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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씨 Oct 01. 2024

마음이 울적하고 답답할 땐 '청소'를

ep.9



정리는 자신과 마주하는 행위이다.
청소는 자연과 마주하는 행위이다.

정리는 마음을 정돈하는 것이고,
청소는 마음을 청결히 하는 것이다.

<정리의 기술> -곤도 마리에-






예전엔 화가 나거나 마음이 심란할 때면 청소를 했다. 마음껏 어지르고 한꺼번에 치우는 스타일에 가까웠다. 집이 유독 깨끗이 치워져 있는 날엔 신랑이 퇴근해서 장난치듯 묻고는 다.


"자기, 오늘 화났어?"


"아니, 내가 화날 일이 뭐가 있어."


화가 난 건 아닌데 뭔가 모르게 가슴이 늘 답답했다. 여기도 저기도, 이것도 저것도 정리되어있지 않은 느낌이 들었고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불안정했다. 진짜'나'는 없어지고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의 '나'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아무리 치워도 깨끗해지지 않는 것 같았고, 어딘가 모르게 어수선한 기분이 들었다. 어떤 일로 인해 화나고 답답하기보다 나도 모르는 부정적 감정들이 차곡차곡 계속해서 쌓여나가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내 마음을 몰라주는 나 자신이 화나고 답답하게 느껴졌던 건지도 모르겠다.


사실 예전의 나는 정리와 청소를 구분 지어 생각하지 못했다.


'정리는 청소하면서 하는 것 아닌가?'


정리의 신 곤도마리에는 자신의 책 <정리의 기술>에서 '청소'와'정리'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청소와 정리는 먼저 그 대상이 다르다. 정리는 물건, 청소는 더러움이 대상이다. 즉 정리는 물건을 움직이고 수납해서 방을 깨끗이 하는 것이고, 청소는 더러움을 닦아내고 쓸어내어 방을 깨끗이 하는 것이다. 물건이 늘고 어질러지는 것은 100퍼센트 자신책임이다. 자신이 물건을 구입하지 않고 물려받지 않는다면 물건은 저절로 늘어나지 않는다. 게다가 사용한 물건을 제자리에 놓지 않았기 때문에 공간이 정리. 정돈이 안 되는 것이다. 모르는 사이에 주위가 어질러지는 것은 전부 자신 탓이다. 이렇듯 정리는 자신과 마주하는 행위다. 한편 더러움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쌓여간다. 먼지가 서서히 쌓이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이 같은 맥락에서 청소는 자연과 마주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정리는 마음을 정돈하는 것이고, 청소는 마음을 청결히 하는 것이다.


읽고 나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이다. '정리'와 '청소'의 대상이 다르다는 것을. 러다 무릎을 탁 쳤다. 예전의 내가 느꼈던 답답함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나는 정리 없는 청소만 해왔던 것이다. 봄맞이 대청소를 하듯, 마치 나에게 벌을 주듯, 화가 난 사람처럼 말이다. 어질러진 공간을 마주하면서 스스로를 탓했다. 늘어난 물건들을 보면서 죄책감이 들었던 것이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필요한 물건들이 금방금방 변한다. 개월수에 따라 사용되는 것도 다르고 누군가 물려준 물건들도 많아진다. 내가 미처 정리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고 물건들은 부지부식 간에 불어난다. 제자리 없이 갈 곳 잃은 불어난 물건들은 나의 마음을 어지럽혔고, 몇 번 쓰고 아이가 커버리는 바람에 쓰임을 다한 물건들은 창고방에 쌓여갔다. 마음이 정돈되지 못했던 시기였다.


그런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 보면 나는 항상 한꺼번에 몰아서 청소와 정리를 하고는 했다. 맘껏 어지르다가 한번 그 물건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하면 몰아서 정리하는 사람이었다. 책상서랍을 열면 내가 좋아하는 갖가지 펜들이 서로 엉켜있었다. 칼을 찾으려면 이 서랍 저 서랍을 다 뒤져야 했고,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물건을 발견하기도 했다. 나의 물건들은 모두 유목민이었다. 정착할 곳 없이 한 번씩 정리할 때마다 이리저리 집을 옮겨 다녀야 했으니 말이다.


결혼 전에는 그래도 나의 공간만 정리하면 되었다. 내 물건들만 정리하고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들은 엄마의 살림이었으니 말이다. 책상이나 옷장처럼 내 물건들이 있는 곳만 한 번씩 몰아서 정리하면 그럭저럭 괜찮았다. 비록 물건들의 자리가 없어서 다시 어질러지기 일쑤였지만 그래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었다. 그러나 결혼을 하며 아이를 낳게 되자 정리범위가 집 전체로 한꺼번에 커져버렸다. 어지르고 몰아서 치우기를 반복하던 나만의 공간에서 세 가족의 터전으로 확장이전 한 것이다. 규모가 커졌으니 한꺼번에 몰아서 하는 청소와 정리가 버겁게 느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살면서 어떤 문제를 마주하게 되었을 때 사실 그 문제의 이면에는 오래전부터 지속되어 왔던 나의 나쁜 습관들이나 부정적인 생각들이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큰 변화를 맞이하거나 인생에 있어서 견디지 못할 만큼 힘든 고통을 마주할 때 속에 잔재해 있던 습관들이나 생각들이 불쑥 튀어나와 나를 더 고통스럽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그런 문제들은 그 순간 직시하는 것이 괴롭고 고통스러워서 회피했기 때문에 눈덩이처럼 불려져서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마치 합병증처럼 내 삶의 곳곳에서 무섭게 나를 괴롭혀 오는 것이다.


문제점을 발견하거나 내 삶에 고통이 찾아올 때 해결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나 자신을 마주하면 된다. 내가 숨기고 싶었던 나의 못난 부분도 나의 일부분임을 인정하면 된다. 어질러진 집안을 한꺼번에 몰아서 청소하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질책하고 자책했다. 어쩌면 정리가 안된 어질러진 집안을 직시하는 것 자체가 내가 무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들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마음을 부정했고 그랬기에 스스로에게 답답하고 화가 났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시작에 늦은 때는 없다. 내가 깨달은 순간이 곧 시작이며 그때가 가장 좋은 때임을 이제는 알고 있다.






 


지난 몇 년간 물건들을 비워내고 정리하면서 '청소'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예전처럼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별로 없다. 아무것도 없는 거실에는 어질러질 것이 별로 없다. 아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은 제자리에 넣어주면 되고 쌓인 먼지들만 청소해 주면 되기 때문이다. 주방에도 바깥에 나와 있는 물건들 없이 모두 제자리를 찾아 들어가 있다. 그렇기에 음식을 하고 설거지만 하면 특별히 청소할 일이 없다. 안방에도 침대밖에 없기 때문에 매일아침 일어나 이부자리 정리만 하면 어질러질 것이 없다. 필요한 물건들만 남아있는 욕실에는 바쁜 아침이라도 물청소로 물때를 깨끗이 제거해 주면 금세 깨끗해진다. 욕실 창문 사이로 따스한 햇살이 비추면 금세 뽀송하게 마른 욕실이 된다.


물건들을 제대로 한 번에 '정리'해두고 나면 진정한 의미의 청소를 할 수 있다는 말이 어떤 것 인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해야 할 일을 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나의 마음을 더욱 정확하게 들여다 봐줄 수 있게 되었다. 우울하고 답답할 때 이유도 모르고 화풀이했던 그런 청소 말고, 나를 마주한 정리된 공간에서 마음을 청결히 할 수 있는 그런 '청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화장실 청소 후 창문으로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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