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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씨 Nov 17. 2024

침묵

11월 17일






그대들은 가만히 생각하지 못할 때 말을 합니다.
그리고 마음의 고독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할 때 입을 엽니다. 그때 말소리는 기분 전환이자 소일거리에 불과합니다. 말이 많아지면 생각의 반은 죽게 됩니다. 생각이란 하늘을 나는 새와 같아서, 말의 감옥 속에서 날개를 필 수 있을지 몰라도 날아오르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대들 가운데 어떤 이는 홀로 있기가 두려워 수다스러운 이야기꾼을 찾습니다. 이들은 고독한 침묵이 벌거벗은 몸뚱이를 드러내면 도망치려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진실을 아무 지식 없이 닥치는 대로 떠듭니다. 어떤 이는 자신 속에 진실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습니다. 이런 이들의 가슴에서 영혼은 살아 움직이는 침묵 속에 머물고 있습니다.

<말하는 것에 대하여>
 -칼릴지브란의 <예언자>중에서-




새로운 만남이나 낯선 환경 속에서의 침묵을 견디기가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그 어색한 공기를 해소하기 위해 나를 도마 위에 생선처럼 올려둔다.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도마 위의 날생선처럼 몸을 파닥이며 끝까지 발악해 보지만 끝내 생선은 날카로운 칼날에 의해 침묵한다.


정서적 거리가 가까운 사람과 함께 할 때 침묵은 나의 휴식시간이다. 침묵 속에서 나의 생각은 날개를 펼치고 날아다닌다. 말은 아무리 내가 어휘력을 갈고닦는다고 하여도 내의 생각을 100% 다 표현해 내기 어렵다. 글처럼 쓰고 지울 수도 없기에 한번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다. 나의 의도와 다르게 상대에게 나의 말이 날카로운 독화살이 되어 날아갈 수도 있음이다.


중국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친구 이마에 앉은 파리를 쫓으려고 도끼를 휘두르지 마라."


그저 친구 이마에 앉은 파리를 쫓으려 했을 뿐인데, 상대에게는 내가 휘두른 것이 도끼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는 일이다.


삶의 중심이 내가 아닌 타인의 시선 속에 있을 때가 있었다. 그때는 타인이 하는 말들이 모두 나에게 하나같이 가시 돋친 장미처럼 느껴졌다. 분명 겉 포장은 장미인데 내 손에 쥐어진 부분은 장미의 가시였다. 따갑고 아팠다.


"나이 서른 다돼서 외국대학교 졸업장 따고 돌아간다고 취직할 때가 있겠어?"


"너는 그게 문제야, 왜 그렇게 말을 하나하나 되새김질하는 거야? 인생 살기 피곤하게."


"가진 건 개뿔도 없으면서 바라는 건 많네. "


이런 말들이 가시처럼 박히는 나의 물렁함이 문제라 생각했다. 내가 좀 더 단단한 철장갑을 끼거나 장미가시쯤이야 아무렇지도 않게 만질 수 있을 만큼의 굳은살이 손에 박이지 않은 탓이라 생각했다. 모든 것이 나의 탓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타인을 향한 비판에는 사랑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야."는 말은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타인에 대한 겁박이다. 다른 말로 하면 가스라이팅인 것이다. "너 같은 사람은 장사하면 안 돼."라든가, "너는 성향상 앉아서 하는 일은 죽어도 못해." 자신이 본모습이 정답인 것처럼. 결국 타인을 판단하며 비판하는 행위는 스스로의 불안을 비추는 거울인 것이다. 스스로가 갖고 있는 불안함과 불편함을 타인을 통해 바라보는 것이다. 타인을 비판하고 규정짓고 판단하는 것은 결국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준다. 타인에게 보이는 작은 흠을 크게 부풀려서 비판하는 이유는 나 또한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허물과 약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나 스스로를 용서하려는 마음이 부족해서 타인에게도 재판관이 되는 것이다.


나 또한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뱉어낸 실언들 속에서 누군가에게 가시 돋친 장미를 건네기도 했던 순간이 있을 것이다. 부디 스스로를 용서하기를.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허물과 약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기를. 가슴속에 진실을 간직하고, 침묵 속에서 나의 영혼이 살아 움직일 수 있도록, 나의 생각이 말이라는 감옥에 갇히지 않고 날개를 펼쳐 어디든 날아다닐 수 있도록, 침묵 속에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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