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권 당첨금 66,433,774원
생전 처음 보는 숫자와 쉼표의 조합에 청년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는 당첨이라는 현실을 완전히 받아들인 후, 굶주림에 침 흘리는 짐승처럼 헐레벌떡 은행으로 달려갔다. 번호표를 뽑고 무표정으로 기다리는 대기자들 사이에서, 홀로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은 누가 봐도 명백한 '당첨자'였다.
22%에 달하는 세금을 공제한 실수령액은 약 5,180만 원. 30년 인생을 통틀어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는 큰돈이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했던가. 불과 얼마 전까지 야박하게만 느껴졌던 세상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참 아름답게 보였다. 언제부터인가 모든 인간을 옮아 매고 있는, 성인이 된 모두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돈 문제'로부터 청년은 왠지 해방된 느낌을 받았다.
청년은 돈이 있음으로 인해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풍요로워질 수 있음을 온몸으로 느낀다. 돈이 있는 청춘은 마치 아무 걱정 없는 어린 시절과 비슷했다. 아이가 떼를 쓰면 주변 사람들이 걱정하며 아이의 부탁을 다 들어주듯이, 돈으로 조금만 베풀어도 사람들은 그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너무 쉽게 순종했다.
'단순히 종이 쪼가리가 몇 천장 있을 뿐인데, 세상살이가 이렇게 쉬워지다니.'
어이없을 정도로 쉬워진 세상에 청년은 실소를 터뜨린다. 자신과 같이 별 볼일 없는 사람도 돈을 가지면 인생이 쉬워지는구나 싶었다. 이 말은 즉,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지금 당장 돈이 없으면' 세상살이가 어려워진다는 뜻과 같았다. 이것이 정녕 인간 세상이란 말인가.
그러나 몇천만 원이 생겼다고 해서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큰돈이 들어오긴 했지만 어쩌면, 큰돈이 아닐 수도 있었다. 큰돈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사실 청년은 '더 큰돈'을 원했다. 돈 걱정, 돈 문제, 돈 없음에 대한 서러움을 완전히 끝내버릴 수 있는 엄청난 액수의 돈을.
과연 그만한 돈을 자신이 가질 수 있을까? 아니, 가질 자격이 있을까? 이러한 질문과는 별개로, 확실한 사실 한 가지는 그가 조금씩 '욕망'에 눈뜨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청년 주변의 사람들,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 그러한 변화를 인지하지 못한다.
세상이 그러하듯 또 인간이 그러하듯, 청년도 어느새 두 눈에 불을 켜고 '돈 되는 일'만을 찾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이미 가진 것에 대한 만족감은 사라졌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그동안 쌓여왔던 '돈이 되지 않는 것들'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다. 그것도 아주 적나라하게.
"어떤 일이 돈이 될까?"
"돈 안 되는 일은 개나 줘 버려!"
"돈, 돈, 돈이 최고야!"
복권 당첨 이후, '돈맛'을 진하게 느낀 청년은 세상 모든 것을 돈으로 판단하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20대 시절 즐겁게 가지고 놀았던 '돈이 안 되는' 기타를 폐기 처분한다. 글쓰기와 관련된 공책과 메모장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또, 돈이 안 될 것 같은 인간관계 모조리 정리해버린다.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친 고양이 한 마리에게는 귀여움을 느끼기보다 '얼마일까?'를 먼저 생각한다. 새롭게 만난 사람들의 목소리, 눈빛, 말투, 억양, 몸짓, 인격이 보이지 않고 그들이 얼마의 돈을 가지고 있는지만 궁금해한다. 누군가 큰돈을 벌었다고 하면 질투심에 불타올라 잠을 이루지 못한다.
청년은 '돈을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최고의 승자라고 굳게 믿었다. 그렇게 믿는 이유는 명확했다. 사람이 태어나면 돈이 드니까. 사람이 죽을 때도 돈이 드니까. 사람이 살아가는 데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지만, 돈이 있으면 거의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니까. 만남도, 결혼도, 생활도, 노후도 그 모든 일상을 포함한 이 세상의 시스템은 돈 위에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닌, 사람 위에 돈이 있다는 걸 말해주니까. 돈이 곧 인격이자 명예며, 사랑이자 친구였다.
세상이 청년에게 가르쳐 준 것은 그런 것이었을까.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 청년은 깜짝 놀란다.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간 눈, 항상 배불리 먹어 툭 튀어나온 배, 욕망이 가득한 턱살과 지나치게 창백한 피부까지. 그 누구도 청년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지만(줄 수 없었지만), 거울 속에 보이는 사람은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무엇이 청년을 이 지경으로 내몬 것일까. 그가 이렇게 된 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영혼이 없어서였다. 취미도, 친구도, 대화도, 그 어떤 일상의 즐거움도 없이 오직 돈만 보고 달려온 잠깐의 시간은 청년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돈 되는 일'만을 찾았던 행위가 오히려 그의 돈과 정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러한 상태로 얼마 뒤, 청년은 더 충격적인 현실을 목격한다.
복권 당첨금을 수령한 지 5개월과 보름이 조금 지난 시점. 그의 통장잔고는 200만 원이 채 남아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