하층민',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불렀다. 돈을 가지고 있어도 자유가 없는 이들을 '중산층'으로 불렀다.
신분제가 옛날 옛적에 사라졌다고 하나, 청년이 살아가는 이 세상은 명백한 신분사회였다. 사람들은 돈의 많고 적음으로 각자의 등급을 매겼다. 하지만 이것을 대놓고 드러내면서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쉬쉬하며 조용히 속으로만 서로를 주시하고 있을 뿐.
갑자기 청년은 짜증이 났다. 모든 것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그렇게 듣기 쉬웠던 칭찬들이 이제는 최선을 다해도 1년에 한두 번 들을까 말까였다. 어릴 때는 가만히 있어도 노란색 할머니가 다가왔지만, 지금은 얼마 없는 파란색 할아버지마저 주변에서 빼앗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청년은 힘이 없다. 그가 유일하게 가진 것은 젊음. 그러나 그 젊음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몰랐다. 갈수록 사는 것이 버거워진다. 미래는 답답하고 불안하기만 하다. 언제부턴가 깨닫게 된 '진실'을 마주한 뒤부터 날이 갈수록 무기력해져 가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그 모습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현실을 외면한다. 그렇게 젊음을 낭비한다. 그렇게 시간은 또 흐른다.
쌀쌀한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일어난 청년은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다. 쥐도 새도 모르게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어있었다. 그렇다. 청년은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채로 서른을 맞이한다. 인생을 회피해왔던 지난날들이 모여 어느새 5년이란 어마어마한 시간이 흘러버린 것이었다.
인생 30년 차. 현실을 회피할 순 있었지만 현실을 회피한 결과는 회피할 수 없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고, 세상이 주는 무언의 압박에 숨통이 조여왔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았다. 설사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은 그것대로 괴로웠다.
청년은 좋든 싫든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었다. 앞으로 계속해서 현실을 외면하고 살 것인지, 아니면 불편한 진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인생을 새롭게 시작할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