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물 Aug 12. 2024

겨울

-모든 아픔이 덮이는 시간.



1. 나는.



여름에 내리는 눈을 아니?     

그건 다가올 겨울의 잔상. 여름철 동면에 들 준비를 해.     

누군가는 부리로 나무를 엮어 겨울동안 포근히 몸 뉘일 침실을, 누군가는 곳곳에 떨어진 것들을 모아 허기질 때마다 손 가까이 뻗을 수 있는 식량을, 누군가는 자신을 깨우지 못하게 자기만이 아는 공간 깊숙이 숨어들지.     

나는 그동안 자라난 관계들을 엮어 겨울 추위에 포근히 몸 뉘일 침실을, 삶 곳곳에 흩어져있는 기억들을 모아 허기질 때마다 손 뻗어 꺼내어 볼 수 있는 따스함을, 깊고 충분한 잠을 낯선 이가 깨우지 못하게 혼자만의 터전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지.     


동면에 들 준비를 하는 여름이야.     


지나간 모든 계절의 일들이 포근한 눈 이불 아래 덮일 시간을 기다려.     

눈을 감고 겨울의 품에 안겨 한숨 자고 일어나 눈 뜨면,  모든 것이 녹아 새순이 돋아나는 봄이 올테지.               


2. 너에게.



여름에 내리는 이해할 수 없는 눈의 잔상은, 뚜렷한 겨울이 오고서야 모든 흔적들을 하나씩 하나씩 하얗게 덮어버리지.     


급정거에 까맣게 긁힌 타이어자국이 나 있던 도로의 엉망도, 폭우로 망가진 보도블럭의 어긋남과 아스팔트의 파손도, 깨어진 유리 파편이 흩어진 거리의 날카로움도, 태풍에 쓸모없이 버려진 우산의 만신창이도. 그럼에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언제나 여전하게 봄, 여름, 가을이 속절없이 흘러가는 이 세상엔 그 순간들을 덮어줄 겨울이 필요해.     


겨울은 그 모든 일 위에 포근히 내려 앉을거야.     


계절들의 불가해한 기억들이 하나씩 하나씩 눈이 되어 펑펑 내리면, 땅의 상처들은 하나씩 하나씩 덮이고 덮일거야. 


차가운 눈이 녹지 않고 내려 쌓일만큼 때론 이 세상이 참 차가운 것 같아.      

눈의 포근함은 하늘이 주는 유일한 위로일까.      


불가해한 모든 것이 불가해한 채로 포근히 덮여 새하얀 눈이불 밑으로 깊이 잠들 시간을 기다려. 사계절의 시간 동안 소리 없이 지나가버린 저만이 아는 숱한 시간들을,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모든 아픔을 포근히 덮고 모든 눈물들이 얼어 멈추면, 기억들이 내린 자리에 툭 하고 그제야 마지막 한 방울 보석 되어 떨어지겠지.   

  

그 겨울이 모든 계절의 아픔을, 머리와 마음이 미처 다 소화해내지 못하고 얽히고 설킨 채 지나간 모든 일들을 감싸줄거야.      


겨울은 그렇게 엄마의 품처럼 포근하게 모든 이들의 삶을 안아줄거야.    

 

겨울은 그렇게 땅 곳곳의 거칠음들을 한껏 감싸 안은 채 덮어둔 땅 위의 모든 흔적들과 함께 녹을거야.          


-겨울





내가 제일 사랑하는 계절은 겨울이다. 겨울의 감성을 참 좋아하기도 하고, 이 날 쓴 글에 담은 나의 생각도 내가 겨울을 사랑하는 또 한 가지 이유이다.


이 세상에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만 할까?'하는 일들부터, 개개인의 삶에서 왜 겪어야 하는지 도저히 머리론 이해되지 않는 크고 작은 고통들이 참 많이 존재하고 있다. 아픔이나 사연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끊임없이 합리를 외치지만 비합리적인 세상, 잘못된 것에 소릴 내기도 하지만 소리 없이 묻히는 일들이 더 많은 나날들, 개개인이 맞닥뜨린 아픔에도 아무 일 없는듯 반복되며 흘러가는 세상사와 살아내야 하는 눈앞의 현실. 고통과 아픔 앞에 멈추지 않고 찾아오는 봄, 여름, 가을의 시간들.


그 모든 것들을 감싸 안아 덮어줄 겨울이라는 계절이 꼭 필요하다 생각했다.


땅의 모든 불가해한 상처들을 그저 불가해한 채로 덮어줄 수 있는 겨울의 눈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엔 가장 필요한 게 아닐까?하고. 도저히 인간의 머리로는 해석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크고 작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곳, 인과가 불분명한 아픔들이 가득한 곳이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이니. 때론 어떠한 아픔에 함부로 덧붙인 해석이 또 다른 상처가 되기도 하듯 완벽한 이해로 풀어낼 수 있는 일들만이 우리 삶과 공존하는 것은 아니니까.


차가운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차가움을 품고 있는 겨울이, 나에게도 모두에게도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더 나아가 세상에 존재하는, 가깝고 먼 누군가 겪는 고통과 아픔을 어떻게든 해석하고 판단하여 손가락질 하지 않고, 그저 포근한 마음으로 덮어주는 겨울의 사랑이 나와 당신의 마음에 가득하기를 꿈꾼다.


우리는 서로 어쩔 수 없는 상처를 주고 받기도 하지만, 사랑을 주고 받을 때 가장 사람다워지는 것 아닐까싶다. 사람다운 사람이 많아진다면 살맛나는 세상이 될테고, 살맛나는 세상이 된다면 살맛을 잃었던 몇몇의 사람들이 살아감을 택할 수 있을테니. 무덥고 힘든 여름철같은 내 삶의 시간들 속에, 언젠가 찾아올 겨울에게서 모든 불이해를 덮어주는 사랑의 마음을 배운다.


겨울이 끝날 즈음 세상을 덮은 눈이 녹으면, 모든 땅의 상처들도 함께 지워지기를.

동면이 끝나 기지개를 쭉 켜고, 새로운 마음의 생명이 싹트는 봄이 모두의 삶에 찾아오기를.

동면에 들려하는 주변 사람들을 그 따뜻한 마음으로, 가만히 옆에서 바라 보아주고 기다려주는 세상이 되기를.


먼저는 내가 그렇게 살기를.


이 순간에도 무더운 여름철을 지나는 모든 이들이, 앞선 계절동안 소리없이 남겨진 이해되지 않는 아픔들이 덮일 포근한 겨울의 시간을 기다리며 어떻게든 버티며 살아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더위를 버텨내기 위해 여름에 그려보는, 아직은 불확실한 겨울의 실체가 결국엔 시간이 지나 뚜렷이 찾아와서 모든 일들을 포근하게 덮어줄 거라고. 저마다의 아픔을 안고 올해의 무더운 여름을 지나는 모두에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아픔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겨울이 오면, 

모든 아픔 덮은 눈 쌓인 언덕길을 함께 딛고 올라 

그 내리막길에서 함께 썰매를 타자고


아직 당신의 빈 마음에 난 생채기에, 눈의 잔상을 써 부치며

이렇게나마 당신의 빈 마음을 쓰다듬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