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로부터의 해방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

by 유자씨

'그날'은 독 무덥고 습했다. 태양은 구름에 가려져 있었지만 내 머리 위를 뜨겁게 비추었다. 한통의 전화를 받고 나는 흐르는 땀과 눈물콧물이 뒤섞인 채 기분 나쁜 끈적임과 미칠 것 같은 분노를 안고 학교에서 집으로 뛰기 시작했다. 5분이면 도착할 거리였다.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찬 것처럼 온 힘을 다해 뛰어도 집으로 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아파트 입구에 도착하자 많은 사람들이 서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구급차와 경찰차, 정신병원에서 나온 환자이송용 회색 봉고차가 눈에 들어왔다.






"하야, 너희 엄마가... 죽었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외할머니의 떨리는 음성에 내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빠의 알코올중독 증세가 더 심해져 다시 정신병원으로 이송하기로 되어있던 날이었다. 머릿속이 새하얀 도화지처럼 하얘졌다. 내가 죽음의 소식을 들어야 한다면 죽어야 할 사람은 엄마가 아닌 아빠였다. 아빠를 병원으로 이송하기 위해 엄마 혼자 갔다가 둘이 싸움이 난 것이었을까. 분명 어젯밤 통화 할 때는 엄마 혼자 간다고 하지 않았는데 도대체 왜... 왜 그랬던 걸까... 엄마가 없는 세상은 내가 살아갈 이유가 없었다. 나에게 하늘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학교에서 집으로 뛰어가는 내내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화가 치밀었다. 웅성이며 서있는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아파트 공동현관을 지나 계단으로 뛰어올라갔다. 우리 집 문 앞을 지키시던 경찰관 두 분이 나를 막아섰다.


"학생 여기로 올라오면 안 돼요. 내려가세요."


"아저씨 제가 딸이에요. 누가 죽은 거예요? 저희 엄마예요?"


"시신은 남자분입니다."


안도했다.

죽은 사람이 엄마가 아니라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식당을 하던 엄마는 장사 준비로 정신병원 이송차량과 약속시간을 맞추지 못할 듯하여 외할머니를 먼저 보내셨다고 한다. 아빠의 시신을 가장 먼저 마주한건 외할머니였다. 너무 놀라신 할머니는 나에게 엄마가 죽었다고 했는지 기억도 못하셨다. 아빠의 사망요인은 양쪽 손목과 목에 그은 자상으로 인한 과다출혈이었다. 말 아빠가 죽은 게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울며 집으로 들어가려는 나를 경찰아저씨가 막았다.


"학생, 지금 보지 말고 나중에 확인해..."


수많은 사건사고들을 만나는 경찰관아저씨는 아마 알고 계셨나 보다. 내 기억 속에 남을 아빠의 마지막 모습이 그런 모습이면 안된다는 것을 말이다.






엄마와 할머니는 사건조서 작성을 위해 경찰서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아빠의 시신은 장례식장으로 옮겨졌다. 나는 그 현장을 벗어나 가장 친한 친구에게 전화해 나에게 와달라고 했다. 이 모든 상황들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했다. 학교 운동장 계단에 앉아 한참을 울다 멍하니 해지는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친구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내 옆에 앉아있어 주었다.


'그날'이 오기 전 아빠는 몇 주째 일도 하지 않고 집에서 술만 마셨다. 엄마만 보면 피바람이 부는 싸움이 계속되니 엄마를 대피시킬 수밖에 없었다. 우리 모두가 없어지면 아빠가 분명 찾으러 다닐 것이라 생각했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밤늦게 집에 돌아왔기에 아빠와 마주칠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초등학생이었던 남동생에게 술심부름을 시키는 아빠를 보고 남동생도 할머니 집으로 피신시켰다. 결국 아빠와 나, 둘만 남아 있었다. '그날'의 전날밤은 마치 폭풍우가 몰아치는 느낌이었다. 아빠는 누구를 향하는지도 모를 알 수 없는 혼잣말들을 내뱉으며 광분했고, 집안에 있는 모든 화분들은 아빠에 의해 깨부수어졌다. 무서워서 방문을 잠그고 내 방 베란다에 나가 엄마와 밤새 통화하며 그 시간이 어서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도했다. 긴긴밤이 지나 새벽녘 푸른빛이 창밖으로 밝아져 올 때쯤 아빠는 조용해졌다. 살며시 문을 열어 거실을 보니 아빠는 괴로운 얼굴을 한 채 소파에 잠들어있었다. 내가 탈출해야 할 순간이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화분조각들을 밟지 않으려 까치발을 들고 재빠르게 집에서 챙겨갈 짐들을 주워 담았다. 아빠가 깨어났을 때 먹을 게 있나 싶어서 주방을 확인해 보니 먹을 것이라고는 아빠가 술과 함께 사놓은 콘푸로스트뿐이었다. 아빠는 내가 콘푸로스트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불편하고 불안했던 우리 집에서 그냥 한 끼를 때우기에 든든한 우유에 말아먹는 달달한 콘푸로스트가 편하게 느껴졌을 뿐인데 말이다.


고등학교 2학년 1학기 기말고사를 앞둔 주말, 집에서 그렇게 탈출한 지 몇 시간 만에 아빠의 부고전화를 받았다.






아빠의 시신을 화장하기 전 시신을 염해서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나무로 된 관속에 누워있는 아빠의 얼굴은 파랑에 가까운 보랏빛이었다. 아빠가 스스로 그은 자상이 있는 목과 손목에는 하얀색 천이 감싸져 있었다. 그냥 잠들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차갑고 바짝 마른듯한 아빠의 손을 한번 잡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꼿꼿하게 서서 관속에 누워있는 아빠를 그저 내려다보기만 했다. 아빠의 마지막모습이라니...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아빠의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그저 아빠의 영정사진을 바라보며 원망하고 억울해했다.


'미안하지만 아빠, 나는 아빠의 죽음을 슬퍼하고 싶지 않아. 눈물도 안 흘릴 거야. 적어도 지금은. '


3일장이 끝나고 불길 속으로 들어가는 아빠의 시신을 바라보며 우리 가족모두 목놓아 울지 안았다. 그저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낄 뿐이었다. 원망스럽고 허무했다.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장례를 치르느라 제대로 못 잤던 엄마와 나는 의자에 앉아 서로에게 기댄 채 잠시 잠들었다. 얼마 뒤 엄마가 놀라며 잠에서 깼다. 아빠목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하야 엄마, 편하게 자...'


진짜 아빠였을까?

아빠의 영혼이 엄마에게 건넨 마지막 말이었을까?


내 인생 속 모든 불행은 아빠로 인한 것이라 생각했던 만큼 나에게 아빠의 존재는 크고 버겁고 두렵고 무겁고 힘겨웠다. 그랬던 사람이 한 줌의 가루가 되어 나왔다. 나의 모든 원망과 상처들은 아직 아물지도 않았는데 원망할 대상이 사라진 것이다. 그렇게 아빠는 하얀 도자기 속에 한 줌의 가루가 되어 영원히 봉인되었다.






슬픔 모두 남겨진 사람들의 몫이다.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절차는 끝났지만 남겨진 사람들의 애도는 끝나지 않았다. 아빠를 영락공원에 안치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써 버티고 있던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 듯 아파트 주차장 시멘트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리고는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그 순간 나에게는 아빠의 죽음보다 엄마의 울음소리가 더 슬프게 느껴졌다. 엄마가 그렇게 대성통곡을 하며 우는 모습을 보는 게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엄마와 정말 가깝게 지내던 친한 동네언니를 떠나보냈을 때였고 두 번째는 아빠를 떠나보냈을 때였다.


살아내는 것도 슬픔을 추스르는 것도 모두 다 남겨진 사람들의 몫인 것이다. 우리 가족은 각자의 방법으로 슬픔을 참아냈다. 엄마는 자식 둘을 데리고 살아나가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무장했다. 남동생은 11살이라는 어린 나이였지만 아빠의 영정사진을 들고 장례를 치른 장남의 무게감으로 장했다. 나는 우리 집 불행제조기였던 아빠가 없으니 이제 나의 불행도 끝일 거라는 희망으로 무장했다. 그렇게 남은 우리 가족은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들처럼 스스로를 자신만의 무기들로 무장시켰다.


그러나 슬픔은 애써 억누르고 외면하고 싶어도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마음속에 품고 다니는 것이었다. 차라리 마음껏 슬퍼하도록 나를 내버려 두어야 했다. 너무나 사랑했지만 미워하고 원망할 수밖에 없었던 아빠를 떠나보낸 나의 마음을 인정해 주고 직면해야 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했던 18살의 나를 알아봐 주고 위로해주어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어야 했다.


많이 미웠고, 많이 원망스러웠다. 마음껏 사랑한다 말하지 못해 아쉬웠다. 세월이 지나 한 아이의 부모가 되고 나니, 아빠의 죽음 앞에 더 많이 슬퍼해주지 못해서 아빠에게 미안했다. 애써 이해하려 했던 아빠의 삶을 이제는 그저 인정하고 바라보려 한다. 마음껏 슬퍼하고, 마음껏 그리워하며 '그날'로부터 나를 해방시켜 주려 한다.



아빠, 지금 있는 그곳은 어때?
2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으니
이제는 조금 편안해졌을까?
아빠가 그곳에서 편안하길 늘 기도해.

나는 이제 많이 편안해졌어.
이곳에서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감사하며
눈부신 오늘을 살아갈게.
사랑해,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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