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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씨 Nov 18. 2024

결핍

11월 18일





결핍(缺乏):

1)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거나 모자람.
2) 다 써 없어짐.
3) 문학적 정의: 인간 정신의 본질적 양상을 기술하기 위한 라캉의 개념. 주체는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와의 분리에서 오는 근원적 결핍을 가지고 태어난다. 또한 주체는 더 크고 더 근본적인 것의 파편이라고 여겨지므로 결핍되어 있다고 본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우리의 존재는 언제 가장 완전할까? 엄마와 탯줄로 연결되어 있던 순간이 가장 완전할 때였을까? 세상에 완전한 존재라는 것이 과연 있기나 할까? 엄마와 연결되었던 탯줄을 끊어내고 세상으로 나온 존재인 우리는 태어남과 동시에 결핍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결핍을 채워나가는 것에서 의미를 찾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요즘 드라마 <정년이>를 재밌게 보고 있다. 여성국극이라는 장르도 흥미로운 소재인데, 배우들의 노력과 연기가 더욱 빛나는 드라마인 것 같다. 8화 마지막 부분에 정년이가 목이 부러진 상태로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아역 오디션을 보는 장면에서 그만 꺼이꺼이 울고 말았다. 원래도 F감성이라 잘 울지만 이렇게 가슴이 울릴 정도로 꺼이꺼이 소리 내서 운 적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떡목이 된 상태에서 극 중 정년이(김태리)가 "대동강 잠룡이 되어~" 하며 목을 틔우고 소리를 한 뒤 피를 토하며 쓰러진 장면을 몇 번이나 되돌려 보았다.


소리 천재 채공선의 딸로 완벽한 소리를 낼 수 있었던 정년이가 도한 욕심과 무리한 연습으로 인해 목이 부러지게 되었다.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고음을 내지를 수 없는 상태의 목이 되었다는 것을 '목이 부러지다', '떡목이다'는 표현을 쓴다고 한다. 정년이의 엄마 채공선 또한 최고의 소리 천재로 주목받다가 떡목이 되어 소리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런 엄마에게로 떡목이 된 채 돌아간 정년이는 다시 소리를 하겠다고 결심하고 엄마와 함께 목포바다 앞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정년이의 엄마는 자신이 알던 선생님 중에 부러진 목으로 명창이 되신 분의 이야기를 정년이에게 해주며 부러진 목에서 나는 빈 소리를 너는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 묻는다. 이에 정년이는 연기로 채우겠다 답한다. 심청가를 부를 때는 심청이가 되고, 춘향가를 부를 땐 춘향이가 되겠노라고. 그리고 다시 극단으로 돌아와 사람들 앞에서 부러진 목으로 심청가의 한 대목인 <추월만정>을 부른다. 그 순간 정년이는 자신이 내는 소리의 빈 부분을 심청이가 되어 채우고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그 자체로도 완벽했던 소리 천재가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소리를 잃으면서 결핍을 겪었다. 그러나 그 결핍의 빈 부분을 자신의 다른 재능을 찾아 채우게 된 것이다. 결국 우리는 모두 결핍을 통해서 완전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결핍이라는 단어 앞에는 수많은 명사들이 함께한다. 애정결핍, 비타민D 결핍, 주의력결핍... 이런 결핍들을 찾아내면 그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고자 비타민 D 영양제를 섭취하거나, 애정결핍의 원인을 찾고자 자신을 탐색하기도 하고, 주의력결핍을 해결하기 위해서 전문가의 도움을 빌리기도 한다. 그런 과정들 속에서 우리가 진짜 채워가는 것들은 사실 근원의 사랑임을 깨닫는다. 우리는 본디 근원의 사랑 속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세상으로 나오면서 근원의 사랑 속에서 강제적으로 분리된다. 그 분리를 통해 생겨난 여러 가지 결핍들을 채워나가면서 우리는 다시 우리의 존재가 근원의 사랑임을 깨닫는다.


20대 때는 나에 대한 애정결핍으로 인한 불안과 두려움을 술과 자극적인 음식으로 채워나가려고 했다. 그 결과 건강이 안 좋아졌다. 그리하여 30대 때는 나에 대한 탐색으로 결핍을 채워나가고자 했다. 그 탐색의 방법이 나에게는 글쓰기였고, 지금도 나는 열심히 나를 탐색하고 있다. 40대에 접어든 지금, 나의 결핍은 근원의 사랑으로 가는 길을 '사랑'으로 채워나가는 여정임을 깨닫는다. 그 누구를 위함도 아닌 나를 위해서.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성공하기 위함이 아닌 나를 향한 온전한 사랑을 채우기 위해, 결핍을 통한 빈자리를 메워나가는 행위를 통해서 내가 더 성장하고 발전해 나갈 수 있음을 조금씩 깨달아 간다. 국 모든 것의 끝은 그 누구를 위함도 아닌 내 안에 있는 사랑을 위함이다. 아니, 거대한 사랑 안에 있는 나를 위함이다.



사랑은 이 모든 일을 행하여 그대들 속에 있는 비밀을 일깨울 것이며, 그 깨달음은 그대들의 삶에서 한 조각의 심장이 될 것입니다.

-중략-

사랑은 저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주지 않으며, 사랑은 저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취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소유하지 않으며 소유되지도 않습니다.
사랑은 다만 사랑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칼릴지브란의 <예언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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