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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씨 Sep 20. 2024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

ep.6




우울하면 과거에 사는 것이고,
불안하면 미래에 사는 것이고,
편안하면 지금을 사는 것이다.

- 노자 -






몸과 마음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워져 축축 가라앉을 때가 있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늪지대를 걷는 것처럼 한걸음 내딛는 것이 힘들 때가 있었다. 아이를 낳고 나면 육아 우울증이 올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예쁜 아이가 나에게 와준 것이 감사하게만 느껴졌는데 육아우울증 이라니. 우울증 앞에 육아라는 말은 왜 붙여 놓았을까. 자식을 낳은 부모라면 누구나 육아의 과정을 겪게 될 텐데. 육아우울증이라는 단어 자체가 마치 육아를 하는 사람이면 우울증을 겪게 될 것이라는 경고처럼 들렸다. 감이 들었다. 그런 이유에서였을까 나는 나에게 찾아온 마음의 우울함을 거부했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했고, 마음의 우울함을 무시하며 애써 괜찮은 척했다.


부모로부터 분리된 '나'나와 전혀 다른 사람을 만나서 가정을 이루었다. 그렇게 이룬 가정에서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었다. 내 생각에 결혼은 부모님으로부터 신체적으로 독립하는 과정이고, 아이를 낳고 기르며 부모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정신적 독립이 이루어지는 듯하다. 우리의 인생을 전, 후반부로 나눈다면 결혼과 출산이 그 기준이 되지 않을까? 그만큼 부모가 된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일생에서 큰 전환점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누구나 커다란 변화 앞에서 불안하고 두려울 수밖에 없다. 가보은 길이기에 두렵고, 그 길을 알 수 없기에 불안하다.


육아를 하면서 내가 애써 외면하고 억눌러왔던 부정적 감정들이 더 이상 쌓여있을 수 없을 만큼 차오르자 문제점들이 하나둘씩 비집고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나의 '육아우울증'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의 감정과 생각들이 만들어낸 산물이었다. 언젠가는 터져버릴 수밖에 없었던 문제들이 큰 변화(결혼과 출산)를 만나면서 우울증이라는 덫에 걸려버린 것이다.


나는 정신적 공허함을 물건으로 채워 성벽을 쌓고, 정서적 허기짐을 음식으로 채움으로써 나를 보호하기 시작했다. 몸과 마음 모두가 생존 비상체제에 돌입한 것이다. 사는 공간에는 물건들을, 내 몸에는 지방들을 채워서 스스로를 보호했다. 물건들과 음식들로 안정감을 찾고 보상심리를 발휘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마침표로 스스로를 규정짓고 변화하려 하지 않았다. 아니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


그랬던 나에게 집안에 쌓여있는 물건들을 비워내는 시간들은 나의 마음을 바라봐주는 과정이었다. 물건들을 하나둘씩 비워낼 때마다 가벼워지는 나의 마음을 라보면서 내 마음이 과거에 머물러 살고 있었음을 되었다. 나는 과거 속에서 습관처럼 상처받고 부정적으로 나를 규정지어왔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과거의 내 모습과 감정들을 떠올리며 우울함으로 나를 무장했다.


심리적 문제는 과거에서 찾아야 할 문제가 아닌 '바꿔나가야 할 습관'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내가 하는 게 다 그렇지 뭐.'라는 식의 부정적 자기규정을 지으면서 과거 속 상처를 지금의 내 상황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빠져나올 수 없는 우울감에 휩싸이고 만다. 건들마다 비워낼지 간직할 지를 선택하는 시간 동안 나는 그 물건들을 갖고 있던 나의 마음을 바라보았다. 내가 왜 샀는지, 사용하지 않음에도 왜 아직 갖고 있는 것인지를 생각하고 정리하다 보니 나의 마음이 과거가 아닌 지금 여기, 이 순간하게 되었다.







불안이란 무엇인가?

불안은 두려움과 관련이 있지만 같은 것은 아니다. <정신의학 진단편람>에서 두려움은 "실제적인 또는 지각된 목전의 위협에 대한 감정적 반응인 반면, 불안은 미래의 위협에 대한 예상"으로 정의한다. 둘 다 현실에 대한 건강한 반응일 수도 있지만, 과도하면 장애가 될 수 있다.

<불안세대> - 조너선 하이트 -



위의 내용에서 "불안은 미래의 위협에 대한 예상"으로 정의하고 있다. 위험한 상황이 생길 것 같은 상황에서 불안을 느끼고 경계하는 것은 건강한 반응일 것이다. 하지만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세계각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들을 실시간으로 접하고, 자극적인 기사나 뉴스들이 필터링 없이 우리에게 노출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위험한 상황이 생길 것 같은 상황에서 울려야 하는 경보벨인 "불안"기재가 일상생활 속에서도 꺼지지 않고 울려대고 있는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나에게 울려대는 이 경보벨을 끄지 않고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 두근거림이 심해지고 호흡곤란이 오기 시작했다. 잠을 자지 못하고 눈을 감는 것이 무섭게 느껴졌다. 잠을 자려고 누우면 커다란 돌덩이를 가슴에 놓아둔 것처럼 숨 쉬는 게 고통스러웠다. 크게 들숨을 들이마시고 서서히 날숨을 내뱉기를, 모두가 잠든 밤 나 홀로 깨어 반복했다. 딸아이의 자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났다. 다음날 아침, 내가 만약 눈을 다시 뜨지 못한다면, 이 아이를 다시 볼 수 없다면 어떻게 할까 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잠을 쉬이 청할 수 없었다. 나의 생각과 마음이 지금 여기, 이 순간이 아닌 미래에서 불안해했던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는다. 삶이 시작되었다면 누구에게나 그 삶의 끝이 있음은 명확하다. 그러나 삶의 시작과 끝이 언제일지는 알지 못한다. 그 불확실함 속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명확히 알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뿐이라는 것을 고통과 불안의 터널 속에서 깨닫게 되었다. 그렇기에 고통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려 한다. 나를 쉬게 해 주겠다는 명목으로 생각 없이 손가락을 움직이며 보고 있는 쇼츠를 잠시 멈추고 진짜 쉼을 나에게 허락해주려 한다.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을 걱정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기보다 어찌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에 용기를 내어 한걸음 더 다가가보려 한다. 옆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과 눈을 맞추고 아이의 부드러운 볼에 입을 맞추고 사랑의 언어를 속삭여 주려 한다.









과거와 미래를 구분 짓는 것이 의미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말처럼 정말 시간의 흐른다는 생각은 우리의 무지를 반영한 것 일 뿐일까?


카를로 로벨리의 저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에서는 실제로 시간이 산에서는 더 빨리, 평지에서는 더 느리게 흐른다고 한다. 전문실험용 시계만 있다면 몇 센티미터만 낮아져도 시간이 지연되는 현상을 관찰할 수 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에서는 똑같은 길이의 빌딩을 보는 방향에 따라 높이와 너비를 다르게 보듯이, 시간과 공간도 상대 속도에 따라 서로 다르게 인식한다고 말한다. 그는 시간이 변하면 공간도 변하고, 공간이 변하면 시간도 변한다고 한다. 가만히 있는 사람보다 더 많이 움직이는 사람의 시간과 공간 축이 더 많이 회전하는 것이다. 나의 지금인 순간에 누군가의 지금은 나의 미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속도와 거리에 따라 나의 과거와 미래는 어떤 사람의 지금인 것이다. 모든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지금'인 것이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고 나서 조바심과 불안, 우울을 완전히 잠재우고 편안함에 이를 수 있었다.


결국 우리에게 주어진 명확함은 지금 이 순간뿐인 것이다.


나와 너의 '지금'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회에서 규정한 잣대로 서로를 평가하고 비교한다. 규정짓기 위해 만들어낸 기준들을 들이대며 성공한 사람들처럼 살아가야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게끔 만든다. 비교군에서 뒤처지면 실패자가 되고, 빨리 가면 승자가 되는 것이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몰아세우기 바쁘다. '다들 하는데 나도 이 정도는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나'는 없고 '우리'만 가득한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


'나는 불안하지 않아, 나는 우울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사람도 그 이면에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불안이나 우울이 존재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을 느끼는 것의 예민도가 다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불안하고 우울할 수도 있음을 스스로 인정해 주어야 다. 불안할 수도 있고 우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불안하다가도 지금 이 순간 내 주변의 행복을 찾아보고, 우울하다가도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행할 용기를 내어 보는 것이다. 누군가의 과거 혹은 미래 속에서 허우적 대기 보다 나의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의 명확성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마음껏 누리고 살아가는 것. 감사하고 행복하고 슬프고 힘겹고 고통스럽고 불안하고 우울한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금 이 순간 생애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이것이야말로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한다.









메인사진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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