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하루 일찍 선배에게 고산병이 찾아왔다. 증상은 열과 두통 등 마치 몸살감기처럼 보였다. 선배의 눈은 지쳐있었고, 노란색 비니와 하얀색 패딩 점퍼 사이에 묻혀 곧 꺼질 듯이 깜박였다. 고산병 약이 별 효과가 없는 것 같았다. 그러자 가이드가 마늘로 만든 차와 수프를 권했다. 마늘은 고산병에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아마 오래된 전통 요법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한국인이라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메뉴였다. 뜨거운 물에 생마늘을 띄웠을 뿐인 마늘차. 수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딱히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선배는 찻잔을 받아 들었다. 누가 그걸 사약이라 했어도 나는 믿었을 것이다. 알싸한 마늘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다음날 일정의 목적지는 ABC(Annapurna Base Camp)였다. 그곳은 여정의 종착지이기도 했다. 안나푸르나에 오르는 사람들은 모두 그곳으로 모였다가, 왔던 길을 따라 흩어져 간다.
고작 나흘 걷는 동안 계절이 바뀌어 갔다. 여름이 가을에 이르듯 공기가 서늘해졌다. 울창하던 수림이 소멸의 과정을 겪고 있었다. 웃자란 들풀도 고개를 숙여 고작 발목 높이에 그쳤다. 그러자 산맥이 모습을 드러냈다. 신화 속 거인처럼 머리가 하늘에 닿아 있었다. 산맥은 밤중에 따라오는 달처럼 나와 함께 걸었다. 누군가 거대한 텔레비전을 설치해놓고 비현실적인 장면을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반나절 정도 걸었던 것 같다. 운무가 내리 앉았다. 그즈음 경사가 서서히 멎어갔다. 구릉이었다. 창백하게 빛바랜 들판 위로 양 떼가 지나가고 있었다. 운무 속에서 다시 운무 속으로 사라지는 동안 그들은 말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개 속에서 불쑥 만국기가 튀어나왔다. 나마스테, 입간판에 온기 없는 환영 인사가 담겨 있었다.
ABC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몸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해발 4,130m는 차가운 숫자다. 그러나 고도를 감안하더라도 턱이 달달 떨릴 만큼 추웠다. 생각해보면 그건 경고를 무시한 대가였다. 가급적 샤워를 자제할 것, 체온을 따듯하게 유지할 것, 고산병 약을 미리 먹을 것. 나는 날붙이처럼 차가운 물로도 기어코 샤워를 했다.
사실 그날 밤 기억은 흐릿하다. 동트기 전 일어나 안나푸르나에 비친 일출을 보기로 했었다. 그러나 밤새 끔찍한 오한을 겪었다. 동시에 열이 올랐다. 추워서 이불 속을 파고들면 금세 용광로 앞에 선 듯 더위를 느꼈다. 그렇게 웅크린 채 새벽을 맞았다. 모두가 침구를 나설 즈음 간신히 잠들 수 있었다. 늦게나마 약효가 돌았다. 꿈도 없는 깊은 수마였다. 그곳에서 나는 히말라야를 스쳐 더 높이 솟구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늦은 아침이었다. 걱정했던 것만큼 몸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산을 내려갈 때는 땀과 함께 불순물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경쾌한 기분에 흘러내리듯 산길을 걸었다. 일행과 멀어질 때마다 선배가 걱정했던 일이 기억난다.
하산 코스는 올라갈 때와 달리 이틀짜리였다. 그래서인지 더 가팔랐다. 폭우에 무너진 구간이 있어 위험하기도 했다. 거기에는 통나무를 엮은 간이 건널목이 설치되어 있었다. 화가 난 개울물이 가파른 비탈을 따라 난폭하게 흘러내렸다. 내 걸음걸이도 어쩌면 그렇게 보였을지 모르겠다. 전날 열과 오한으로 헤매던 밤보다 집에 가는 길이 더 위태로웠다. 사람이 죽어서 별이 된다면 아마 그 어느 순간보다 가까웠을 것이다.
내려오는 일정은 순식간이었다. 산 말미에서 가이드가 준비한 차를 탔다. 앳된 운전사가 모는 낡은 초록색 SUV였다. 모두 지쳐있었다. 가는 길에 폭우가 쏟아졌다. 네팔에도 스콜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앞이 보이지 않았다. 잠수함에 탄 기분이었다. 그러나 운전사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 그는 농담처럼 가벼운 음성으로 와이퍼가 망가졌다고 말했다. 속도계의 바늘이 60km를 가리키고 있었다.
피곤으로 무감각해진 우리를 대신해 가이드가 화를 냈다. 나는 운전기사의 무모함보다 오히려 가이드의 짜증 섞인 고함에 위험을 깨달았다. 산에서 내려왔지만, 아직도 아주 높은 곳이 있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