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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프 힐 링 Aug 23. 2021

그냥이라는 말

시인 조동례의 [어처구니 사랑] 중 한편




 한영애 가수의 ‘누구 없소’를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가사 중에서도 ‘그냥 한번 불러봤소’를 많이 읊조린 것 같다. 70년대 금지곡으로 분류되어 허밍으로만 불러야 했던 서글픈 역사가 있긴 했으나, 바래기도 전에 리메이크되어 대중의 사랑을 받았었다. 그러했으므로 더욱 가슴을 후벼 판 곡이 어디 이뿐일까마는 아무튼 그냥 불러보고 싶은 이름, 그냥 불러보고 싶은 노래, 그냥 웃거나 울고 싶은 날들이 많았을 것이다.


 가끔은 무심결에 채널을 이리저리 넘기는 경우가 있다. 그날도 그랬었나 보다. 리모컨을 아래위로 누르는 사이 시선과 마음보다 먼저 손이 정지시킨 장면이 있었다. 팝페라 가수 키메라처럼 눈 화장을 짙게 한 한 영애 씨가 ‘누구 없소’를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게슴츠레하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토하듯 불러대는 애절함이 금방이라도 화면을 뚫을 것만 같았다. 부스스한 머리와 해탈한 듯 자유분방한 모습들. 직각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문화의 충격 그 자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 맞다. 그냥이라는 말은 변화 없는 그냥 일수도, 수많은 이야기를 함축할 수도 있는 단어다.




 


우리는 각자 그냥 한번 불러보고 싶은 이름들을 가슴속에 묻고, 또 품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못다 한 이야기들이 차곡히 쌓여 있을 때, 희미해진 이야기의 주인공을 떠올리며 그냥 한번 불러볼 때가 있다. 도려내지 않은 채 인생의 갈피 갈피마다 바삭 건조된 네 잎 클로버처럼 그냥 불러보고 싶은 이름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런가 하면, 자연에 순응하듯 별 할 말이 없을 때, 적당한 대답이 생각나지 않을 때, 변명하고 싶지 않을 때, 우리는 그냥이라고 일축해 버린다. 그래서 참 만만하고 좋다.


 

        

              그냥이라는 말        


                                       

그냥이라는 말

참 좋아요

별 변화 없이 그 모양 그대로라는 뜻

마음만으로 사랑했던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난처할 때

그냥 했어요 라고 하면 다 포함하는 말

사람으로 치면

변명하지 않고 허풍 떨지 않아도

그냥 통하는 사람

그냥이라는 말 참 좋아요

자유다 속박이다 경계를 지우는 말

그냥 살아요 그냥 좋아요

산에 그냥 오르듯이

불이 그냥 흐르듯이

그냥이라는 말

그냥 좋아요    




왜 쳐다보지?

(( 너의 눈빛이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 란 대답 대신

그냥...    


왜 안 먹지?

(( 이걸 먹으면 살이 3킬로쯤 붙을 것 같아서 말이야 ))란 대답 대신

그냥...   

 

왜 안 자지?

그냥...     


정말 그냥인 것이다. 무수한 그냥들이 바위를 삼키는 해일처럼 그냥 뒷말을 모조리 삼켜버린다. 오늘도 나는 무심결에 그냥 조 동례 시집 [어처구니 사랑]을 펼쳐본다.    

 

 뿌리 깊은 나무는 부는 바람만큼 흔들리는 듯하나 먼저 몸 추슬러 멈춘다. 바람이 잦아질 것도 미리 알려준다. 비를 피하듯 바람을 피해 접었던 파라솔을 펼치기도 하고 걷어놓은 빨래를 도로 내다 널기도 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냥 우울했다가 그냥 슬프 했다가 그냥 아파했다가... 잊혀 질까 그냥 불러보는 이름이었다가도 자기 자리로 돌아와 해맑게 서 있는 것처럼 그냥 모른 척 살아가는 것도 참 아름다우리라.  


      


  


순돌이와 다니던 산책길, 서둘러 피는 코스모스가 눈에 잡힌다. 철 지나 누렇게 뜬 호박잎도 아쉽고 우리 순돌이 친구 발발이의 눈빛도 깊게만 느껴진다. 좁은 골목길의 절반을 차지한 대추나무의 늘어짐은 또 얼마나 정겨운지 익어가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지나간 모든 것들이 멀어지고 있다. 마음도 멀어질까. 살던 동네 이름을 그냥 한번 불러본다. 그냥 그렇게 수많은 날이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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