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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씨 Sep 24. 2024

내가 생각하는 '정리'의 기준

ep.7



당신이 살고 있는 방이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마쓰다 미쓰히로 <청소력> 中-





나의 생각이 말과 행동이 되고, 말과 행동이 모여서 태도가 된다. 그렇게 나라는 사람이 나답게 형성된 생각한다.


나는 생각이 이리저리 튀는 사람이다.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았다가 타자를 치는 내 손톱을 보고 갑자기 매니큐어가 바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는 마음에 드는 매니큐어를 가지고 와서 흰 바탕에 깜박이는 커서를 째려보며 매니큐어를 바른다. 나는 여전히 글을 쓰는 중이다. 매니큐어를 말려야 하기 때문에 타자를 칠 수는 없고 잠시 넷플릭스를 켜본다. 요즘은 어떤 재밌는 시리즈들이 나와있는지 손가락을 내려가며 구경해 본다. 흠... 그다지 구미가 당기는 게 없다. 아, 그런데 나는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글과 관련된 책을 갑자기 읽고 싶어 졌다. 서재방으로 가서 글에 참고할 만한 책이 있는지 골라본다. 책을 꺼내 들고 와서 몇 장을 펼쳐보아도 감이 안 온다. 바깥공기를 쐬고 싶다. 베란다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킨다. 베란다 밖에서 보이는 학교 앞 아이들도 한번 봤다가 산도 한번 봤다가 지나가는 경전철도 한번 본다. 창문을 열어두고 돌아오는 중 내일 수영장에 입고 갈 수영복을 골라두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수영복과 수모를 골라서 내일 수영 갈 가방을 챙긴다. 나는 여전히 글을 쓰는 중이다.


글을 쓰면서 딴짓을 하는 이유는 글을 잘 쓰고 싶어서이다. 욕심이 생기면 잘 쓰고 싶어지고 잘 쓰고 싶어지는 마음이 커질수록 딴짓을 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한다. 지금 당장 쓰는 것보다 조금 미루면 더 좋은 생각이 날 것 같은 미련 때문이다. 이런 마음을 알아차리고 흐트러졌던 집중력을 다시 커서 위에 모아 본다. 지금이 글을 쓰기 가장 좋은 때라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리고 다시 글을 써 내려간다.


어렸을 때였다. 학교숙제를 하다가 그림이 그리고 싶어 져서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다가 갑자기 그림의 어떤 모양에 꽂히면 그 모양을 만들어보고 싶어서 색종이를 꺼내 만들기를 했다. 색종이로 만들기를 하다가 무엇인가 먹고 싶어 져서 간식창고에서 과자를 꺼내와 과자를 먹으며 좋아하는 TV를 보았다. 내 생각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우리 집을 한 번만 쓱 훑어보면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러다 엄마가 내 물건을 정리하려 들면 갑자기 기분이 나빠진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그 일들을 끝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벌려놓은 일들을 언젠가는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학교숙제도 할 것고, 그림도 그릴 것고, 색종이로 만들기도 할 것.  


공간이 정리되어 있고 물건들이 제 자리에 있으면 생각도 정리가 되어있다. 반대로 생각이 잘 정리되어 있으면 자신이 사는 공간도 잘 정리되어 있다. 어느 것이 먼저인지는 개인의 차이와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물리적 공간을 먼저 정리하고 나서 생각정리도 아주 조금씩 되기 시작했다. 생각이 정리되기 시작하자 말과 행동에 있어서도 내가 생각하고 원하는 것을 90프로 정도는 일치되게 출력해 낼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여기저기 튀는 생각처럼 말을 할 때도 이 얘기를 했다가 저 얘기를 하기도 하고 내가 했던 말이었는지 까먹기도 일쑤였다. 행동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여행을 갈 때나 음식을 할 때 이런 부산스러움이 도드라졌다. 여행 갈 준비를 할 때 나는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 자주 놓이고는 했다. 일단 기준이 없다. 어디까지가 필요한 물건이고 어디까지가 필요 없는 물건인지 정하는 게 힘들기 때문이다. 의식의 흐름대로 짐을 챙기다 보니 굳이 챙기지 않아도 될 불필요한 짐들을 가득 넣어 정작 필요한 것들을 넣을 공간이 부족해지면 다시 또 짐을 빼서 정리하기를 반복했다. 옷방에서 옷을 챙겼다가 안방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챙겼다가 또다시 욕실로 가서 세면용품을 챙겼다가... 하,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다.

음식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국을 끓이다 갑자기 메추리알 장조림 준비를 한다던지, 메추리알을 까다가 갑자기 밥을 안친다던지... 어쨌든 이런 상황에 놓인 나 스스로를 보는 게 견디기 힘들었다. 일의 효율성이 떨어졌고 몸이 너무 지치고 힘들었다.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며 내 나름 공간과 생각정리를 한 후부터 이런 부산함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이제는 여행준비를 할 때 거실에 가지고 갈 캐리어를 펼쳐둔다. 그리고 각 공간별로 나누어서 필요한 물건들을 한꺼번에 꺼내어 캐리어 옆에 둔다. 옷방에서 필요한 물건들, 안방에 있는 세안용품과 화장품, 주방 찬장에 있는 비상약, 마지막으로 여행의 목적에 따라 필요한 부가적인 용품들. 이렇게 꺼내와서 캐리어 옆에 두면 신랑이 잘 정리해서 넣어준다. 이 부분은 신랑과의 협동이 필요한데 신랑은 정리와 분류를 잘하는 편이다. 내가 넣으면 캐리어 하나가 금방 차버리는데 신랑이 정리해서 넣으면 캐리어에 빈 공간이 생긴다. 어쨌든 내가 스트레스받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는 최적의 상태를 만들어두고 가능하면 빨리 상황을 종료시킨다. 길게 끌수록 계속 더 가져가야 할 짐들이 있지는 않을지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음식을 만들 때에도 밥이 없다면 밥을 가장 먼저 안쳐둔다. 그다음 국을 끓일 때 필요한 재료들을 썰어두고 조리 과정이 모두 끝난 후 다음 음식을 조리하려 한다. 주방 용품들을 많이 비워내고 필요한 것들만 남겨뒀기 때문에 음식을 하면서 중간중간 정리도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많은 것을 동시에 혼자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메추리알을 까는 일은 아이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하고, 중간 정리는 신랑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나 혼자 다 하려고 하다 보니 마음만 급해지행동도 더 부산스러웠던 게 아닐까 한다. 도움을 청하지 않고 나 혼자 다 해내려고 하는 것 또한 나의 능력을 과신하는 데서 오는 자만과 오만임을 알게 되었다.








리란 과연 무엇일까?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정리"라는 단어를 아래와 같이 세 가지로 정의하고 있다.


1. 흐트러지거나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는 것을 한데 모으거나 치워서 질서 있는 상태가 되게 함.
2.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종합함.
3. 문제가 되거나 불필요한 것을 줄이거나 없애서 말끔하게 바로잡음.


그런데 위에서 정의하는 흐트러지거나 혼란스러운 상태는 과연 무엇일까? 물리학자 카를로로 밸리는 흐트러진 상태라는 것이 자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부여한 기준일 뿐이라고 말한다. 루빅스큐브를 섞어서 각각의 동일한 면을 동일한 색으로 맞추는 것이 정돈된 상태라는 것도 우리가 부여한 기준인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는 여러 가지의 색깔이 섞여있는 상태가 정리된 상태일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이는 책을 정리할 때 색깔별로 분류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종류별로 분류하기도 한다. 휴대폰 애플리케이션 앱을 정리할 때, 앱의 색깔별로 분류하는 사람도 있고, 사용의 빈도에 따라 분류하는 사람도 있고, 종류별로 분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정리란 내가 스트레스받지 않는 최적의 상태를 만들기 위해 나만의 기준을 정하는 행위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나만의 기준을 어떻게 정해야 할까?


나는 정리를 세 가지 단계로 나누어 생각하기로 했다. 첫째는 비움, 둘째는 분류, 셋째는 자리선정이다. 이 정리 단계는 생각과 공간정리에 모두 해당된다. 공간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우선 비움이 선행되어야 한다. 비움 없는 정리는 그저 물건이 '여기'에서 '저기'로 이동하는 것에 불과하다. 루에 30분씩만이라도 한 공간을 정해서 있는 물건을 모두 꺼낸 다음 비울 것인지 간직할 것인지 선택하는 시간을 가진다. 비움의 규칙에 대해서는 1편 <비울 것이냐 간직할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편에서 자세히 이야기한 바 있다. 비움의 과정을 통해서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렇게 마음과 물건을 함께 비워내고 나면 2단계 분류의 단계로 진입한다. 가족들의 생활과 동선을 고려해서 각각의 물건들이 어디에 위치하면 가장 좋을지 생각한다. 물건들의 쓰임에 따라 분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옷방을 따로 만들어서 쓰고 있는 우리 집의 경우, 신랑과 딸아이 그리고 나의 옷을 모두 한 방에 정리해 두었다. 그리고는 딸아이의 옷을 거는 곳, 신랑의 옷을 거는 곳, 내 옷을 걸어두는 곳을 정해서 구분 지어두었다. 거실장을 없애면서 거실장 서랍에 있던 영양제와 비상약들은 주방찬장 한 칸을 비워서 정리했다. 자주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은(캐리어, 텐트, 돗자리, 크리스마스트리용품등) 베란다 팬트리에 보관했다. 이렇게 큰 틀로 물건들의 쓰임에 따라 분류했다면 다음은 자리 선정이 필요하다. 이 물건들이 나와서 쓰이고 난 후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으려면 자리를 꼭 선정해주어야 한다. '여긴 앞으로 너의 집이야!' 하면서 말이다. 가능하면 첫 번째 비움의 단계에서 자리선정용 수납박스를 구매하지 않아야 한다. 보통 정리를 한다고 마음먹으면 플라스틱 수납박스나 펜트리용 정리용품들을 먼저 사둔다. 하지만 막상 물건들을 비우고 나면 집에 있는 수납정리통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의 경우 쇼핑백으로 수납함을 만들어 보관하거나, 우유팩을 재활용해서 공간을 구분 지어 주었다. 혹은 신발상자, 선물박스등도 충분히 재활용해서 물건들의 자리선정에 이용할 수 있다.


인스타그램이나 TV에서 보는 살림고수들처럼 예쁘고 칼각잡힌 그런 정리는 하지 못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 책을 읽다 아주 흥미로운 비유를 찾았다. 데이터 과학자 주한나의 <어쨌든, 정리>에서는 '정리'를 소프트웨어 개발 시나리오에 비유한다.


'Minimum Viable Product(MVP, 최소기능제품)', 내놓을 수 있는 제일 간단한 버전을 마켓에 내놓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비전이 포르셰라면 MVP는 리어카라 할 수 있겠다.......(중략)...... 티셔츠 하나까지 칼처럼 각 세워 가지런하게 접고 색깔까지 맞춰 보기 좋게 정리하고 계절에 따라 쉽게 옷을 정리해 넣거나 꺼낼 수 있는 시스템이 최종 목표라면, MVP는 반팔티셔츠는 한 박스에, 속옷도 다 한 박스에, 바지는 큰 박스 하나에 다 넣기 정도겠다.

<어쨌든, 정리> -주한나-



나만의 MVP를 정하는 것, 그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나만의 정리 기준이 되지 않을까. 내가 스트레스받지 않는 선에서 혼돈을 피하기 위한 나만의 기준 말이다. 티셔츠를 칼각으로 접는 도구를 이용해서 각 맞춰 정리하는 것까지는 못해도, 반팔 반바지, 긴팔 긴바지 정도는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속옷은 속옷끼리, 양말은 양말끼리. 자신들의 자리를 만들어 주고 그 속에서 서로 엉겨 붙고 어질러져도 어쨌든 나에게는 양말통인 것이다. 한 번씩 머릿속이 복잡하거나 마음이 울적할 때는 서랍한칸을 다 뒤집기도 한다. 그리고는 어질러진 속옷들과 양말 티셔츠들을 각 맞춰 세워놓는다. 비록 그 상태가 오래가진 않더라도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고 나만의'정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면 복잡한 생각들과 우울한 마음도 함께 정리되고는 한다.




내가 할수있는 최선의 MVP














메인사진출처: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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