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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씨 Sep 27. 2024

혼돈 속에서 나만의 질서를 찾는 정리법

ep.8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을 흘려보낼 평온함을 주시고,
어찌할 수 있는 것들을 행할 용기를 주시며,
이 둘을 구분할 지혜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내가 뱉어내는 첫마디이다. 천주교 기도문이라고 하는데 몇 년 전 <우울해방일지>라는 책에서 읽게 되었다. 그 후로 매일 아침마다 하는 루틴의 첫 시작이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한다. 양치를 하고 간단한 명상과 스트레칭을 한다. 그리고 주방으로 향한다. 전날 저녁에 먹고 설거지해 둔 건조된 식기류들을 제자리에 넣는다. 그리고 깨끗해진 주방에서 나의 기도문을 외운다.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을 흘려보낼 평온함을 주시고, 어찌할 수 있는 것들을 행할 용기를 주시며, 이 둘을 구분할 지혜를 주심에 감사합니다. 오늘도 풍요로운 우주 속에서 우주가 사랑하는 아이로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감사의 기도를 끝낸 후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아침 식사 준비를 한다. 딸아이와 신랑의 아침은 간단한 과일과 삶은 계란 또는 야채와 계란을 구워서 준다.  딸아이와 신랑이 아침을 먹는 동안 나는 침대의 이부자리를 정리한다. 딸아이의 머리를 묶어주고 나면 딸아이는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한다. 옷을 입고, 양치와 세수를 하고 책가방을 챙긴다. 신랑은 신랑이 할 일을 하고, 나는 수영 갈 준비를 한다. 아침 8시 10분 집에서 나와 딸아이를 등교시킨 후 수영장까지 15분 정도 걸어서 간다. 하루의 시작을 감사로 한 이후부터 나의 하루는 매일매일이 기적이 되었다. 등굣길 아이의 눈부신 웃음과 싱그러움이, 출근길 신랑의 포옹과 따뜻한 입맞춤이 나에게 기적으로 다가온다. 수영장으로 향하는 발걸음 한걸음 한걸음이, 비가 오는 날엔 촉촉함으로 햇살이 비추는 날엔 따사로움으로, 바람이 불어오는 날 느껴지는 시원함으로, 나의 모든 감각이 감사함으로 가득 차는 기적처럼 느껴진다. 나는 이 모든 것이 내 삶 속에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냄으로써 진짜 필요하고 소중한 것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미니멀 라이프의 모습이기도 하기에. 정신없이 시간에 끌려 촉박하게 시작하는 아침을 보낼 때는 찾을 수 없었던 여유와 감사를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돈의 세계에서 나만의 질서를 찾았달까.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웠던 나의 세상 속에서 '질서'가 가장 필요했던 시기는 아이를 낳고 실전 육아가 시작되었을 때였다. '나'에서 '우리'가 되는 시점, '우리'에 포함되는 사람이 성인이 아닌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키워내야 할 새 생명이 내 삶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기저귀를 갈고 그때그때 처리하지 않으면 집안이 어떻게 되는지, 분유를 먹이고 젖병을 그때그때 씻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물티슈를 쓰고 아무 데나 두면 아이가 똥을 싸서 치워야 하는 긴급한 상황에 물티슈를 찾아서 헤매야 한다는 문제들을 마주하게 되면서 내 삶 속에 정리는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사항이 되어버린 것이다. 혼자였을 때는 귀찮거나 몸이 힘들면 조금 미뤄두어도 되었던 상황들이 아이를 기르면서 조금 미루면 일이 곱절로 많아지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나는 미루기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완벽하게 해 내고 싶다는 욕심 어린 변명으로 나를 무장한 다음, 지금 당장 해야 할 일들을 뒷전으로 미뤄두고 조금 덜 중요한 일을 해내면서 해야 할 일들을 돌려 막기 해왔다. 급한 일대신에 딴짓을 하지만 그 딴짓도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그럭저럭 굴러가는 격인 것이다. 글을 쓰기 싫을 땐 화장실 청소를 한다던가, 설거지를 하기 싫을 땐 글을 쓰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아이를 키울 때만큼은 이 미루기의 기술이 먹혀들지 않았다.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내 아이가 제시간에 분유를 못 먹거나, 보드랍고 말랑한 엉덩이에 똥독이 오르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귀 고막을 울리는 울음소리는 덤으로 말이다.


물건하나 나와 있지 않은 깔끔한 거실, 물기하나 없는 깨끗한 주방, 사용한 적 없는 것 같은 깨끗하고 건조된 화장실. 호텔처럼 누군가 완벽하게 정리해 준 것 같은 공간에서도 내가 존재하는 이상 흐트러짐이 발생한다. 화장실을 사용하고, 침대에서 잠을 자고 주방에서 밥을 해 먹게 되면 완벽히 정리된 공간은 흐트러지게 된다. 그 흐트러짐을 다시 완벽의 상태로 되돌려 놓는 과정에서, 어떤 날의 나는 육아에 지쳐 피곤할 수도 있고, 어떤 날의 나는 감기몸살에 걸려서 아플 수도 있다. 또 어떤 날의 나는 에너지가 넘쳐나 없던 일도 만들어 낼 수도 있고, 어떤 날의 나는 우울함에 빠져 허우적거릴 수도 있다. 그 상태들이 혼돈이라면 나는 그 자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혼돈의 상태에 따라 주기적으로 변화하는 나의 공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는 첫 시작은 완벽하지 못한 상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상태를 부정하고 거부하면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날 선 칼날을 나에게 들이대며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게 된다. 그렇기에 완벽하지 못한 상태를 먼저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나만의 질서를 찾아나가야 한다. 예를 들면 나의 몸상태에 따라 혹은 일의 시급함 정도에 따라서 해야 할 일들을 분류하는 것이다. 주방 전체를 당장 완벽하게 돌려놓을 수는 없지만 지금 당장 아이의 젖병은 씻어놓아야 다음 수유시간에 맞춰 젖병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다 몸의 컨디션이 좋거나 혹은 육아를 누군가 함께 해주는 날에는 다시 내가 정한 완벽한 상태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다만 최소한의 에너지를 써서 완벽한 상태로 빨리 되돌려 놓으려면 물건이 많이 없어야 한다. 내가 정리하고 제자리에 넣어둬야 할 물건의 개수가 줄어들면 나의 에너지도 줄어들고 정리하는 시간도 줄어든다. 이렇듯 미니멀라이프를 희망하면서 좀 더 효율적으로 나를 사용할 수 있 되었다.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는 첫 시작이 혼돈의 상태를 받아들이는 것이었다면, 그다음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다. 내 삶에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은 삶과 죽음, 자연재해, 사건사고등이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나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이다. 그렇다면 오늘 하루를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나만의 아침 루틴을 끝낸 다음 오늘 해야 할 일을 간단하게 휴대폰 속 노트에 적어둔다. 혹은 전날밤 잠들기 전에 잊어버리기 쉬운 일정은 미리 적어둔다. 다이어리에 손으로 직접 적는 방식도 사용해 보았지만 나는 다이어리를 들고 다니며 확인하는 스타일이 아니기에(다이어리를 쓰면 처음에만 열심히 쓰고 꾸미다가 나중에는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성격이기에) 일정 정리는 휴대폰 속 노트를 사용한다.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최대한 심플하고 간단하게 어둔다. 우유부단하고 변덕스러운 내 성격을 반영해서 시간은 쓰지 않는다. 시간을 정해서 하루 일정을 짜두면 뭔가 쫓기는 듯 숨 막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수업시간이나 아이의 등하교 시간등 정해져 있는 시간 이외의 시간에는 나의 하루에도 빈 공간처럼 여유를 주고 싶었다.  




휴대폰 노트속 나의 하루일정




여기저기 튀는 생각들도 휴대폰 속 노트에 그때그때 메모해 둔다. 그리고 휴대하기 쉬운 가벼운 노트에는 책을 읽고 기억해 두고 싶은 내용들을 필사하거나 휴대폰 속에 메모해 두었던 생각들을 옮겨둔다. 이렇게 하면 불필요한 생각들은 한번 걸러지고 생각을 분류해서 머릿속 기억저장소에 잘 보관해 둘 수 있다. 손으로 한번 쓰는 행위를 거치면서 좀 더 잘 분류하고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엉뚱한 생각을 많이 하는 나에게 꼭 필요한 생각정리방법이었다. 그리고 생각을 한번 정리하고 쓰면서 나의 불안감도 조금씩 낮아졌다. 늘 불안경보를 켜고 살았던 예민함을 필요할 때만 켜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리하면서 내가 가장 혼란스럽고 힘들게 느껴졌던 은 바로 주방이었다. 결혼하고 엄마가 사주신 타파웨어 반찬통들로 색색이 가득 찬 주방찬장은 문을 열 때마다 스트레스였다. 툭 치면 쏟아질 것 같은 반찬통들은 아무리 정리를 해도 며칠 있으면 금세 또 어지러워져 있었다. 비워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꼭 필요한 개수의 내용물이 잘 보이는 투명한 반찬통 몇 개를 제외하고 모두 비웠다. 엄마는 타파웨어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옛날에는 부잣집 사모님들만 썼다는 '그' 타파웨어. 엄마들의 취향을 저격한 알록달록한 색상의 반찬통들과 다양한 크기의 식기류들. 그럼에도 나에게는 그저 비싼 가격에 판매되는 플라스틱 용기들이었다. 환경호르몬이 검출되지 않는 안전한 식기류라고 하지만 내 취향은 아니었다. 문제는 내 취향이 아예 없었다는 데 있었다.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기 위해 용기를 낸 것이다. 엄마가 결혼 선물로 해준 반찬통들을 비워낼 용기 말이다. (내가 비워낸 타파웨어 반찬통들은 엄마와 이모들 집으로 이동했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섭섭했을 것이다. 나도 엄마의 그런 마음을 생각해서 결혼하고 몇 년간을 그대로 방치해 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혼 후 살림을 살아가면서 나의 취향이라는 것도 생겨나기에 이것 또한 정서적으로 엄마와 분리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다음으로 정리하기 힘들었던 공간은 바로 냉장고였다. 히 냉동실은 유물 수준으로 변한 봉지들의 무덤이었다. 엄마가 갖다 준 생선들, 껍질째 얼린 바나나, 팥, 생강, 떡, 시래기, 어머니께서 농사지으신 아로니아 열매, 대추등 귀한 식재료들이 봉지째 쌓여서 세상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이 재료들을 하루에 1끼 정도 집에서 밥을 해 먹는 3인가족이 해결하기도 버거웠고 살림초보인 내가 요리해 먹기도 어려웠다. 엄마들이 주신 식재료와 내가 사둔 냉동식품들이 어우러져 냉동실은 폭발 일보직전이었다. 비워야 했다. 아니 비워내야 했다. 안에 있는 것들을 모조리 다 꺼내어 음식쓰레기와 일반쓰레기로 분리배출했다. 이렇게 냉동실을 정리하기를 몇 차례 반복하자 내 나름의 질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첫째, 냉동식품 사서 쟁여두지 않기.

둘째, 봉지째 넣어두지 않기. (이건 아직도 어렵다. 한 번씩 냉장고를 뒤집어 정리해 줄 필요가 있다.)

셋째, 냉장고 재고파악하기.

넷째, 냉장고를 저장고로 사용하지 않기.


마트처럼 냉장고도 재고파악이 필요하다. 재고를 파악한 다음 꼭 필요한 것들만 최소한으로 장을 본다. 냉장고를 저장고로 사용하면 신선식품인 음식들을 사서 쟁여두게 된다. 그러면 신선도가 떨어지게 되므로 주기적으로 냉장고털이를 해서 음식을 소진해 준다. 하지만 항상 이런 상태가 유지되지는 않는다. 조금만 방심하면 금세 엉망이 되고 화석들이 쌓여간다. 그래도 나만의 질서가 없던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좋아진 편이다.


미니멀라이프는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들과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깨닫게 해주는 매개체였다. 공간과 생각들을 정리하면서 나만의 기준을 만들고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들을 행할 수 있는 용기를 내게 하기도 했고,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을 흘려보낼 평온함을 주기도 했다. 그렇게 그 속에서 나는 혼란스러움을 잠재우는 나만의 정리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혼돈속에서 찾은 나만의 질서









메인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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